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파도소리 들으면 스스르 잠 드는 포구... 그곳에 가고 싶다

[서평] 시인 곽재구의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

등록|2013.12.07 14:28 수정|2013.12.07 14:28

▲ <길귀신의 노래> 책표지. ⓒ 열림원

'시마(詩魔)'라는 말이 있다. '시의 귀신'이라는 뜻이다. 이규보(1168~1241)는 고려 시대의 명문장가였다. 그가 쓴 여러 편의 글 중에 <구시마문(驅詩魔文)>이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글이 있다. '시의 귀신을 몰아내는 글'. 이규보가 시귀신이 저지른 다섯 가지 죄를 들어 쫓아내려다가, 꿈속에 나타난 시귀신의 꾸지람을 듣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이다.

이규보가 든 시귀신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순박한 인간 현혹하기, 천지자연의 도리 누설하기, 세상 온갖 것을 남김없이 보는 대로 읊기, 무기나 높은 지위 없이도 사람을 죽이거나 나랏일에 관여하기, 사람 정신과 마음을 혼란케 하거나 소모시켜 병들게 하기. 사뭇 심각한 '죄'들이다.

하지만 '죄'라고 나쁘게만 보지 마시라. '죄'들을 뒤집어 보자. 순박한 인간 현혹하기? 세상의 적나라한 본질을 아는 '불온한' 사람 만들기다. 세상 온갖 것을 남김없이 보는 대로 읊기? 지열말단이 아니라 고갱이, 본질, 진실, 핵심 드러내기다. 사람 병들게 하기? 의식의 상투성과 일상성을 깨뜨리는 마음의 청량제다. 이규보가 시귀신을 스승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십계명'... '하루 열 편의 시를 쓴다'가 첫 번째 계명

곽재구라는 시인이 있다. '사평역에서'라는 시린 시를 쓴 이다. 교과서에도 실리고, 애송하는 이도 많다. 절창이다. 그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자신만의 '십계명'을 지었다. '하루 열 편의 시를 쓴다'가 첫 번째 계명이었다. 그렇게 시귀신이 그를 찾아온 시절, 그의 머리는 온통 시로 가득했다. 눈을 뜨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햇살이 쏟아지고, 별을 바라볼 때마다 시를 생각했다. 그즈음 태어난 시가 바로 '사평역에서'였다.

그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가 산문집을 냈다. <길귀신의 노래>.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라는 부제에 눈길을 준다. 여행기라 할 수 있을까. '길귀신'을 보니 그럴 것도 같다. 그런데 '귀신'이라니. '길귀신의 노래'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시귀신을 떠올린 이유다.

시인에게 시귀신이 찾아온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 시귀신은 무엇을 좋아했을까. 바로 '시간'과 '길'이었다.

나는 내 곁의 시간들을 사랑했다. 형색으로 치자면 그 시간들은 한없이 초라한 것이었다. 70년대 중반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삶의 행렬들이 이제 막 문학에 눈뜬 내 가슴에 다가왔다. 나는 그들을 끌어안기로 작정했다. … 나는 길들을 사랑했다. …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의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누구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길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 나는 나를 포함한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기를 바랐다. 감기에 쿨럭이면서도, 그믐달처럼 졸면서도 언젠가 만날 자신만의 빛나는 생의 언덕을 꿈꾸기를 바랐다. (80~84쪽)

곽재구는 그 스무 살의 시귀신을 따르다 길귀신을 만났다. 아니, 그에게는 시귀신이 곧 길귀신이었다. 그러니 '길귀신'이 제목으로 들어간 이 책은 그저 그런 여행기나 기행기가 아니다. 시를 찾아 살아온 시인의 '인생기'이자 '시론'이다.

