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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언니>, 비극인데 이렇게 웃어도 되나

[정지선의 공연樂서] 남으로 건너온 목란의 삶을 통해 바라본 아픈 현실

등록|2013.12.19 09:35 수정|2013.12.19 10:49
김은성 작가·전인철 연출의 연극 <목란언니>는 2011년 두산아트랩에서 낭독공연으로 첫 선을 보인 뒤 2012년 두산아트센터 경계인시리즈를 통해 소개됐다. 그리고 그해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과 동아연극상 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혹자들은 이 대목에서 '작품성과 극의 재미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목란언니>는 단언컨대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을 만큼 재밌다.

마름모꼴의 무대를 객석이 에워싸고, 객석 양 끝에는 두 개의 작은 무대가 있다. 중앙 무대는 목란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주로 진행되는데 비해 마주보고 있는 양끝 작은 무대는 김일성의 초상화와 자본 앞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인물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크고 작은 세 개의 무대는 시선을 분산시키지만, 퍼즐조각처럼 흩뿌려진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는 그로 인해 탄력을 유지하며 결말에 이르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비극임에도 무겁지 않은 연극 <목란언니>

▲ 귀여운 율동을 섞어가며 맑은 목소리로 북한가요들을 부르는 목란(정운선)의 모습에 태산과 태강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듯, 관객들도 넋을 놓은 채 바라본다. ⓒ 두산아트센터


조목란 역을 통해 지난해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거머쥔 정운선의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 귀여운 율동을 섞어가며 맑은 목소리로 북한가요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 태산(정승길 역)과 태강(안병식 역)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듯, 관객들도 넋을 놓은 채 바라본다.

특히,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가 조대자의 잠적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채 태산과 태강 그리고 태양의 집을 차례로 찾아가 5000만 원을 요구하며 망치를 들이대는 것조차 서슴지 않은 장면에서는 변해버린 목란의 모습과 그녀를 둘러싼 아픈 현실이 차례로 교차하면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 연극 <목란언니>는 남북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풀어내 공감대를 형성했고, 탈북자 목란의 비극을 조대자 일가와의 악연으로 엮어 자본주의에 참혹한 현실을 비췄다. ⓒ 두산아트센터


연극 <목란언니>는 남북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풀어내 공감대를 형성했고, 탈북자 목란의 비극을 조대자 일가와의 악연으로 엮어 자본주의에 참혹한 현실을 비췄다. 자칫 우울하고 어둡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에 김은성 작가는 실감나는 대사들과 북한가요를 활용해 디테일을 살려냈고, 전인철 연출은 빠른 장면 전환과 스피디한 전개로 비극임에도 무겁지 않으면서 경쾌하게 풀어냈다.

연극 <목란언니>는 대충 훑어봐도, 찬찬히 뜯어보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이제 마지막 공연일까지 남은 기간은 10여 일 남짓, 오는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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