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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날렸는데... <응사>에는 왜 안 나오지?

전국 20여 대학에 만들어진 생활도서관... 소모임 조직 등으로 활성화 모색

등록|2013.12.20 15:17 수정|2013.12.20 15:17

▲ <응답하라 1994> ⓒ TvN


<응답하라 1994> 열풍이 거세다. 11월 30일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94> 13회는 시청률 9.6%(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했다.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이다. 쓰레기, 칠봉이, 삼천포는 이미 스타가 돼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방송 직후 인터넷 검색창은 온통 <응답하라 1994> 키워드로 채워진다. OST로 등장한 1990년대 가요는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오른다. 대한민국은 '응사앓이' 중이다.

<응답하라 1994>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1990년대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엇갈린 사랑과 고백이 난무하던 스무 살, 어수룩하지만 꿈 앞에 당당한 청춘의 모습이 드라마에 드러난다. 조건을 따지며 연애를 하고, 꿈을 찾기보단 '삼성 고시'를 준비하는 지금 대학생 모습과는 다르다. 1990년대 캠퍼스, 당당한 청춘들이 있던 그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1990년대 시작된 생활도서관

1990년 3월, 고려대생 김규환씨(당시 28세)는 대학 중앙도서관이 독서실처럼 이용되는 현실에 문제를 느끼고 생활도서관을 만들었다. 이후 건양대, 서울대, 수원대, 이화여대, 인하대 등 전국 20여 개 대학에 생활도서관이 설립됐다. 생활도서관에서 시험이나 취직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입구에 가방을 맡겨 놓는 곳도 있었다. 생활도서관은 '지식과 교양이 넘치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1990년대 대학생들의 바람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높은 이용자 만족도를 보이며 사랑 받아온 생활도서관이 2013년 현재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학 중앙도서관에 밀려 이용자 수가 대폭 감소했으며, 아예 생활도서관이 없어진 대학도 있다. 현재는 수도권 내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한국외대만이 생활도서관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호평받은 생활도서관이 현재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하대학교 학생들의 생활도서관 이용실태 조사학생 122명 중 21%가 생활도서관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고, 안다고 답한 79%의 학생 중 63%의 학생들은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조민지


생활도서관 이용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월 14일부터 5일간 122명의 인하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결과, 78.68%의 학생이 생활도서관의 존재를 안다고 답했으나 14.76%의 학생만이 생활도서관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생활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 정석도서관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53.84%) ▲ 생활도서관이 무엇인지 몰라서(21.32%) ▲ 갈 시간이 없어서(15.38%)로 나타났다.

생활도서관을 이용하는 목적도 ▲ DVD룸을 이용하기 위해(71.8%) ▲ 전공과 취업공부를 하기 위해(28.2%)가 가장 많았다. 결과적으로, 생활도서관이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는 ▲ 취업 문제 ▲ 인지도 문제 ▲ 정체성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2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이 9.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통계 수치로만 보면 심각해 보이지 않지만 군인, 대학원생 등을 제외한 취업대상자들의 평균 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대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취업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보다 토익, 적성검사 책이 더욱 익숙한 게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취업 문제는 생활도서관이 학생들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사회적 원인이다.

두 번째로 생활도서관 인지도 문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21.32%의 학생이 생활도서관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했으며, 알고 있다고 답한 학생 중 63%의 학생들은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들어는 보았으나, 정작 학생들이 책을 읽거나 토론할 장소를 선택할 때 생활도서관이 선택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생활도서관은 회원들에게 도서대출, DVD 및 공간 대여 등의 혜택을 제공하지만, 인하대 전체 학생 중 겨우 10%만이 생활도서관 회원이다. 생활도서관의 인지도가 낮고 홍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활도서관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보를 하지만, 낮은 인지도와 이용률은 생활도서관의 소통방법이 학생의 시선을 끌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생활도서관 정체성 문제다. 인하대 생활도서관 운영진은 노동운동가를 초청해 학생들과 세미나를 갖는 등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한다. 2014년 생활도서관 관장 당선자 주영찬(조선해양공학과, 3학년)씨는 "생활도서관이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도록 운영한다"고 방침을 밝혔다. 생활도서관은 자치기구로서 대학 중앙도서관이나 열람실과 달라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생활도서관을 그저 열람실로 생각한다. 생활도서관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DVD룸 이용(71.8%)과 개인공부(28.2%)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결과는 이러한 정체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활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결실 '생도넷'

생활도서관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용자는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설립 목적마저 모호한 상황이다. 최근 대학 내에서 이용가치가 낮다고 판단되는 부서나 기구가 통폐합되고 있다. 생활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2011년 철폐 위기에 놓였던 건국대 생활도서관만 보아도 상황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도권 내 생활도서관이 2012년 '생활도서관 네트워크'(아래 생도넷)를 만들었다.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한국외대의 생활도서관 운영진이 참여했다. 생도넷의 목표는 공동사업을 통한 생활도서관의 활성화다.

대학 중앙도서관과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라는 위상이 있기 때문에 정체성과 노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생도넷은 여러 차례 '생도의 밤' 모임을 열어 '자치'를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해왔다. 대중적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공동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학기 중에는 강연회, 작가 초청, 문화 공연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다양한 행사들도 진행한다.

수도권 내 생활도서관이 생도넷을 통해 생활도서관 살리기에 집중한 가운데 각 대학 특성에 맞는 해결책도 등장하고 있다. 고려대 생활도서관은 소모임 활성화에 집중했다. 운영위원들이 다양한 분야의 소모임을 만들어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읽기, 영어 텍스트 강독, 국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모임 등이 진행중이다. 소모임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많이 참여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서강대는 토론 공간으로 생활도서관을 활용할 계획이며, 이화여대는 예술이 있는 생활도서관을 지향하며 구체적인 운영방향을 수립중이다.

인하대도 생활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주영찬 당선자는 구체적 방안으로 토론공간 활성화를 말했다. 그는 "생활도서관이 대학 내 비판의식을 형성하고 공유하는 토론의 장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설문조사를 해 토론주제를 선정하는 방안이 현재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학내 토론 소모임과의 협력을 구상중이다. 

1990년대 생활도서관은 설립취지를 인정받아 많은 학생의 지지를 받았다. 대학생으로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사회문제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생활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였다. 생활도서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응답하라 1994>가 만든 복고 열풍이 한국 사회를 휩쓰는 중이다.

대학에서 1990년대를 풍미한 생활도서관 열풍이 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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