언젠가 지상에서 내가 쓴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글들이 한 송이 포도와 같은 질감과 푸른빛의 꿈을 지녔으면 싶다. 여기 모인 글들은 지난 십수 년간 와온 바다 언저리에 머물며 빚은 기억의 포도송이에 관한 것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나는 매일매일 사랑스런 길귀신들의 숨소리와 목소리들을 들었다. (8쪽, '작가의 말'에서)

'길귀신'과 '시귀신'이 동행하는 시인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느 날이었다. 꼬마 곽재구는 내내 무지개를 보며 집에 왔다. 부모님이 싸우고 계셨다. 꼬마는 가방을 던져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나선 길을 사십 리를 걸었다. 낯선 마을에 이르러 자전거를 탄 아저씨를 만났다. 길 잃은 꼬마를 그는 집으로 데려갔다. "우리 집에 손님이 왔다!"고 말하면서. 꼬마는 아홉 살이었다. 길 위에서 처음 '손님'이란 말을 들은 그 아홉 살 때의 기억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켠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짜릿하게 깨닫는다. 나는 왜 그렇게 보지 못하지. 어쩌면 나는 이다지도 각박하고 이해타산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지레 움찔한다.
'섬세한' 눈을 가진 시인의 여행이니 그 자체가 한 편의 시다. 1995년, 시인이 모스크바를 여행할 때였다. 어느 날 오후, 지하철에 오른 시인의 눈에 "영화 촬영이라도 하기 위해 연출된" 듯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자리에 앉은 승객들의 손에 들린 게 하나같이 꽃 아니면 책이다. 시인은 이렇게 묘사했다.

꽃 책 꽃 책, 또다시 꽃 책 책 꽃 꽃 책 책 책 꽃……. (37쪽)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는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철 안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들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간다. 시인이 그곳에서 들은, "저 사람들 지금은 소련 붕괴되고 힘들게 살지만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지요" 하는 말이 저절로 다가온다. 책과 들꽃이 피어나는 지하철 풍경, 대한민국에서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곽재구의 시는 번잡스럽지 않다. 그의 시에서는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감자 된장국이나 가지무침 맛이 난다. 그의 '감옥'이 된 '사평역에서'가 그렇고, '은행나무'가 그렇다. 조선된장과 조선간장의 깊은 맛이다.

나는 '사평역에서'를 처음 읽으며 눈물 흘렸다

고백하건대, 나는 '사평역에서'를 처음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낼 때였다. 눈두덩을 뜨겁게 한 구절은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열차는 어디로 흘러가는지"였다. 어딘가로 흘러가는 막차라니. 그것은 절망이면서 희망이었다.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보라. 열차는 흘러가지만 빛이 있으니 어디엔가는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가다 쓰러지지는 않겠지. 그런 내 멋대로의 독해가 결코 '오독'이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귀신이기도 한 길귀신이 동행하는 여행기니 그런 시가 없을 수 없다. 순천만의 '와온'은 곽재구 시인에게는 '지상 낙원' 같은 곳이다.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다. 그 '와온 바다'를 맞댄 '유제'('이웃'의 남도 방언)에도 그런 지상 낙원이 많다. 그 중 한 곳이 '우명(牛鳴)'. '소 울음소리'란 뜻이다. 시인이 그곳을 바라보며 만난 <시>라는 시다.

눈 오시네

와온 달천 우명 거차 쇠리 상봉 노월 궁항 봉전 율리
파람바구 선학 창산 장척 가정 반월 쟁동 계당 유룡

착한 바닷가 마을들
등불 켜고 고요히 기다리네

청국장에 밥 한술 들고
눈 펄펄 오시네

서로 뒤엉킨 두 마리의 용이 빚은
순금빛 따스한 알 하나가

얼어붙은 반도의 남녘 개펄 위에 떨어지네 (140쪽)

와온 바다. 시인의 눈에 그곳은 사람이 살고 시가 있는 곳이다. 꽃이 피고 물앵두가 익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한없이 포근해지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와온'이 있지 않을까. 그런 자기만의 '생의 와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시린 겨울에 순천만의 '와온'과 '우명'을 찾고 싶다. 못생기고 허리가 휘고 전구가 나간, 와온 포구에 있는 18개의 가로등을 만나고 싶다. "허리 구부정한 노인이 등불을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한, 곽재구 시인이 '주인'인 '16'번 가로등에 등을 기대고 앉아 <길귀신의 노래>를 읽고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 파도소리를 10분만 들으면 나도 스르르 잠에 빠져들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은이) | 열림원 | 2013-11-25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