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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실각?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의 중구난방

국정원의 설익은 물타기 수법

등록|2013.12.04 20:30 수정|2013.12.05 11:34
북한 문제를 가지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북풍'이나 '안보장사'라고 한다. 그동안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각종 국내선거에 이용하는 특급 소재가 되었다. 정치적 위기를 맞이해서 국면전환용이나 물타기용으로도 쓰였다. 국면전환용 물타기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유독 심해졌다. 정상회담 대화록 배포사건으로 국정원은 개입을 넘어 국내정치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왔던 것이다. 오로지 국정원 개혁과 선거부정을 물타기하고 국면전환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국정원 개혁특위 설치와 물타기

3일 오후에 국정원이 느닷없이 장성택 실각설을 이야기 하고 언론에서 권력투쟁으로 인한 숙청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간 해온 국면전환 수법과 같은 맥락이다. 3일 국정원 개혁특위를 두기로 여야 사이에 합의했는데, 4일 조간신문은 온통 북한의 권력투쟁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로 도배했다. 얼핏 국정원의 물타기가 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정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유증이 좀 클 것 같다. 하루도 안 지나서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장성택 신병에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5일 국회에서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가 중구난방이다.

통상 첩보사항은 확인해주지 않는 것이 국가기관의 관례다. 첩보수집의 경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그보다는 국민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 더 큰 목적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해서 YTN에 흘리고, 야당의원에게 정보보고를 했다. '이거 보도해서 쟁점으로 만들어 주시오' 하는 너무나 뻔한 속셈이다.

장성택이 북한과 중국사이에서 진행되는 경제협력관련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측근비리가 나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돈이 오가는 곳에서 털어서 먼지 안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특정 요직에 있는 사람의 부패가 더 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측근비리를 장성택 실각으로 판단하고 이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장성택은 김정은 3대세습체제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실각은 북한의 권력구도에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김정은 체제가 장성택 후견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유일지배체제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견인을 물리치고 김정은 사람들이 실세가 되어 본격적으로 북한의 각종 권력기관을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북한의 대남정책, 대외정책, 경제정책 등 모든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종합대책 수립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장성택 실각이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와 야당의원의 발표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언론플레이를 해서 그런지 청와대 벙커도 조용했다.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도 모두 일상적인 업무만 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 정부의 대책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사이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는 엇갈린 말만 쏟아내고 있다. 장성택 측근 두명의 처형이 김정일 사망처럼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정상적으로 국가안보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상상, 장성택과 최룡해의 권력투쟁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로 인한 장성택 숙청설은 최룡해 총참모장과 권력투쟁이라는 대중의 흥미와 상상력에 부합하는 요소와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최룡해는 장성택 계열의 인물이고, 북한군대에 대한 정치사상 지도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인민군 총참모장이다. 하지만 군인출신이 아닌 노동당 출신이다. 최룡해는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로 인해서 군의 기능이 비대해진 상태에서 당에 의한 군 통제를 위해 군총참모장에 임명된 사람이다. 이를 가지고 장성택이라는 개혁파와 최룡해라는 군 보수파의 대결로 설정한 것 자체가 억지이다. 정보와 분석이 아니라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하다.

장성택은 권력 2인자의 생리와 처신을 체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망명해서 장성택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한마디 말을 한 것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 친위세력들에게 견제를 받아야 했다. 그가 견제를 받고 일선에서 쫓겨난 것만해도 수차례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치 박정희 시대의 김종필처럼 장성택은 권력에 눈독 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권력을 후견하는 2인자의 길을 걸었다. 대인관계에서도 견제받지 않기 위해서 원만하게 행동해왔다는 것이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장성택의 모습이다.

장성택이 이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는 기본적으로 수양대군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니라 장씨라는 말이다. 수령제 사회인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권력의 정통성을 지닐 수 없다. 북한은 유일사상 10대원칙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도 더 중요시 여기면서 북한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북한이 유일사상 10대원칙을 처음으로 개정해서 "김일성·김정일의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 완성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하였다. 김정은 후계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장성택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업을 이을 '대'가 아니다.

오히려 수양대군이 된다면 김정일 세습과정에서 경쟁관계에 있었던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라면 더 가능했을 것이다. 김영주는 김정일에게 밀린 후에 권력에서 영구히 멀어졌다. 장성택이 '대'를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은 그가 후견인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설사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김영주나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처럼 권력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존재이다.

김정은 세습과정에서 장성택이 김정일의 위임을 받은 후견인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힘이 쏠렸다. 이런 쏠림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 김정은체제 공고화에 도움이 될 수 없을 노릇이다. 장성택이 측근비리로 물러났다면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미국행을 떠난 박정희 시대의 2인자 김종필과 유사한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장성택이 북한판 오똑이가 되면?

장성택이 2인자의 처지를 간파하고 능란하게 처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실각했다면 1인자의 견제를 받는 2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재기불능의 상태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검토를 해야 한다. 이미 장성택은 3번이나 이른바 숙청을 당하고 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성택이 등소평처럼 북한의 오똑이가 되어서 어느날 갑자기 북한 언론에 등장한다면 어떡할 것인가? 책임은 국정원이 져야겠지만 국민들이 겪은 혼란과 국가기관에 대한 늘어난 불신 눈초리는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소란을 떨 일이 아니다. 우선 정부부터 관계부처 사이에 정보를 교환하고 판단을 공유하고, 국민들에게 정제된 설명을 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창수님은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이고 통일맞이 정책실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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