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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의 위험한 '축배'... 남북 '적대적 공생' 꾀하나

[김당의 톺아보기] 성탄절에 평화보다 전쟁을 앞세운 그들

등록|2013.12.26 18:13 수정|2013.12.26 18:13

혼선 빚는 안보 사령탑24일자 <조선일보>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 통일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 조선닷컴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같이 죽자."(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싸움준비 완성에 최대의 박차를 가해야 한다."(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전쟁 출정식'을 방불케 한 국정원장의 송년 축배

'극(극우)과 극(극좌)은 서로 통한다'는 가설이 이번에도 현실에서 적용되는 모양이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성탄절에 취임 후 첫 강복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전세계에 보내는)'를 통해 아프리카 남수단과 시리아 등 분쟁 지역의 평화를 기원했지만,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서는 '이 땅에 평화' 대신 '이 땅에 전쟁'을 앞세웠다.

교황은 "매일 우리의 삶에서, 우리 가족 안에서, 우리 도시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스스로 평화중재자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요청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지구상에서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남쪽과 북한에선 성탄절에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송년 축배'를 들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21일 간부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했다고 한다. 24일자 <조선일보> 보도다. 이는 북한에 대한 무력통일을 암시한다. 한 송년회 참석자는 이 신문에 "조국 통일 달성을 결의하는 자리였다"면서 "국가 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국가 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시피, 정보기관에서 개입할 수 있는 '구체적 플랜'이란 결국,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또는 급변사태를 일으키는 비밀공작을 의미한다. 비밀공작의 대표적 유형은 적대국을 대상으로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모략 및 와해공작'이다. 이는 적대국 핵심 인사에 대한 모략이나 테러, 주요 시설 및 장비에 대한 사보타지, 적대국 내부의 혼란이나 이간 조성, 중요한 무기나 기술 확보 저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와해공작에는 다양한 수단이 동원되는데 냉전 시기에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적대국 내부교란을 위해 반정부 세력이나 게릴라 집단을 지원한 것이 가장 빈번했던 사례다. 아직까지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내분은 뿌리깊은 종족 갈등 탓도 있지만, 대부분 냉전 시기 KGB와 CIA 비밀공작의 유산이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한 국정원의 '고당계획'

그래서 섬뜩하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11월 <신동아>가 입수해 보도한 'DJ정부 북 급변사태 대비 비밀문서'가 떠오른다.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북한에 쿠데타나 그에 준하는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위기관리-통일추진-실질통합의 3단계로 나누어 단계별 상황을 설명하고 그 대책을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위기관리 단계에서는 김정일의 해외 망명정부 수립을 허용하지 않는 데 주력하고, "북한에서 개혁 정권을 출범시키는 단계"인 통일추진 단계에서 국정원은 '고당계획'(조만식 선생의 호를 딴 북한정권 붕괴시 한국 주도로 비상통치를 하는 데 필요한 행정조치 계획)을 개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장 직속으로 편제된 '북한지역 평정 합동대책반'의 정보·수사·보안·대북 요원들을 파견해 북한에 심어놓은 우리 공작망(부식첩망)과 탈북자, 한국에 협조하는 북한 주민 등을 활용해 당·정·군의 핵심 통일저항세력을 분류 선정해 제거하거나 격리 체포 수감하도록 돼 있다. 특히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 등 군부 핵심 저항세력을 적극 장악하게 돼 있다.

