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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파는 데 번호표까지 뽑고... 풍년이랍니다

[사이버 대자보] 농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등록|2013.12.19 15:47 수정|2013.12.19 15:47
안녕들 하십니까.

사돈의 오촌 당숙 시동생 월급이 얼마인지 빤히 알 수 밖에 없는 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새삼 안녕하시냐고 묻는 일이 낯 뜨겁더라도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안녕들 하신가요.

우박 없이, 폭우 없이, 태풍 없이 지났던 해가 언제였나요. 바람 불면 사과가 떨어질까, 비 내리면 논이 잠길까, 한마지기 풀을 베었는데도 여전히 새벽인 부지런함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농사가 올해는 풍년이랍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아재, 아지매도 풍년이신가요?

올 봄, 법전 농협에서는 이마트에 납품한다며 감자를 농민과 계약재배했습니다. kg당 700원에 계약했는데 7월에 납품하려니 550원이랍니다. 풍년이라 그렇다면서요. 농민들은 무지랭이라서 계약재배가 무슨 뜻인지 모르려니 했던 걸까요.

6살 우리 아들은 짜장면을 좋아합니다. 한 그릇에 5000원 안 주고는 못 먹지요. 그런데 씨 한 봉지값 5만 원, 유박 한 포 8500원, 비닐 한 마끼값 2만5000원, 일손 귀해 자고 나면 오르는 품값 6만 원. 그렇게 목돈 들여 따낸 첫물 고추값이 근당 4500원이랍니다. 아들에게 고추 한 근 팔아 짜장 한 그릇 못 사주는데 풍년이랍니다.

봄에 감자를 심어 씨값도 못 건졌던 친구는 그 자리에 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그 배추 2만 포기를 고스란히 밭에 두고 엎었습니다. 배춧값보다 배추를 뽑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트랙터의 로타리 날이 갈아엎은 건 밭이 아니라 제 친구의 억장이었겠지요. 단지 풍년이라 그렇답니다.

얼기 전에 따느라 전쟁을 치른 사과는 파는 일이 농사짓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안동공판장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서 빨라야 일 주일, 길게는 열흘을 기다려야 순서가 돌아옵니다. 그렇게 기다려 1톤 트럭 가득 싣고 가서 팔아도 통장에 300만 원 입금되면 잘 나온 거라네요. 다만 풍년이라 그렇답니다.

그런 풍년입니다. 그런 풍년이라서 올초 귀농해 열닷마지기 고추농사를 지은 저도 빚이 풍년이구요, 그런 풍년이라서 40%도 안 되는 자급 실정에도 중국산 고추를 자꾸 들여오구요, 그런 풍년이라서 봉성역, 임기역, 현동역을 폐쇄해도 농민들은 차를 몰고 다닐 테니 문제가 없다 하구요, 그런 풍년이라서 자동차 한 대 더 팔자고 호주산 쇠고기를 무관세로 들여오겠다 하구요, 그런 풍년이라서 농투사니 영감 할마이 약을 먹고 죽든 말든 송전탑을 밀어붙이구요, 그런 풍년이라서, 그런 풍년이라서 기어이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묻습니다.

그래서 다들 안녕하시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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