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전미도' 때문이다. 지난 결혼기념일, 간만에 뮤지컬을 봤다. 원래 예정된 계획이 아니었는데, 급변덕을 부려 하루가 지나기 직전인 12일 밤 예약에 성공했다(당일 예약은 안 되더라). 공연 일은 11월 13일,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였다.
이날 주인공 김인우의 우산 속으로 갑자기 뛰어든 운명의 여자, 김태희 역을 맡은 전미도를 처음 봤다. 맡은 역할에 비해 무대 위 등장은 많지 않았는데, 충분히 인상적인 배우였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좀 더 무대에 많이 등장했었더라면, 했다.
그런데 전미도가 <베르테르>에 롯데 역으로 출연한단다. 그것도 '엄테르' 엄기준과 함께. 마음이 급해졌다. <베르테르>는 10여 년 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됐을 때 한 번 봤다(그때 롯데는 추상미였다).
안타깝게도 롯데와 베르테르, 두 주연배우 연기는 희미하지만, 넘버 '왕년의 사랑'을 부르던 오르카 역의 양금석의 연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OST를 아직도, 용케 잘 보관하며 시시때때로 듣곤 했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땜빵으로 나가 공연해도 될 만큼 듣고 또 들어 입에 익은 넘버(뮤지컬에 들어가는 곡)들. 그런데 '전롯데(전미도+롯데)'라니.
연말을 맞아 보고 싶은 뮤지컬은 많고 예산은 제한적이라, 또 이미 한 번 봤다는 이유를 들어 제일 저렴한 좌석으로 예매를 했다. 3층의 맨 앞 줄. 그럭저럭 볼 만하다는 블로거들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잘 보이겠냐?"고 초치는 친구 반응까지 다양했지만,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지난 5일, '전롯데(전미도+롯데)'와 '엄테르(엄기준+베르테르)'를 만나러 갔다.
한층 밝아진 무대, 더 무거워진 내용
어딘가에 10여 년 전 공연 내용을 조금이라도 끄적여 뒀으면 좋았을 걸.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 내가 10여 년 전 일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달라졌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뭘. 기억 속 다소 칙칙했던 무대는 극의 분위기와 '쫌'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밝아졌고(배우들의 화이트 의상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적응이 잘 안 됐다), 대신 내용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롯데였다.
10여 년 전 세종문화회관 객석 끄트머리에서 공연을 보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남은 의문는 과연 롯데가 베르테르를 좋아했는가였다. 베르테르의 구애에 조금이라도 '흔들렸는가' 였다. 무대에서 그 증거가 될 만한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의 롯데는 달랐다.
2막에서 알베르트와 결혼한 롯데가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와 만났을 때 그 반응. 남편 알베르트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했던. 베르테르를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하는 롯데에게 10여 년 전 롯데는 찾기 어려웠다. 베르테르가 "마음의 눈으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하라"고 용기를 준 카인즈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 처형 당한 뒤 롯데가 베르테르에게 갖는 감정의 변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카인즈가 죽은 뒤 방황하던 베르테르는 결국 롯데에게 작별을 고하는데, 이때 둘이 부르는 넘버 '제발'은 그야말로 소름 작렬.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왜 '엄테르'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워낙 멀리서 봤기에 표정이라든가 섬세한 연기를 포착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쌍안경마저 없었더라면…), 곡도 그다지 안정적으로 들리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둘이 넘버 '제발'을 격정적으로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쓰러질 뻔했다.
잡을 수도 없고, 떠나 보내기도 싫은 롯데. 떠나기 싫지만, 떠나지 않을 수도 없는 베르테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당신은 저를 만날 수 있고, 만나주세요. 예전 그대로. 다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롯데에게 베르테르는 "왜 당신은 나의 마음을 그토록 외면을 하시나요. 받아주세요. 불타는 마음, 제발 부탁이예요"라고 하는 이 장면은 <베르테르>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공연 보고 남는 건 음악인데, OST가 없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스퀀스. 스포일러는 되고 싶지 않기에 "정말 최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었어. 총 소리 '빵'나는 거보다 아이디어 참 좋지 않니?"라는 한 관객의 말로 대신하련다. 베르테르의 마지막 넘버 '발길을 뗄 수 없으면' 가운데 이 대목, "나 그대를 차마 떠나려는데, 내 발길이… 붙어서… 뗄 수가 없으면", 공연장을 나서는 내 맘이 딱 이랬다.
지금도 내 귀엔 10여 년 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옥 같은' 넘버들이 흐르고 있다. 이번 공연장에서는 2013년 <베르테르> OST는 구할 수 없었다. 왜지? 혹자는 "공연 보러 많이 오라고 안 만든 게 아닐까"라는데, 할 수만 있다면 꼭 구하고 싶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의 롯데와 베르테르를 또 기약할 수 있게.
아, 그리고 기사를 쓰게 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두 가지. 내가 2002년 3월에 본 공연에서 롯데는 분명 추상미였는데, 베르테르는 누가 맡았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났다. 그런데, 자료를 확인해 보니 엄기준·조승우 더블 캐스팅이었다는 거. 그리고 알베르트 역은 이석준이었는데, 바로 지금 추상미의 남편이라는 거.
