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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 점수 '우수'... 그런데 왜 이렇게 참담할까?

[주장] 교원능력개발평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등록|2013.12.05 20:09 수정|2013.12.05 20:09
교원능력개발평가(아래 교평)가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 9월 말부터 달려온 일정이었다. 그 두 달 남짓 동안 학생만족도평가(9.23~10.11)와 학부모만족도평가(10.14~11.1), 동료교원평가(10.21~10.31)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제 개별 교사들이 평가 결과를 확인한 뒤, 교육청에 교원능력개발계획서를 써서 제출하면 된다.

3학년 담임인 나는 올해 한 건의 평가 결과를 받았다. 동료교원평가에서였다. 학생만족도평가와 학부모만족평가에서는 단 한 건의 평가 결과도 없었다. 그 어떤 학생이나 학부모도 나를 평가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은근한 실망감을 감출 길 없다. 내가 그토록 아이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동료교원평가에서 나를 평가한 그 한 사람은 누구일까. 모르긴 몰라도 교장이나 교감 중 한 분일 가능성이 높다. 교평 운영 계획상의 동료교원평가는 교장·교감 중 1인 이상, 수석교사(또는 부장교사) 1인 이상, 동료교원 등 포함 5인 이상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그간의 분위기와 추진 경과를 보면, 부장교사(우리학교에는 수석교사가 없다)와 동료교원 중에 평가에 응한 분은 없는 것 같다. 동료교원평가에 응한 정체 모를 '1인'을 교장이나 교감으로 짐작하는 이유다.

내가 받은 점수는 5점 만점 중에서 3~4점에 걸쳐 있다. 백분위로 환산하면 60~80점 구간에 해당하는 점수다. '절대적으로' 보면 형편없이 나쁜 점수는 아니다. '환산평어'라는, 교육부가 내놓은 '환상적인' 평가 용어에 따르면 나는 '우수' 구간에 있는 교사다.

교육부가 제시하는 환산평어는 모두 다섯 구간으로 나뉜다. 4.5 이상은 '매우우수', 3.5~4.4는 '우수', 2.5~3.4는 '보통', 1.5~2.4는 '미흡', 1.0~1.4는 '매우미흡'이다. 교평 결과 활용과 관련한 교육부의 맞춤형 연수 운영 계획에 따르면, 환산평어의 미흡(2.5 미만) 기준에 따라 능력향상 심의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 강제적인 연수대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우수' 구간에 있으니 한숨을 내쉬어도 될까.

그런데 세세하게 뜯어보면 참 '부끄러운' 점수다. 평가지표에 따른 평가문항별로 들쭉날쭉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학교 평균보다 최대 1.3점에서 최소 0.27점까지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처참하다. 단 한 명의 평가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동료교원 참여자가 없어 0점 처리되면 불이익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을 고려하면,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께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평가에 참여해 주신 것만으로도 모자라 '우수' 구간 점수를 주셨지 않은가.

내 '처참한' 점수 결과가 담긴 '동료교원 평가지(담임교사용)'를 착잡하게 내려다본다. 나도 모르게 즉각 '반성' 모드로 들어간다. 짧으나마 자주 아이들과 흉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왜 '개인문제의 파악 및 창의·인성지도'는 고작 '3점'밖에 받지 않았을까. '민주시민성지도'도 나름대로 열의를 갖고 했다고 자부하는데, 왜 점수가 시원찮을까. 나는 특히 점수가 낮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기본 태도를 갖도록 지도한다"라는 평가문항에 눈길을 준다. 혹시 우리 반 아이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놔둔 것이 원인이었을까.