마지막 단계인 "실질통합 단계에서는 정부가 '노동당 불법화'를 선언하고 정부대책반으로 하여금 노동당을 접수케 한다"고 한 뒤 "'노동당 처리 특별법' 등을 만들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노동당을 해산하고 노동당의 재산은 국유화한다"고 되어 있다. 이쯤 되면 국정원은 정보기관이 아니라 '혁명사령부' 같은 초법적 기관이다. 이같은 혁명적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의 핵심 변수인 미국과 중국의 역할과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 이 문건의 취약점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 문건은 위기관리 단계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남파간첩 출신, 사회주의 지하혁명조직 구성원, 친북·좌익 이념단체의 인물, 재야·노동운동단체의 핵심 인물, 북한 공작조직과 연계혐의가 있는 내사와 수사·공작 대상자 등은 경찰·검찰·기무사와 함께 특별 관리한다"고 돼 있다. 또 "국내의 대공위해(對共危害) 인물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통일 방해세력 관리지침'(가칭)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통합진보당의 이른바 이석기파 비밀회동에서 전시 '예비검속'에 대한 우려가 표출된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남재준 원장은 아직도 자신이 육군 참모총장인줄로 착각하는 것 같다. 야전군 지휘관이라면 송년회에서 이런 발언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해서는 안될 말이다. 더구나 간부 송년회에서 한 발언이 보수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남 원장의 대북 대결 조장 발언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개혁의 '물타기'나 철도노조 민영화 반대 파업 국면의 여론 기만용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혼선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 보낼 수 있다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에 국정원 자체개혁안 보고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국가정보기관장으로서 신중치 못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 원장은 '장성택 실각설' 발표 과정에서도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통일부, 국방부 등과 제대로 정보판단을 공유하지 않고 발표해 혼선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지난 6일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통일부, 국방부와 '엇박자'를 내며 혼선을 빚은 것과 관련 남 원장은 "장성택 관련 정보를 발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끄럽지 못했다"며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대통령의 눈과 귀'로 통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은 대통령이 국가의 외교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집-분석해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남 원장의 발언은 정부 내에서도 혼선을 빚을 만큼 위험해 보인다. 청와대에선 현재의 안보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와 사무처까지 부활시킨 마당이다.

실제로 24일에도 국회 법사위에 참석한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게 평화통일이고 통일이 특정시점에 조만간에 이뤄질 상황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력통일 시사한 남재준 원장과는 상충되는 입장이다. 한 치의 '구멍'도 있어서는 안되는 국가안보 부문에서의 이런 '엇박자'는 국민들에게 불안과 혼선을 줄 수 있다.

이런 혼선은 무엇보다도 상대인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지구상에서 벌어진 많은 전쟁은 상대방의 메시지에 대한 오독과 상황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되었다. 당장 24일에도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각각 군부대를 방문해 안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군부대를 방문해 "만약 도발을 해온다면 단호하고 가차없이 대응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일을 맞아 평남 남포시 군부대를 방문해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싸움준비 완성에 최대의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장군, 멍군 하면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전쟁 위협 발언은 새로울 게 없다. 과거 '서울 불바다' 발언에서부터 최근 '최고존엄' 모독이 반복될 경우 예고 없이 대남 보복행동에 나서겠다는 북한 국방위원회의 전화통지문(19일)에 이르기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번 전화통지문은 지난 17일 어버이연합 등 5개 보수단체들이 광화문에서 '김정일 사망 2주년 축하 화형식'을 개최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북한과 다르지 않은 정부 여당의 대북 강경 발언들

김정은과 박근혜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 표지의 김정은과 박근혜. ⓒ 타임


우려되는 것은 최근 우리 정부여당과 군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17일 당 회의에서 "장성택을 숙청한 북한이 내부의 동요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여러 조짐이 보인다"면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징후가 보인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같은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 화상회의에서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군은 북한이 도발하면 곧바로 가차 없이 응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일전 불사의 장병 정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북한의 도발 예상 시기를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라고 구체적으로 특정했지만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의 장성택 숙청 이후 한국 사회에서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해 괴도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급기야 정부여당에서 오히려 대북 불안감을 조장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은 물론, '음지'에서 소리 없이 일해야 할 국정원 수장까지 나서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 남북긴장을 조장하는 것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개혁 논의를 차단하기 위한 속임수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번에도 남북한 당국이 서로 위기와 대결 국면을 조성해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나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남북 분단의 적대적 상황을 장기집권에 활용한 박정희와 김일성은 지난 70년대에 상대방의 전쟁 위협과 안보 상황을 내세워 각각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을 단행하거나 수령유일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는 각각 선거와 세습으로 선출되어 집권 방식과 임기가 다르다. 그러나 외신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독재자의 후예'인 두 사람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적대적 의존관계'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김정은 정권은 자신의 고모부를 '역모죄'로 몰아 처형할 만큼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고, 박근혜 정권 또한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으로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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