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캐나다는 되지만 한국은 안 되는 이유
의료법 개정안 입법예고 논란... 대형병원과 IT재벌에게만 이익
▲ 2011년 5월 25일 계명대 동산병원은 병원 내 교수연구동 1층에 의료사각지대 환자들을 원격으로 진료하는 원격의료센터를 열었다. 사진은 이날 의료진이 울릉도에 있는 심장병, 피부병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의료 시연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원격의료가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0월 말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하며 각종 의약단체들과 함께 대정부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원격의료가 의료민영화의 일환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격의료를 반드시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오석 부총리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등 각 부처들이 앞다투어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원격의료 시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원격의료란 환자가 음성 녹음, 비디오, 심전도와 같이 질병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원격지에 있는 의료전문가에게 전자적인 방식으로 전송된 후, 의료 전문가가 임상적 기술을 이용해 판단을 내리고 환자에게 적합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렇듯 반대 여론이 팽배한 것은, 실제 도입과 시행에 많은 쟁점들이 있으며 정부가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을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무리하게 원격의료 허용을 밀어붙이는 정부 행태의 이면에는 IT업계, 대형종합병원, 재벌기업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한국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이야기가 매스컴에 처음 등장한 때는 2003년으로, 삼성이 미래 신성장동력사업으로 유헬스(u-Health)를 선정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2005년에 보고서를 내며 유헬스 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해 2010년에는 시장 규모가 1조 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각종 경제신문과 투자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처럼 유헬스는 의학적 기능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IT 업계의 시장수요 분석에서부터 시작됐다.
유헬스 열풍은 정치권까지 퍼져나가 2010년 4월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허용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냈고, 이 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한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대한의사협회 같은 의료인 단체의 반대에 직면하여 국회에서 계류하다 결국 폐기된다.
이후 법 개정은 대선을 경유하며 잠잠해졌으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 다시금 원격의료 도입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2013년 4월, 기획재정부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한다. 6월 25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유헬스 활성화를 위해 관련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10월 29일, 예고한 대로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시행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원격의료, 캐나다는 되고 한국은 안 되는 이유
정부는 원격의료가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미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인구밀도가 매우 낮거나 섬이 많아 무의촌 지역이 넓은 나라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간의료보다는 공공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거나 실시한다. 그 이유로 미국 상무부는 민간의 경우 원격의료의 투자에 따른 경제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원격의료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접근성 향상 역시 근거가 없다. 1km당 의사 수를 살펴보면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은 캐나다 0.01, 호주 0.01, 미국 0.08, 핀란드0.05로 매우 낮은 반면 대한민국은 0.98로 훨씬 높다. 즉, 원격의료는 한국에 필요 없다.
의학적 효과 부분에서도 논란이 많다. 보건복지부나 민간기업들은 지금까지 원격의료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 관리에 효과적이며 의료비를 줄일 것이라며 선전해왔다. 하지만 각종 연구에서 나타난 건강 증진 효과가 원격의료 자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원격의료 대상자가 됨으로써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는 지적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최근 시행된 미국과 독일의 대규모 연구에 의하면 원격의료는 심부전과 같은 대표적인 만성질환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들인 비용에 비해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가 전통적인 대면진료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도 큰 의학적 효과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비용을 들였을 때 원격의료는 전통적 의료에 비해 건강 증진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IT재벌만 좋은 원격의료, 박근혜 정부 공약 뒤집기
▲ 대구시의사회 소속 의사 200여 명이 지난 11월 27일 오후 경북대병원 10층 강당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저지를 결의했다. ⓒ 조정훈
원격의료는 서비스산업 선진화로부터 창조경제론까지 정부의 서비스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왔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경제론'이 주목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보건의료다. 그 중에서도 삼성, SK텔레콤 등 IT 재벌과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이 장기적 수익 확대를 위해 진출하고 있는 유헬스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것이 핵심이다.
유헬스 산업은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가 두 축으로,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신성장동력산업이라 추켜세우는 것이다. 유헬스 산업의 요지는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동네의원)이 수행하고 있는 만성질환 관리를 원격진료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IT기업들이 주도하려는 것이다. 원격의료 시범사업들은 모두 대형 종합병원들과 SK, KT, LG, 삼성 등 IT계열 대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다. 이미 설립되어 있는 원격의료 관련 기업들은 유명 대학병원 교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만성질환의 경우, 가까운 동네의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치료 성적도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고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대형 종합병원은 수술이 필요하거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중증 환자를 돌봐야 하지만 엉뚱하게도 경증·만성질환자에 대한 원격의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 드는 것이다.
만약 원격의료 시스템이 구현된다면 현재도 심각한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전체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성질환 관리의 중심이 되어야 할 동네의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과잉 경쟁 속에서 영리화하거나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의료취약지 주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원격의료가 오히려 의료공백을 더 심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비록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서만 원격의료를 허용한다고 했지만 이는 의료계의 반대를 무마하려는 회유책에 불과하다. SK, KT, LG와 같은 통신회사들은 장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지금까지 대형병원에 투자하면서 스마트병원 사업을 수행해 향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때를 대비, 기술적 기반을 구축하고 병원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추후에 어떤 형태로든 상급종합병원을 끼고 들어오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그것은 현재 예고되어 있는 법 안에서 우회로를 개척할 수도 있고 추후 법개정을 통해 대상을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또 원격의료는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켜 건강 불평등을 심화 시킨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만성질환자들은 결국 대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원격진료는 추가적 의료비 부담을 만든다. 보건복지부는 필요한 장비의 비용은 전적으로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정작 원격의료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도서 벽지의 농어촌 주민들은 초기 설치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원격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가 직접 부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학적인 효과도 떨어지는 의료기술에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한국형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당선됐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공약 뒤집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기초노령연금이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 파기만 보아도 현 정부가 대선 당시 약속했던 복지를 달성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실현이 불가능한 창조경제를 위하여 복지를 희생시키고 의료를 상업화하는 원격의료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박근혜식 복지 정치에 제동을 걸고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김태훈님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으로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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