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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불복 의원 제명안'은 새누리당의 무리수

[분석] '헌정질서 중단 획책·대통령 명예훼손' 주장... 10년 전 '역사'를 보면

등록|2013.12.10 16:10 수정|2013.12.10 18:57

새누리, 양승조·장하나 징계안 제출새누리당 김도읍·강은희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민주당 양승조·장하나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남소연


[기사 재보강 : 10일 오후 5시 34분]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장하나 민주당 의원과 '공안통치'를 앞세운다면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고 박 대통령에게 경고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을 이에 비유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10일 두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출하겠다고 '칼'을 뺐다.

그러나 의원직 제명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

물론, 이들에 대한 '자격심사' 청구는 155석의 새누리당만으로도 가능하다. 국회법 138조에 따르면 "의원이 다른 의원의 자격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에는 30인 이상의 연서로 자격심사를 의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법 155조에 규정된 '징계사유'나 의원직 제명을 위한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2/3 이상 찬성)를 살펴보면 두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처리될 수 없다.

"장하나·양승조, 민심모독·헌정질서 중단·국론분열 증폭"

▲ 18대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한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오후 새누리당의 출당 요구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은 10일 자신의 발언을 문제 삼아 의원직 제명을 추진 중인 새누리당을 향해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을 주장해도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유신시대 긴급조치 1호가 떠올랐다"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 남소연


국회법에 규정된 '징계사유'는 청렴 및 직권남용 금지 의무 위반, 국가기밀누설, 국회법상 의무 위반, 공직자윤리법 위반, 국회의원윤리강령·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위반 등 총 12가지로 나뉜다.

이중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품위 유지 규정'인 국회법 25조와 ▲ 국회의원 품위유지 및 국민의사의 충실한 대변 ▲ 공익 우선 ▲ 부당이득 제재 및 청렴·검소생활 ▲ 건전한 정치풍토 조성 ▲ 국민에 대한 책임 이행 등이 명시된 국회의원윤리강령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장 의원의 '징계사유'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투표를 한 국민과 100만 표 이상 표차로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심을 모독했고, 헌정질서 중단을 획책하고, 국론분열을 증폭시켜 민생현안 논의에 집중해야 할 국회를 소모적인 논쟁의 장으로 만들었다"며 국회법 25조 및 국회의원윤리강령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또 양 의원에 대해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윤리적·비도덕적 발언을 했다"면서 "불행했던 개인 가족사를 들먹이며 현직 대통령을 저주하는 것은 전·현직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장 의원과 같은 위반사유를 들었다.

'민심모독' '헌정질서 중단 획책' '국론분열 증폭' '전·현직 대통령 명예훼손' 등 과격한 수사를 사용했지만 실상 국회의원 품위 유지 의무 위반과 정쟁 유발에 따른 "민주정의의 발전과 국리민복(國利民福·국익과 국민의 행복) 증진에 이바지하도록 돼 있는"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사유로 최고 징계수위인 '제명'까지 얻어낼 가능성은 낮다. 새누리당은 앞서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때와 달리, 이번 사태에 대해 자격심사 청구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당 지도부가 '제명안'이라고 말했지만 그 내용은 '징계안'에 가까운 셈이다.

그러나 두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대표 발의한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선거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성을 확보한 당선자에 대해 근거 없이 '사퇴하라', '보궐선거 치르자'고 하는 건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제명'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징계요구안에) 구체적으로 '제명 등 징계를 요구한다'고 돼 있다"면서 "윤리특위의 심사를 존중하는 한편, 윤리특위에서 제명과 다른 징계를 결정할 경우, 다시 (새누리당이) 징계요구안을 내야 하는 절차적 문제가 있어 포괄적으로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최고 징계수위인 제명을 요구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징계요구안에 비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대표발의하는 이의 수사, 문장의 차이"라고 말했다. 또 자격심사를 따로 청구하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는 "거기까지는"이라며 답하지 않았다. 이날 제출한 징계요구안에는 새누리당 의원 155명 전원이 참석했다.

야당의 '대통령 사퇴' 주장, 10년 전 새누리당은 어땠나?

