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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 '리영희 정신'을 생각하다

고교생, <리영희 프리즘> 을 읽다

등록|2013.12.25 10:11 수정|2013.12.25 10:11
 팩트(fact)는 언제나 가변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과학, 수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사회인문학적 영역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다. 영속적인 팩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이론과 증거들에 대한 반증의 도래로 인해 존재가 불가능하다. 결국 언제나 팩트는 그 의미와 달리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리영희 프리즘>을 통해 개인적으로 리영희를 새롭게 보게 되었음을 언급하기 위함이다. 이제껏 나는 리영희에 대해 그다지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수언론에서 그를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서 그런 측면도 있었지만,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를 읽었을 당시 현실의 팩트와 불일치 하는 부분이 상당부분 있다고 느껴, 그의 능력, 정신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의 그러한 생각이 완전히 전복되었다.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는 것은 팩트가 아닌 방법론의 중요성이다. '어떻게' 가, 그 방식을 통해 파악해 낸 팩트의 존재보다 더 중요함을 말해 준 것이다. 가령,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던 리영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옳지 못함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가 저서에서 기술했던 내용들은 당시 시대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가 행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결과였고, 실제 시간이 흐른 뒤 리영희 스스로도 자신이 과거 잘못 기술했던 내용들에 대해 자기비판을 행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더 중요한 것은, 리영희를 읽어냄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왜, 어떻게 말했으며 그것이 어떤 영향을 사회에 몰고 왔느냐- 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 리영희 프리즘. 사계절 출판 ⓒ 조우인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 각 분야마다 리영희의 '정신' 이 오늘날 그 분야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해부한다. 지식인, 기자, 종교, 영어교육 등 그 분야는 오늘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 전반을 망라하고, 그러한 점에서 리영희는 몇년 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그의 영향력이 매우 대단하다는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10개의 장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우상과 이성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매우 인상깊게 읽었는데, 첫째는 좌파 및 학생운동 진영이 만들어낸 또다른 우상에, 맹목화의 실상 때문이었다. 흔히들 이 장을 통해, 우익이 흔히들 80~90년대의 학생운동을 비판함에 있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잘못된 결정이라 비판하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 충격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많은 운동권들이 소련, 북한 체제 등을 우익의 그것과는 다르게 우상화시키고 이에 종속되었음은, 그리고 리영희가 이것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견지했다는 점은 현실정치에서 적극적 중도를 유지하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게다가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명백히 드러나던 우상과 이성의 대립구도가,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의 물결하에 국가권력이 아닌 시장권력이 새로운 민주와 민중의 대립자로 드러서게 되며 무너져 내려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찝어낸 것도 인상깊었다. 국가권력과 달리 시장권력은 분명 민중과 대립자적 위치에 놓여있지만, 민중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 즉 현실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든 그 시장권력에 종속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은 우상의 대립자라기 보다는 그저 그 무대 위에서 발버둥 치는 것에 그치는 존재로서 전락해 버리고 만다.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잘 지적했다는 점은 매우 인상깊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다 읽은 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말해졌느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그 '말' 이 어떤 의도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어떤 정신을 가져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리영희가 활동하던 시기에 비해 시대상황은 180도로 달라졌고, 일반 국민의 삶에 위협이 되는 존재자들도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투쟁의 논리와 방법론도 바뀔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흐름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할 수 없는 것은, 모두가 지속적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리영희가 보여주었던 그 정신이다.

언제나 살아있는 비판적 시선과 이의 토대가 되는 냉철한 균형감각, 현실논리와 이상의 조화. 리영희 정신을 단순히 이러한 말 한두마디로 표현해 낼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정신이, 이의 중요성이 보다 많은 지식인들과 대중들에게 인지되고 체득될 때, 이에 기초해 보다 많은 이들이 현실을 새롭게 보는 눈을 기를 때, 리영희 시대에 그러했듯이 보다 낳은 삶을 위한 민중의 저항이, 운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역사는 지속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앞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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