이날 주인공 김인우의 우산 속으로 갑자기 뛰어든 운명의 여자, 김태희 역을 맡은 전미도를 처음 봤다. 맡은 역할에 비해 무대 위 등장은 많지 않았는데, 충분히 인상적인 배우였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좀 더 무대에 많이 등장했었더라면, 했다.
▲ <베르테르>의 포스터. ⓒ CJ E&M(주)
안타깝게도 롯데와 베르테르, 두 주연배우 연기는 희미하지만, 넘버 '왕년의 사랑'을 부르던 오르카 역의 양금석의 연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OST를 아직도, 용케 잘 보관하며 시시때때로 듣곤 했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땜빵으로 나가 공연해도 될 만큼 듣고 또 들어 입에 익은 넘버(뮤지컬에 들어가는 곡)들. 그런데 '전롯데(전미도+롯데)'라니.
연말을 맞아 보고 싶은 뮤지컬은 많고 예산은 제한적이라, 또 이미 한 번 봤다는 이유를 들어 제일 저렴한 좌석으로 예매를 했다. 3층의 맨 앞 줄. 그럭저럭 볼 만하다는 블로거들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잘 보이겠냐?"고 초치는 친구 반응까지 다양했지만,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지난 5일, '전롯데(전미도+롯데)'와 '엄테르(엄기준+베르테르)'를 만나러 갔다.
한층 밝아진 무대, 더 무거워진 내용
어딘가에 10여 년 전 공연 내용을 조금이라도 끄적여 뒀으면 좋았을 걸.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 내가 10여 년 전 일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달라졌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뭘. 기억 속 다소 칙칙했던 무대는 극의 분위기와 '쫌'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밝아졌고(배우들의 화이트 의상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적응이 잘 안 됐다), 대신 내용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롯데였다.
10여 년 전 세종문화회관 객석 끄트머리에서 공연을 보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남은 의문는 과연 롯데가 베르테르를 좋아했는가였다. 베르테르의 구애에 조금이라도 '흔들렸는가' 였다. 무대에서 그 증거가 될 만한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의 롯데는 달랐다.
2막에서 알베르트와 결혼한 롯데가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와 만났을 때 그 반응. 남편 알베르트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했던. 베르테르를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하는 롯데에게 10여 년 전 롯데는 찾기 어려웠다. 베르테르가 "마음의 눈으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하라"고 용기를 준 카인즈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 처형 당한 뒤 롯데가 베르테르에게 갖는 감정의 변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 '베르테르' 프레스콜하이라이트 시연을 선보이는 엄기준과 전미도 ⓒ 박정환
카인즈가 죽은 뒤 방황하던 베르테르는 결국 롯데에게 작별을 고하는데, 이때 둘이 부르는 넘버 '제발'은 그야말로 소름 작렬.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왜 '엄테르'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워낙 멀리서 봤기에 표정이라든가 섬세한 연기를 포착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쌍안경마저 없었더라면…), 곡도 그다지 안정적으로 들리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둘이 넘버 '제발'을 격정적으로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쓰러질 뻔했다.
잡을 수도 없고, 떠나 보내기도 싫은 롯데. 떠나기 싫지만, 떠나지 않을 수도 없는 베르테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당신은 저를 만날 수 있고, 만나주세요. 예전 그대로. 다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롯데에게 베르테르는 "왜 당신은 나의 마음을 그토록 외면을 하시나요. 받아주세요. 불타는 마음, 제발 부탁이예요"라고 하는 이 장면은 <베르테르>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공연 보고 남는 건 음악인데, OST가 없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스퀀스. 스포일러는 되고 싶지 않기에 "정말 최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었어. 총 소리 '빵'나는 거보다 아이디어 참 좋지 않니?"라는 한 관객의 말로 대신하련다. 베르테르의 마지막 넘버 '발길을 뗄 수 없으면' 가운데 이 대목, "나 그대를 차마 떠나려는데, 내 발길이… 붙어서… 뗄 수가 없으면", 공연장을 나서는 내 맘이 딱 이랬다.
▲ <베르테르> 커튼콜 현장. 아름다운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 최은경
지금도 내 귀엔 10여 년 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옥 같은' 넘버들이 흐르고 있다. 이번 공연장에서는 2013년 <베르테르> OST는 구할 수 없었다. 왜지? 혹자는 "공연 보러 많이 오라고 안 만든 게 아닐까"라는데, 할 수만 있다면 꼭 구하고 싶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의 롯데와 베르테르를 또 기약할 수 있게.
아, 그리고 기사를 쓰게 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두 가지. 내가 2002년 3월에 본 공연에서 롯데는 분명 추상미였는데, 베르테르는 누가 맡았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났다. 그런데, 자료를 확인해 보니 엄기준·조승우 더블 캐스팅이었다는 거. 그리고 알베르트 역은 이석준이었는데, 바로 지금 추상미의 남편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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