▲ 한나라당은 2004년 2월 27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불법선거 규탄' 집회를 열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불법 선거개입과 관권선거를 중단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 등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이종호


사상 최초 대선 재검표지난 2003년 1월 27일 서울 마포 소재 서울지법 서부지원 10층에서 16대 대선 은평구 유권자들의 재검표가 실시되고 있다. 법복을 입은 법관이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을 이 지역출신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오른쪽)이 지켜보고 있다. 16대 대통령 당선자무효소송과 관련 80개 개표구에 대한 재검표 결과 득표수 집계 오류가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한나라당은 28일 "재검표 결과를 검허히 수용하고, 신정부(노무현정부) 출범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발언이 징계대상인지도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원이 현직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하거나 국정운영을 비판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도 야당 당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김무성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2003년 9월 3일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김 의원은 당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오쩌둥을 존경한다고 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이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사실 김 의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5일 만에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재검표를 실시하도록 했다. 2003년 1월 재검표 결과가 나오자, 한나라당은 대국민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소추 등 사퇴 촉구 발언은 끊임없이 나왔다.

2003년 3월 7일 이규택 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대북송금 특법검과 관련,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권능과 입법권을 짓밟는 행위로 간주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중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의원총회를 열어 탄핵소추 검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3년 6월 12일 국회 통일외교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불명예스럽게 탄핵소추를 당하느니 대통령직을 하야할 것을 총리직을 걸고 건의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관련 기사 :한나라, 노 대통령 '공산당' 발언 탄핵소추 검토). 또 유흥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3년 8월 의원총회에서 "김두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은 국정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퇴진운동의 시발점"이라며 "한나라당은 대단한 결심을 해야하며 당장 '대통령 하야 결의안'이라도 내야 할 판"이라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계속하면 '발목잡기', 철회하면 '오락가락'?).

'탄핵 역풍' 겪고도 '대통령 사퇴' 반복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며 2004년 4월 총선에서 호된 역풍을 맞고도 '대통령 사퇴' 주장은 반복됐다.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10월 25일 의원총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과 관련해 "대통령은 자신의 명운을 걸고 이 문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만큼 헌재판결이 났던 날 자신의 말에 따라 사퇴했어야 한다, 책임있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한나라 비주류, 지도부 강력 성토).

안택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10월 28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국정을 올바르게 쇄신하든지 아니면 더 큰 국가적 불행을 초래하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직을 자진 사퇴하든지 양자택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 한나라당 의원들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는 2004년 8월 28일 저녁 전남 곡성 봉조리 농촌체험마을에서 '환생경제'를 창단기념으로 공연했다. 아버지 '노가리'역을 맡은 주호영 의원이 '올챙이'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 이종호


오늘날 새누리당의 주장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 명예훼손'에 따를만한 발언도 많았다. 한나라당 의원 24명으로 구성됐던 극단 '여의도'가 2004년 8월 노 전 대통령을 '노가리'로 비하하고 'XX할 놈' 등 극언을 퍼부었던 '환생경제'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태도는 대정부질문 같은 공식석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구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11월 12일 국회 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권의 언론관계법을 들며 "권력자가 언론을 자기 손바닥에 갖고 있는 나라를 무슨 나라라고 합니까? 독재국가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지만, 나랏일은 거꾸로만 가고 있다, 내 나름의 해답을 찾아보니, 마음은 있으나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더라"며 "요즘 유행하는 언어습관으로 보면, '무식하다' '꼴통이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고도 주장했다(관련 기사 : 온종일 막말,폭언... 이러려고 국회 열었나).

정두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같은 날 대정부질문 서면질의서에 "국민들을 심리적으로 학살하는 현 정부는 정신적으로는 캄보디아의 폴포트 정권과 다름없는 정부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표현, 열린우리당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민주 "새누리, 대선불복 말할 자격 없어"... 새누리 "성격 다르다"

박수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이 점을 거론하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당선무효소송과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해 재검표까지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탄핵까지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고 천막당사까지 치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한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 같은 지적에 '사안의 성격이 다르다'고 맞받고 있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김 의원의 발언은)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이고 (장하나 의원처럼)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 아니었다, 성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또 재검표 등과 관련, "우리는 그에 대해 사과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민주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가원수는 개인이 아니다"며 민주당의 사과를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국가원수는 개인이 아니다. 국민적 권위의 상징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성이 있는 분이다. 또 인간적 아픔은 서로 피해가는 것이 최소한의 정도였지 않나. 그러니 이런 것은 분명히 정리해야겠다. 인간적 아픔을 찌르고 저주로 볼 수밖에 없는 비판을 퍼붓는다면 국민에게 극도의 혐오감과 깊은 상처를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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