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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한장으로 노숙하는 할매들 "죽을 각오해야..."

[10만인클럽 밀양 리포트⑦] 전쟁터 '밀양 24시'... 분향소에서의 하룻밤

등록|2013.12.24 19:29 수정|2014.03.04 11:12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와 상근 기자로 현장 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1주일여에 걸쳐 기획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 밤이 되면서 추위에 작은 난로 옆으로 모여들고 있다. ⓒ 김종술


2013년 겨울, 밀양의 강바람은 매섭다. 송전탑과 싸우다가 지난 2일 음독자살을 시도한 뒤 12월 6일 사망한 고 유한숙(74) 할아버지 시신은 아직도 싸늘한 냉동고에 갇혀 있다. 영남루 건너편 밀양강 제방에 설치된 분향소도 마찬가지다. 속이 훤히 내비치는 비닐 한 장으로 매서운 강바람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

벌써 세 명째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끊으려고 했다.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농사짓던 고 이치우(당시 74세) 할아버지는 2012년 1월 16일 분신자살했다. 상동면 고정리에서 돼지를 키우던 고 유한숙 할아버지도 송전탑과의 싸움을 스스로 접었다. 그 뒤 또 한 사람이 송전탑 건설 현장 바로 앞 움막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다(현재 이 사람은 밀양 시내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강둑에 설치된 비닐천막... 분향소를 달구는 발길

▲ 장수민, 곽빛나 활동가가 분향소 재단을 청소하고 과일과 떡을 바꿔놓고 있다. ⓒ 김종술


한겨울 매운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분향소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겠다는 밀양 할매·할배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경찰이 한 차례 침탈했지만, 주민들은 비닐 천막을 다시 세웠다. 할매·할배들은 마을별로 돌아가면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조문객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수녀님·신부님·스님·목사님 등 종교인과 고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시민들도 조문을 하러 온다. 지난 15일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108배를 올렸다. 또 아무 말 없이 부조금을 놓고 가는 시민도 있었고, 영정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조문객도 있었다. 때문에 분향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물바다로 변하곤 한다.

전등 한 개와 촛불 두 개를 켜놓고 매일 밤을 지새는 분향소. 지난 15일 오후 분향소를 찾아갔더니, 20여 명의 어르신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자리에 누워 얼굴만 내놓은 채 이불을 덮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은 나무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전과 경찰을 비판했다.

오후 5시에 밀양 대책위 곽빛나·장수민 활동가가 분향소로 이용하는 시계탑 제단을 청소했다. 시든 꽃을 치우고 과일과 떡을 바꿔놨다. 향도 새로 피워 놓고서는 인사를 올렸다. 그 뒤로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들은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학생들의 손에 쥐여 줬다.

"새벽에 쳐들어온다고?"

▲ 분향소 자리를 지키던 어르신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김종술


오후 6시 인근 활동가들이 생활하는 너른 마당에서 제공한 뼛국에 김치 하나로 시장기를 해결했다. 금방 식어 버린 국물에 밥을 말았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벌벌 떨면서 후루룩 먹었다. 강바람이 몰아치자 입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라 비닐 천정에 붙었다.

"새벽에 쳐들어온다고 하더라…. 아니, 아침에 쳐들어 온다카던데?"

날이 어두워지자 주민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는 말들이 나왔다. 분향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찰들이 분향소 안을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인원 파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낮에 밀양시청과 경찰이 자진 철거하라는 내용의 계도장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구급차도 비닐 천막 옆에 세워져 있었다. 뒤숭숭한 분위기다.

그래도 분향소 한켠에서는 이런저런 말들로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난로 주변을 지키던 한 어르신이 "내 땅 가격이 얼만데 3000만 원 정도 준다고 하더라"고 말하자 옆에 계시던 다른 어르신은 "형님, 그 정도면 땡잡은 거죠, 난 산이 5000평 가량 되는데 13만 원 준다고 하던데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어르신은 "돈 벌었네, 술 한잔 사!"라고 말했다. 모두 박장대소한다.

이때 휘리릭 휘리릭 소리를 내며 바람이 비닐 천막을 때렸다. 바닥에 깔아놓은 은박지가 바람에 날아갔다. 손끝까지 파고드는 추위. 온도계는 영상 2℃를 가리키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10℃ 이하로 내려간 듯했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은 옷깃을 여미며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 내셨다. 이때 한 할머니가 단호한 어투로 일장연설을 하셨다.

"우리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살라고 하니까 저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거라요. 그라고 송전탑이 들어오면 밀양은 죽습니다. 사람들이 알면서도 장사하고 일하다 보니 말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늦은 밤 경찰과 실랑이... 분향소는 피곤하다

▲ 비닐 천막의 분향소를 경찰이 둘러싸고 있다. ⓒ 김종술


분향소가 설치된 곳은 밀양교가 있는 도로변 옆 제방이었다. 지나가는 차량의 소음과 라이트 불빛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지나가던 술 취한 어르신이 소란을 피우면서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한참 주사를 부리던 주민이 이번에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였다. 분향소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찰과 주민이 부딪치면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분향소를 들어가기 위해 비켜 달라고 말하자 경찰이 "1인분 지나갈 수 있잖아요"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고 했다. 그게 싸움의 발단이 됐다. 사과를 요구하는 주민과 경찰의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분향소를 지키던 분들이 몰려나갔다. 큰 싸움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얼추 200여 명의 경찰이 시간당 교대를 했다. 두툼한 옷에 털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었다. 그래도 추운지 뜀뛰기를 하면서 몸에 열을 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작업복 차림에 추위와 싸우면서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자정께 추위를 견디며 잠자리에 몸을 누였다.

▲ 비닐 한 장에 이슬만 가리고 이불 한 장에 노숙하고 있는 주민들 ⓒ 김종술


하지만 나는 차 소리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더 큰 고행이었다. 추위로 온몸이 부서질 듯, 바스락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정도였다. 밀양교 강변의 절반이 얼어붙었다. 다리에 매달린 고드름이 지난밤 추위를 말해주고 있었다.

안녕들 하시냐고요? 밀양 할매들은 이렇게 산다. 고 유한숙 할아버지의 시신은 냉동고에 갇혀 있고, 그의 영혼은 오늘도 얼어붙은 밀양강 분향소의 겨울밤 하늘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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