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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보다 더 예쁜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인터뷰] 지극히 평범한 '스타 할머니' 황명순씨를 만나다

등록|2013.12.16 14:32 수정|2013.12.16 15:52
12월 초 출근길에 '한효주'라는 배우가 있고, 그가 앞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이었다. 평소처럼 세종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공주의 시골 집으로 농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세종시 장군면 소재지를 지나는데 길가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효주라는 배우가 큰 상을 타서 축하한다는, 동네 주민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었다.

처음에는 한효주의 고향이 장군면인가 싶었다. 헌데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의 할머니가 살고 있고, 아버지가 나서 자란 곳이란다. 동네 식당에 한효주 할머니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바로 옆이란다. 보아하니, 한효주 할머니네 일가는 이 근처에서는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인사였다. 한효주씨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동네 사람들은 친숙한 것 같았다.

한효주씨도 마찬가지였다. 한효주씨의 호적상 출생지는 장군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충북 청주지만, 4살 때까지는 부모와 떨어져 이곳에서 할머니 보살핌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사실상 동네 주민들은 한효주씨를 고향 사람으로 여기는 듯했다.

당대 스타의 할머니, 의외로 소박하네요

할머니와 한효주할머니가 "이봐 얼마나 이뻐?"하며 손녀 한효주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처음 봐서 낯이 익지 않은 탓인지 그렇게 예쁜 얼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손녀를 맹목적일 정도로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씨가 더 예뻤다. ⓒ 김창엽


"한효주씨 할머니시죠? 어디 다녀 오세요?"
"노래갔다 오는 길인데, 누구세요?"

지난 6일 만난 한효주의 할머니 황명순(75)씨는 기자가 험상 궂게 생긴 얼굴에 거친 복장을 하고 다가섰는데도, 놀라지 않고 부드럽게 되물었다. "같은 세종 주민인데요, 인터뷰 좀 하고 싶어서요. 죄송하지만 집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노래 교실에 다녀온다는 할머니는 "그러세요"하고 선선히 대답했다.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 시간인데도, 할머니는 낯선 남자를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집 안은 전형적인 시골집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낡고 한기가 좀 느껴졌다. 쾌쾌한 시골집 특유의 냄새도 났다. 당대의 스타 여우가 심심치 않게 들르는 할머니 집으로는 지나칠 만큼 소박했다.

한효주가 누군지보다는, 스타의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가 더 궁금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특별할까. 나는 이번 달 달력을 넘기면 101세인 할머니와 80세가 다 된 부모, 이렇게 노인 셋을 모시고 사는 처지다. 노인들의 삶, 아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요즘 참 생각이 많다. 할머니부터 나까지 우리집 네 식구의 평균 나이가 내년이면 77세다. 나는 이 시대의 한국인으로서 '미래를 사는' 셈이다. 빠르게 다가오는 고령화시대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까.

할머니·부모와 함께하는 생활은 3년 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런 생활 환경은 지금까지 50년도 넘게 살아온 그 어떤 세상과도 달랐다. 솔직히 어려운 쪽이 훨씬 많다. 지난 봄에는 난생처음 우울증에도 걸려 봤다. 가까이에 사는 장모는 2~3년 전부터 치매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증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흔히 그레이(grey)라는 단어로 수식하는데, 내겐 문자 그대로 잿빛이다. 스타의 할머니는 인생 황혼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인간으로서 효주는 참 괜찮은 아이야"

손녀에게 부쳐 줄 호박황명순 할머니는 한효주를 신생아 때부터 직접 키워 정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최근 밭에서 딴 호박인데, 생김새가 수박처럼 너무 특이해 손녀에게 부쳐 줄 것이라고 몇번이고 얘기했다. 평생 농군으로 살아왔는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 김창엽


"우리 효주가 정말 예뻐. 손녀라고 해서 그러는 게 아냐. 어릴 때부터 그랬어. 안과 밖이 똑 같은 애야."

한효주씨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효주씨 덕분에 할머니를 알게됐으니 말이다. 할머니의 말끝에는 한효주씨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황 할머니는 한효주씨의 아버지를 포함해 슬하에 3남 3녀를 뒀다. 손자 소녀는 모두 열셋이다. 한효주의 아버지는 황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다.

"스타라서 예쁜 거 아니에요? 용돈도 두둑이 주고…."
"아냐, 아냐 우리 손자 손녀들 다 예뻐, 똑같이 예뻐. 내가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효주는 참 괜찮은 아이야."

