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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일 넘게 농성... 철도노조 심정 알겠더라"

울산 동구 "홈플러스 기습개점 철회" 요구하며 농성하는 중소상인들

등록|2013.12.26 16:29 수정|2013.12.26 16:29

▲ 울산 동구 방어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 마련된 천막농성장에서 농성 303일째를 맞은 중소상인 대책위 정종삼 위원장(오른쪽)과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이승진 사무국장 ⓒ 박석철


"내가 당해보니 철도노조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이 다급한 시국이지만 우리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기습 개점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로 인해 중소상인의 상권이 붕괴되고 있다며 SSM 철수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울산 동구 방어동의 슈퍼마켓 주인 정종삼씨는 세간의 관심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6일 오전 10시.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이 잔뜩 찌푸린데다 바람마저 점점 거세지는 이날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점 철수를 위한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철야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03일 째 되는 날이다.

농성 초창기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요즘은 이들 중소상인들의 근황을 물어보는 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의 주요사안에 뭍혀 이들은 점점 잊혀진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만 잘 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울산 동구는 세계 최대 조선소라는 현대중공업이 자리잡아 지역 소득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때문에 한 때 이 지역 중소상인들 사이에서는 "열심히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동구에 홈플러스가 들어선 후 중소상인들이 점점 줄어드는 매출을 실감하더니 급기야 지난 2월 25일에는 동구 방어동에 300㎡ 규모의 SSM '홈플러스 익스플러스 방어동점'이 기습 개장하면서 중소상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측은 SSM  개점 3일 전 관할 동구청의 문의에 '개점 의사가 없다'고 밝힌 후 담배와 정육 등 허가 품목을 제외한 채 기습적으로 SSM을 개점했다. 이것이 지역 중소상인들이 303일이나 천막농성을 이어가며 SSM 철수를 요구하는 배경이 됐다.

홈플러스 SSM 개장이후 동구 방어동 인근 동네 슈퍼마켓 두 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 중소상인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파악에 따르면 현재 홈플러스 SSM 방어점의 하루 매출은 1000만원~1500만원. 그동안 이 지역 중소상인들이 올리던 매출의 몫을 갉아먹는 셈이다.

▲ 천막농성 1달째이던 지난 3월 29일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정종삼씨 부부가 지역상인들을 돕기 위해 울산 시민들이 서명한 용지를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하지만 서명과 정치권의 지지에도 아직까지 SSM과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 박석철


한때 호황을 누리던 동네 슈퍼를 지금은 아내에게 맡기다시피하고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정종삼씨는 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일종의 사명감마저 생겼다고 한다.

천막농성은 대책위와 울산중소상인네트워크에서 각 1명씩 나와 매일 밤을 새며 계속되고 있다. 이날의 농성자는 거의 매일 농성에 참가하는 정종삼 대책위원장과 이승진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사무국장이 한 조를 이뤘다. 다음은 정종삼씨와의 일문일답.

- 며칠 전 날씨가 무척 추웠다. 오늘부터 또 추워지다고 하는데, 농성이 힘들지 않나.
"이틀 전 밤에는 천막사이로 찬바람이 너무 들어와 밤새 오돌오돌 떨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 SSM이 철수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다."

-  그동안 홈플러스측과 상생방안에 대한 대화도 나눈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 
"농성을 시작하고 각계의 관심이 고조되자 동구청장 중재로 대화의 장이 마련되기도 했다. 하지만 홈플러스측은 상생만 강조할 뿐 약속했던 분명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홈플러스 측 실무 담당자와 부사장이 번갈아 내려와서 '철수가 아닌 다른 상생안을 찾아보자'며 인근 피해상인들에게 보상을 해주겠다느니, 매장을 인근 피해상인에게 넘기겠다느니 하는 등 한치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울산 동구를 찾은 홈플러스 부사장은 동구청장을 만나 "지역 상인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은 정말 미안하다"면서도 "이미 SSM에 투자가 돼 철수는 어렵고 영업을 하면서 상생하는 방법을 찾자"고 밝힌 바 있다)

- 울산광역시도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3차례 조정 협의를 했다. 지난 11월 8일 3차 조정 때 울산시는 2개월 이내에 진전이 없으면 중소기업청 사업조정 심의회에 회부할 것이라고 했었다. 홈플러스측이 아무런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서 2달이 되는 내년 1월 초 중소기업청으로 사업조정이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 대형마트와 중소상인이 상생할 방법이 과연 없는 것일까.
"홈플러스는 연간 13조의 매출을 올리는 유통공룡이다. 울산에서만 4개의 대형마트와 6개의 SSM을 가졌는데, 하루하루 온 가족을 동원해서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중소상인에게 양보하라는 것이 저들이 말하는 상생이다. 이제 더 이상 중소상인들은 홈플러스의 거짓에 속지 않을 것이다.

- 홈플러스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근거가 있나.
"2월 25일 개점할 때 지역 중소상인은 물론 관할구청까지 깜족같이 속이고 기습 개점하지 않았나. 홈플러스는 지난 2011년 인근에 있는 홈플러스 북구 매곡점을 오픈하면서 '차후 또다른 매장 출점시 상인들과 의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의논없이 협약을 깨고 동구에 SSM을 기습개점했다.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농성도 농성이지만 지금까지 각계에서 도와줘 30여 차례 집회를 가졌고 정치권과 각계가 참가하는 대규모 상인대회도 2번이나 가지면서 SSM 철수를 요구했다. 특히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도 우리의 입장에 서서 철수를 요구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는데 공룡은 요지부동이다. 정치도 대기업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철수하는 마지막날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할 것이다. 춥고 힘들고 어렵지만 이상하게 농성을 할수록 '질수 없다'는 각오가 더 다져진다. 왜 그렇겠나. 함게 고생해온 지역의 상인들과 내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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