이런저런 '반성'을 해보니 부끄럽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좀 더 세세하게 챙기지 못한 게 걸린다. 학년회의나 부장회의에서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마구 쏟아낸 것도 은근히 후회된다. 그때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이 '저 못 말릴 불평불만분자'를 얼마나 불편히 여기셨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부아와 함께 짙은 의구심이 치민다. '무려' 열세 항목이나 되는 평가지표에서 학교 평균을 넘긴 게 하나도 없다. 아이들 지도나 동료교원간 협력 관계 등의 평가 항목에서는 점수가 유난히 형편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번 생긴 의구심은 쉬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학생이 처한 문제상황의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항목의 학교 평균은 4.3점. 나는 3점이다. 나를 평가한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께 따져 묻고 싶다. 그 1.3점의 차이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4점대 이상의 점수를 받은 선생님들의 어떤 점이 우수했는가.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고 절절하게 여쭙고 싶다. 그때 그분들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교평의 목적은 교원의 전문성 지원을 통해 지속적인 능력개발을 지원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교원 자신의 교육활동 전반을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분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 실시 및 그 결과 활용을 통해 교원의 지속적인 능력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평 시스템으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올해 동료교원평가는 평가지표와 평가문항을 5점 척도 체크리스트로 만든 평가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모두 12항목에 걸쳐 일일이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계량화할 수 있는 점수 체계의 꼴을 하고 있으니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평가지표에 해당하는 항목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 평가에 적용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관절 어느 누가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교수학습전략수립'이나 '수업의 도입', '교사의 태도', '교사-학생 상호작용' 등을 평가하고 점수화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장 내 앞에 데리고 와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은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원래 평가가 그런 게 아닌가. 쉽게 계량화할 수 있는 방식이긴 하지만,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체크리스트 방식이 아닌가. 그 어떤 것이 되었건 평가 도구나 시스템 자체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평가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 강제적이고 불가피하다는 평가 시스템으로 '교원의 전문성 진단'이 이루어졌느냐고. 계량화한 그런 시스템이 공정하고 타당하게 실시되고, 그 결과 활용을 통해 지속적인 능력개발의 계기를 갖게 되었느냐고.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느 분야든지 좋은 평가는 평가 대상자의 자발성이 전제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 과정이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교육활동 분야에서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3시간 수업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결과가 어느 정도로 나올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핀란드 같은 교육 선진국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인 시험을 거의 치르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교사가 동의하지 않는 평가 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사가 참여하지 않는 평가 제도 또한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교사를 일방적으로 대상화한 강제 평가 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짓뭉갠 채 그들만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진행돼온 교평이 도입 십 년이 지나도록 현장에 제대로 착근하지 못한 까닭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진정한 교원평가는 교원 스스로 할 때 열매를 거둘 수 있다. 학년말에 자발적으로 평가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돌린 후 자기능력개발계획서를 세워보게 하는 건 어떨까. 담임이라면 학부모와의 서신 교환이나 허심탄회한 간담회를 통해 자신의 교육활동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다. 동료교원들과는 일상적인 교과․학년모임에서 서로의 활동을 고민하고, 협력적인 수업 연구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전문성이나 능력을 진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슬기로운 교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보통 교사는 언제나 바쁘다. 그런데 아직 못한 일이 많다. 엄격한 교사는 무엇인가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폭력을 쓴다. 한 선생님이 메신저로 보내온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재치속에 은근한 교훈이 담겨 있다.

나는 '슬기로운 교사'가 되고 싶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일이 없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이 '슬기로운 교사'는, 영국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앨프레드 노드 화이트(1861~1947)가 말한 '훌륭한 선생님'이나 '위대한 선생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해 보이고,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선생님들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슬기로운 교사'나 '훌륭한 선생님', '위대한 선생님'은 현재의 대한민국 교평 시스템 아래서는 온전히 살아남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현재의 교평은 '좋은 선생님'을 훌륭하다고 대접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식으로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잘 이끄는 선생님이다.

가령 교수학습전략을 잘 수립하고, 수업의 도입과 진행 중에 표준적인 교사 태도를 잘 유지하는 모범적인 선생님 말이다. 교사-학생 상호작용에 공력을 들이고, 평가 내용 및 방법과 평가 결과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창의․인성 지도 및 민주시민성지도, 동료교원간 협력 관계에서 문제가 없는 교사도 그런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그런 '슈퍼맨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교평 10년의 성과로 이미 그런 '슈퍼맨' 교사 반열에 오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교사에게 그 어떤 교과과정 편성권이나 평가권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슨 교수학습전략을 수립하는가. 가장 비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작동되는 학교에서 어떻게 민주 시민성 지도를 하는가. '동료교원 평가지'의 '민주시민성지도' 항목에 '3점'을 준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께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시민성'이 대체 무엇이냐고.

교평, 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교평은 절대 아니다. '당근'(학습연구년 특별연수)과 '채찍'(능력향상연수)이 동반되는 현행 교평 시스템에서는 결코 그 어떤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 진단이나 능력개발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조만간 각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내려보내 능력향상연수 대상자를 지명하라고 채근할 태세다. 환산평어가 2.5 미만인 교사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시린 겨울이 될 것이다.

왜 그 기준이 '2.0'이나 '3.0'이 아니고 '2.5'인가. 만점인 '5.0'의 기계적인 중간이어서 그러런 것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꿔 다시 물어본다. 도대체 '2.5'를 받은 교사와 '2.6'을 받은 교사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0.1'의 차이가 모멸적인 강제 능력향상연수 대상자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속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교육관료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자리에서 '교평 옹호론자'가 되겠다.

'당근'에 유혹되어 자신의 전문성을 계발하려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강제 연수라는 무서운 '채찍'을 피하기 위해 교육활동에 임하는 교사를 진정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교육부가 바라는 교사상이나 교육현장의 모습이 그런 것이 아님을 믿는다. 교평에 대한 교육 당국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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