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되살아난 20년 전 <사랑과 영혼>
[리뷰] 무대 메커니즘의 새 이정표, 뮤지컬 '고스트'
▲ 신시컴퍼니 ⓒ 신시컴퍼니
눈을 뗄 수가 없다. 요즘 말로 '클래스'가 다르다. 영혼이 된 남자는 딱딱한 문을 그대로 통과하고, 물건들은 공중을 느리게 날아다닌다. 조금 전까지도 회전 무대를 자유롭게 걷던 이들은 공중으로 상승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린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뮤지컬 '고스트'는 최첨단 기술력이 동원된 무대로 160분간 관객을 '사랑의 판타지' 속으로 끌어들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조명과 LED 영상, 마술을 이용한 특수효과 등으로 섬세하게 구축된다. 놀라운 것은 그 속에서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작의 감성과 기술력이 더해진 무대는 과연 '매직컬(Magical)'이라 불릴 만했다.
평면에서 입체를 세우다
죽어 영혼이 된 남자 '샘'. 그는 성공한 은행가로 연인 '몰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은 길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혼이 된 그는 우연인 줄 알았던 죽음이 계획된 살인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의 연인 '몰리'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샘'은 영매 '오다메'의 몸을 빌려 그녀를 구하려 한다.
이야기는 고전이 된 흔한 '러브스토리'다. 뮤지컬은 20년을 훌쩍 넘긴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해묵은 감동을 최첨단 기법을 통해 현재의 감동으로 치환한다. 찰나에 진행되는 무대 체인징은 느슨할 틈을 주지 않고, 빈틈도 없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극의 리듬은 윤택하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이 맞아떨어지는 스토리는 작품을 한층 더 리드미컬하게 만들었다.
원작과 뮤지컬의 관계도는 영악하다. 원작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콘텐츠다. 익숙한 이야기는 그만큼 대중의 거부감도 적다. 뮤지컬은 이러한 원작의 장점을 십분 살려내는 한편, 화려한 볼거리를 더해 관객의 만족감을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 신시컴퍼니 ⓒ 신시컴퍼니
뮤지컬 '고스트'의 기술적 성과는 굉장하다. 4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세트는 무대 메커니즘의 방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전 '샘'과 '몰리'의 아파트였던 공간은 샘의 직장으로, 지하철 내부로 순식간에 변신한다.
회전 무대는 런던 거리를 실사처럼 그려내고, 마법 같은 효과들은 영혼의 세계까지 무대 위로 불러올린다.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하다. 화려한 과학 기술로 부활한 뮤지컬 '고스트'는 영화 못지않은 호화로운 시각적 효과로 풍성한 볼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작품의 무대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오리지널 감성'을 디지털로 살려냈다는 점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샘'의 영혼이 떠나는 것으로 갈무리된다. 흐릿한 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샘'의 모습을 마법처럼 구현해 낸 것도 놀랍지만, 영화의 짙은 '아날로그 감성'이 고스란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샘' 역의 김우형은 섬세한 사랑 연기로 관객을 흡수했다. 그동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줬던 굵직한 남성성에서 벗어난 감성 연기가 압권이었다. 전반부의 섬세한 팝 음악 소화력은 아쉬웠지만, 후반부의 파워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 신시컴퍼니 ⓒ 신시컴퍼니
'몰리' 역으로 나선 아이비는 무대 위에서 놀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뮤지컬 '고스트'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창법과 섬세한 연기는 배우로서 그녀의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했다. '오다메' 역의 정영주는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풍만한 소울의 음색과 탁월한 가창력, 능청스러운 연기는 극을 조였다 풀어주며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쉬운 것은 음악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하면 금세 떠오르는 주제가 'Unchained Melody'는 운율은 살아있지만 존재감이 뚜렷하지 못했다. 주제곡은 이따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샘'이 부르는 사랑 노래로 찰나에만 빛을 발했다. 팝 스타일의 뮤지컬넘버들은 익숙한 멜로디로 귀를 사로잡았지만 오래도록 전해지는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