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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사건 강기훈의 20년 전쟁

[주장] 검찰이 '직접 만든' 사건... 이제 진실 밝히고 책임자가 사죄해야

등록|2013.12.15 18:52 수정|2013.12.15 18:52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재심 재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후배 강기훈이 22년 동안의 억울함을 털어낼 것 같다. 12일 '강기훈유서대필사건' 재심 재판에서 법원은 김기설의 유서는 강기훈이 아닌 김기설 본인이 쓴 것이라는 유력한 증거를 확인했다. 무죄가 전망된다.

1991년 노태우의 공안통치에 저항해 많은 후배들이 몸을 던졌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도 그 대열에 참여했다. 김기설은 나와 성남 민청련을 함께 했던 마음 착한 후배다. 당시 정권과 검찰은 김기설의 유서는 강기훈이 대신 써주었고, 자살을 방조했다고 기소했다.

필자도 유서의 글씨체와 똑같은 김기설의 유품 수첩 사본(투신한 날 아침 병원에서 가족들에게 연락하려고 수첩 전화번호명단을 복사한 것이다)을 재판부에 제시하고 법정에서 증언을 했지만 모든게 조작이라고 배척당했다.

강기훈은 무죄다

세월이 흘러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재심을 권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재심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거기에는 검찰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다. 다른 공안사건 재심과 달리 검찰이 직접 사건조작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안사건은 과거 박정희 중앙정보부나 전두환 안기부(이른바 '남산'),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른바 '남영동')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조작됐다.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고문 등으로 조작한 내용 그대로 조서를 꾸며 기소했다. 즉 검찰은 고문 등 가혹행위의 직접 가해자가 아니어서 여러 재심사건 재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강기훈 사건은 달랐다. 검찰이 직접 나서서 유서를 대필한 사람이 강기훈이라고 만들고, 사건을 끌고 갔다. 다른 사건과 달리 핑계 댈 곳이 없었다. 강기훈 사건 재심 재판에서 검찰이 이렇게 완강하게 저항하고 무려 6년이나 끌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관련된 1981년 '학림사건' 재심 고법, 대법원 재판에서 검찰 자신들은 고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려 했다. 결국 대법원은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하지 않았다해도 수사기관(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 속에서 작성된 수사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검찰의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하고 무죄를 최종 결정했다. 검찰은 이렇게 반쪽짜리 면죄부를 얻었다.

검찰은 자신의 행위에 무오류를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그렇듯 무오류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검찰은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서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했다. 강기훈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노태우 공안통치에 맞서 일어난 전국적인 저항을 차단하기 위해 정권과 합작해 벌인 희대의 조작사건이다.

강기훈은 자살방조죄로 3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20여 년 넘도록 유서를 대신해 써주고 동료의 죽음을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제 진실이 밝혀질 때가 왔다. 강기훈과 김기설, 두 후배의 명예가 회복될 때가 왔다. 이제 강기훈과 검찰의 20년 전쟁을 끝낼 때가 됐다. 승자는 강기훈이고, 패자는 검찰이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 1991년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의 공신들이라는 점이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지금의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 곽상도를 비롯해 당시 검사들은 박근혜 캠프에서 활약했다. 최종 판결이 있을 내년 봄까지 검찰과 이들 공신들이 이 재판을 어떤 방향으로 비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과거사 재심사건 재판에서 재판부는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 많은 일들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

20여 년 넘게 마음 속 깊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고, 몸에 중한 병까지 얻은 강기훈 후배. 남은 시간 용기를 잃지 말고 진실을 밝혀 정의를 세워주길 바란다.

강기훈은 무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 '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비서관 최경환 이야기' www.sayno.co.kr 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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