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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째 또 이런 일이 ...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해야"

송전탑 반대 농성 주민 유한숙씨 음독자살 빈소 표정

등록|2013.12.06 20:27 수정|2013.12.06 20:27
"또 우째 이런 일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송전탑 공사 안했으면 이런 일 안 벌어졌을 것이다."
"고인은 늘 '이제 다 살았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는데…."

6일 저녁 유한숙(74)씨의 빈소를 찾은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밀양 상동면 고정리에서 돼지를 키우던 그가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있는 빈소를 찾은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시신이 부산대병원에서 검시 등의 과정을 거친 뒤, 이날 오후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윤성효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시신이 부산대병원에서 검시 등의 과정을 거친 뒤, 이날 오후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윤성효


유씨는 지난 11월 말부터 자신의 집과 돈사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의 보상과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듣고 송전탑 반대 농성에 나섰다. 유씨는 지난 2일 저녁 집에서 농약(제초제)을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6일 새벽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검찰과 경찰은 유씨가 사망한 장소인 부산대병원에서 검시와 가족 조사를 벌였다. 그 뒤 유가족들은 시신을 밀양으로 옮겨 빈소를 차린 것이다.  유씨는 부인과 사이에 2남1녀를 두었고, 자녀들은 모두 출가했으며, 농사는 짓지 않고 돼지 400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다.

마을 이웃 "고인은 평소 '나는 다 살았다' 말해"

평소 유씨와 친분이 있었던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고인과 친구처럼 지낸 반무출(76)씨는 "고인이 그렇게(음독)하던 날 오후 우리 집에 와서 1시간 반 정도 있다가 갔는데, '나는 다 살았다'거나 '대책이 안 선다' '막막하다'는 말을 했다"며 "한국전력공사 직원과 대학교수가 지난 11월에 찾아와서 보상과 이주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면서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조화가 진열되어 있다. ⓒ 윤성효


또 그는 "고인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돼지를 키워도 새끼를 낳을 수 없고, 기형 새끼가 생긴다고 여겼다"며 "한때 돼지 1200마리 정도를 키웠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여 400마리 정도를 키웠다"고 덧붙였다.

고정마을 서보흡(75) 이장은 "고인은 부부가 자주 강가에 바람을 쇠러 나가고, 얼마 전에는 해외여행도 같이 다녀온 것으로 안다"며 "보상과 이주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거의 매일 농성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빈소 찾은 주민들 "분노가 치솟는다"

빈소를 찾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한결같이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이남우(71․평밭마을)씨는 "정말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분노가 치솟는다"며 "한전과 정부, 경찰은 '참'을 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은 질서유지를 진심으로 하지 않고 권력과 정당을 위해서 활동하고, 정부는 방향을 잃었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한전은 오늘도 헬기를 동원해 송전탑 공사를 계속했다. 이것은 인간사회가 아니다. 지금 하는 행태는 침략자가 피침략자한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지금이라도 작업을 중단하고, 사회공론화 창구를 통해 주민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주민들이 빈소에 모여 앉아 있다. ⓒ 윤성효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주민들이 가슴에 근조 깃발을 달고 있다. ⓒ 윤성효


김영자(여수마을)씨는 "송전탑 때문에 사람이 약을 먹고 죽었는데, 한전은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며 "그들은 사람도 아니다. 참담하다. 짐승도 이렇게는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민(61)씨는 "이미 고압 송전탑이 들어선 충남 당진 등을 답사하고 왔는데 소,돼지가 새끼를 낳지 못하고 기형을 낳는 사례가 많았다"며 "벼농사와 달리 축산업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보상·이주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더 상실감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 "즉각 공사 중단해야"

민주당 최고위원인 조경태 국회의원(부산 사하을)이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았다. 조 의원은 고인의 큰상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상황을 종합해서 국회와 정부에 일단 즉각 공사부터 중단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강조했다.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민주당 조경태 국회의원이 조문하기 위해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아와 들어서고 있다. ⓒ 윤성효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마련된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민주당 조경태 국회의원이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아와 유가족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조 의원은 "유가족과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고인은 송전탑 공사로 인한 보상이 되지 않는 것에 상실감이 컸던 것 같고, 복합적인 요인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치우 어르신의 비극 이후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김제남 국회의원(정의당)과 천주고 정의평화위원회, 전국 송전탑반대 대책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민주노총 등에서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한전 "돈사는 보상 대상" ... 주민 "이주·보상 대상 안된다고 했다"

한편 한전은 유한숙씨 돈사는 보상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유가족과 주민들은 유씨의 집과 돈사가 보상·이주 대상이 되지 않아 상실감이 컸다고 했는데, 한전은 다른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에 있는 돈사에서 돼지 400여 마리를 키우던 유씨는 최근 한전 측으로부터 집과 돈사가 이주·보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

한전은 지난 11월 중순경 용역업체를 통해 보상 대상지 조사를 벌였다. 한전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며 "보상 관련한 조사를 용역 의뢰했고, 지난 11월 중순경 고인을 만나 설명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고인의 집은 송전탑에서 400m 이상 떨어져 있어 보상 대상에 들어가지 않지만, 돈사는 공사와 관련한 소음 진동 등의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6일 새벽 사망한 고 유한숙(74. 고정리)씨의 빈소가 밀양 영남종합병원 농협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와 경과지 주민들이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 윤성효


그러나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와 주민들은 한전의 설명이 사실이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고인이 생전에 농성장에 와서 여러 차례 집과 돈사가 보상과 이주를 받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밀양 상동면 한 주민은 "고인은 농성장에서 여러 차례 보상과 이주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송전탑을 꼭 막아야 한다고 했다"며 "한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말을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고인의 유가족들과 논의해서 장례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 살던 이치우(당시 74살)씨는 2012년 1월 16일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고, 장례는 그해 3월 7일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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