할머니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다른 손자 손녀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동네에서는 한효주씨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는, 다른 손녀의 사진도 보여줬다. 한효주씨의 얼굴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할머니가 사진상으로 보여준 얼굴로만 볼 때는 동네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할머니는 하나같이 건실한 손자 손녀들을 대견해했다. 또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들이 고맙다고도 했다. 돌아가신 한효주씨의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복이 많다"는 말도 여러 차례 했다. 할머니의 성품은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복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곧바로 들 정도로 후했다. 말이나 제스처, 행동거지에서 도대체 꾸밈이 없었다.

나는 과거 상업신문의 기자로 적지 않은 시간을 일했다. 당시 기준을 적용하면, 이런 할머니는 인터뷰 감으로 빵점에 가깝다. 동네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너무도 흔한 유형처럼 보이는 인물인 탓이다.

헌데 현직을 떠나고서야, 평범한 사람이 주변에 참으로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상명세를 대면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내 친구가 있다. 우리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과 교류의 폭도 넓은 친구다. 이 친구 평소 주장이 정말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안 된다"는 거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의 균형... 할머니의 인생관

가족사진할머니가 가족사진 중에서 어렸을 때 한효주 양을 가리키고 있다. 할머니는 3남3녀를 두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 사람이 동네에서 한양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는 또다른 손녀이다. ⓒ 김창엽


평범하지 않은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남편은 변호사, 아내는 대학교수지만 부부의 불화가 심각한 가정도 있다. 딸을 국내 최고의 대학에 수석 입학시켜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샀지만, 고부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어 힘들어 한다는 부부도 있다. 또 부부가 전문직 종사자로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예도 있었다. 벌이가 변변치 않고, 병치레가 끊이지 않는 '잘 못나가는' 사람들의 고통은 말해서 무엇 하랴.

요컨대, 이론적으로 평균적인 삶은 있을망정, 진짜 평균적으로 혹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직장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돈벌이나 건강도 그저 그만그만하고…. 이런 집안 혹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는 얘기다.

"효주가 지난 추석 때 할아버지 산소에 가느라 내려온 게 가장 최근이지. 얼마 전에는 김장할 때도 내려오겠다고 했는데, 일정이 바빴나 봐. 못 왔어. 이번 달 28일에 사촌 언니 결혼한다니까 그때는 볼 수 있겠지."

한효주는 13명의 손자손녀들 가운데 직접 키운 몇 안 되는 아이 가운데 하나라고 황 할머니는 말했다. 젖먹이 때부터 아장아장 걸으며 예쁜 짓을 할 때까지 키웠으니, 내 자식보다 정이 더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세상을 대하는 황 할머니의 태도는 명료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도, 마음은 열려 있고, 감추거나 숨기려 하는 게 없었다. 말수가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었다. 영민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둔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여러 번 비쳤다.

겉보기에 아주 평범한 인생관을 가진 할머니였다.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은, 들어오고 나가는 게 균형 잡힌 삶을 칠십 평생 추구해온 부류라고나 할까. 자급자족을 꿈꾸며 시골로 들어간 나 같은 사람에게 황 할머니의 인생관 혹은 가치관은 시사하는 게 적지 않았다.

할머니와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한효주씨에 대해 검색해봤다. 다른 건 몰라도 한효주씨가 인간성으로 주변 사람에게 어필한다면 할머니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효주씨가 용이라면, 황 할머니는 개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용은 큰 강이나 호수가 아니라 개천에서 나야 진짜 용이지 않을까. 너도나도 쉽게 용이 되는 큰 호수에서 나는 용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용 맛'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사교육과 스펙 갖추기를 통해 찍어내는 용들이 우리 사회에는 넘쳐나는데, 이들은 기껏해야 '성형 인재'로 밖에 쳐줄 수 없을 것 같다.

집 주변에서 쉬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개천, 그러나 때로는 용도 키워낼 수 있는 저력이 감춰진 개천을, 황 할머니를 보면서 상상해 본다. 평범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내공이 있는 개천 말이다.  

[취재 후기] 할머니는 기자를 만나본 게 생전 처음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는데,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손녀와 아들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며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스타의 시골 할머니와 인터뷰는 그 나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효주씨의 아버지와 선을 댔다. 나와 동갑인 그는 흔쾌히 기사화해도 좋다고 전해왔다.

황명순 할머니는 스스로 복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다. 할머니는 수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큰 사위 이야기를 하면서 눈가에 물기를 비쳤다. 그 사위 때문에 좋아하던 노인 댄스도 끊게 됐다.

할아버지도 10여 년 전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별세했다. 할머니 자신도 두어 해 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사람 사는 세상 누구에게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모든 사안을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려 하는 사람이었다. 황 할머니 같은 사람이 유별나게 사랑스러워 하는 혈육, 한효주씨의 미래 인생은 어떨까? 내가 관심을 갖고 장래를 관찰해볼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덧붙이는 글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sejongsee.net은 세종시 커뮤니티 소식을 전하는 비영리 지역 포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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