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노회찬도, 최성진도 이렇게 당했다

[주장] 언론 자유 억압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법성 조각 사유 명문화 시급

등록|2013.12.06 11:48 수정|2013.12.06 11:48

▲ 지난 2월 14일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당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언론의 보도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정부나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이나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함부로 도청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방지해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시민사회단체 활동의 자유를 보장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권력기관들은 통신비밀보호법을 악용해 자신들의 불의와 불법을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특히,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용해 정부를 포함, 사회 권력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가진 언론의 취재활동을 억압해 언론이 사회 권력기관들의 비리를 밝히는 일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노회찬도, 최성진도 통신비밀보호법에 '발목'

정부 권력기관이 언론의 취재활동을 방해 할 목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을 악용하는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언론이 취재활동의 일환으로 불가피하게 비리와 관련된 인사들의 대화를 녹음해 보도하는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해당 기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예외조항을 악용해 정부기관의 비리를 보도한 기자의 취재원 색출을 목적으로 해당 기자의 통화내역을 샅샅이 뒤져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방법으로 언론기관의 취재활동을 억압하고 있다.

올해 2월 '안기부X파일' 사건과 관련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그리고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 사건이 한 예이다. 최근에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과 이진숙 전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청취한 뒤 기사화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며 불구속 기소됐다. 최 기자는 지난 11월 28일 항소심에서 징역 6월·자격정지 1년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두 사건 모두 국가 권력기관이 자신들의 비리를 폭로한 언론사와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용해 처벌한 사례다.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위축 시키고 언론의 권력기관 감시기능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로 통신비밀보호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를 위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를 어기고 공개 또는 누설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 권력기관이나 인사들의 비리, 불법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기관들은 불가피하게 잠입취재나 타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녹음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익 위해 언론의 자유 우선 보장돼야

그렇다면 만약 통신비밀보호법을 통한 개인의 사생활 보호 이익과 정부기관이나 공직자의 비리를 밝혀내고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에게 보장된 취재와 표현의 자유를 통한 공익이 서로 충돌할 경우, 어떤 이익을 선택해야 할까? 당연히 공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특히, 통신비밀보호법으로 보장되는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거나 이와 연루된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일 경우에는 반드시 언론의 취재와 표현의 자유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즉, 언론인이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리를 취재할 목적으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해서 기사 작성에 사용한 경우, 언론인의 녹음행위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공익을 위한 행위였을 경우에는 처벌을 면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익의 목적을 위한 언론인의 취재활동에 대한 위법성조각의사유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위법성조각의사유란 법률적으로 위법이 되는 행위라도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 행위의 위법성을 면책하는 사유를 일컫는다. 형법상 명예훼손죄에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어 진실성과 공익성을 위법성조각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 권력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악용하는 또 다른 사례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예외조항을 악용해 기자의 취재행위를 위축 시키는 것이다. 최근 <시사저널>의 모 기자가 청와대 신동철 비서관의 인사 청탁 의혹을 다룬 기사를 보도했다가 신동철 비서관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사건조사 과정에서 해당 기자의 취재원 색출을 위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기사가 보도되기도 전인 7월 말부터 8월 7일 사이 기자의 사적인 통화 내역까지 포함해 모든 통화내역을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앞서의 사례처럼 기자의 정당한 취재행위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법적 처벌을 하면서, 이번 사례에서는 국가기관이 기자 개인의 사적인 통화내역은 전혀 보호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정부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이 갖고 있는 허점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범죄수사(제5조, 제6조)와 국가안보(제7조, 제8조)를 위해서는 통신 및 대화의 비밀보호 제한조치가 허용된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사실상 공권력에 의한 감청을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은 이러한 예외조항을 이용해 고소가 접수된 사건의 피고소인들의 개인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가기관들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적용하는 방법을 통해 언론인들의 정당한 취재행위를 방해하고 위축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기관들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용해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원인은 통신비밀보호법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법성 조각 사유 명문화해야

그렇다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가장 먼저 언론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법성조각의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

언론인이 공익을 목적으로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리와 관련된 대화를 녹음하여 기사작성에 사용한 경우, 공익의 가치가 크다고 인정하여 위법성을 면책해 주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비밀과 대화의 비밀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요청이 더 큰 경우엔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화자가 공인이고 공개할 내용이 진실일 때, 대화내용의 공개가 공익을 위할 때는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범죄수사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통신 및 대화의 비밀보호에 대한 제한조치가 허용된다는 예외조항을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 국가기관이 범죄수사나 국가안보라는 명목을 내세워 무차별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기관이나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활동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지금까지 드러난 허점들을 빠른 시일 안에 개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자를 포함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권력의 감청은 최소화 되도록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반면 국민들의 알권리를 부여받아 공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에게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한 권력기관 감시활동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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