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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 떠는 행복, 이제 그만하자

[서평] 여섯 아줌마들의 행복 이야기 <행복의 민낯>

등록|2013.12.27 16:25 수정|2013.12.27 19:13

▲ 행복의 민낯 ⓒ 샨티

책의 상단에 적혀진 카피, '행복 그놈의 쌩얼'이라는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행복의 쌩얼이란 뭘까.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행복을 비롯해 슬픔, 불행까지도 지나치게 예쁘고 세련되게 포장되어 팔린다. 이젠 좀 안그랬으면 좋겠다. 가부키처럼 덕지덕지 떡칠한 화장은 그만 지우고, 좀 심심한 듯도 하면서 무던하고 편한, 그런 행복의 '쌩얼'을 보고 싶었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치유나 행복에 관한 무수히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본다. 이책저책 뒤적이다 괜찮은 책이 있으면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한장한장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맘에 드는 구절은 마음으로 곱게 접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당시에는 분명 소중히 챙겨 넣었던 구절이었건만, 다시 일상이라는 폭풍 속에 휘말리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주변을 잠식하는 일들에 어느새 주머니에 넣어둔 행복은 서서히 잊혀진다. 아마 운이 좋다면 내년쯤, 느리면 몇 년 뒤쯤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구깃구깃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발견될 것이다. 어쩌면 영영 발견하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책 속의 말들은 언제나 안녕하다. 단정한 명조체로, 늘 그 자리에서 가만히 읽히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 일상은 그렇게 안녕치만은 못하다. 느릿느릿 편안한 호흡이 아니라 씁씁후후, 1시간 1분 1초마다 호흡을 재정비하며 마음과 몸의 엔진 모터를 풀가동 시킨다.

밥을 먹어도 이게 밥인지 돌인지 아니면 도대체 뭔지, 그저 허겁지겁 씹어대며 목구멍으로 '내리누르는' 행동을 반복하고, 그마저도 종종 얹히기까지 한다. 하루 내내 어깨는 긴장으로 바짝 각이 서고, 물 먹은 솜이불처럼 무겁게 얹힌 피로가 온몸을 짓누른다. 이런 삶 속에서 과연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준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은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행복의 민낯> 저자들도 이런 우리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여섯 명의 저자를 묶는 하나의 이름은 '하이힐과 고무장갑'. '하이힐'은 직장 여성을 이미지화 할 때 클리셰처럼 따라붙는 검정색 투피스와 하이힐을 상징화 시킨 것 같고, '고무장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집안 살림을 할 때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다. 저마다 일 하랴, 애보랴, 살림하랴 바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삶 가운데 자신이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실험까지 하면서, 결국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냈다.

저자들의 평균 연령은 마흔 초중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고무장갑을 끼고 살림하는 '슈퍼 워킹맘'도 있고,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살아가는 이도 있으며,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학생 주부도 있다. 옆집 아줌마라고 해도 딱히 낯설지 않을 이 평범한 저자들이 직접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겠다며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 시초가 된 '막걸리 모임'에서, 그들은 '행복 실험'을 결심하며 이렇게 말한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그간 무수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행복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권유하는 자기계발서도, 행복에 대해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한 에세이도, 읽고 나면 막막해지는 행복학 개론서도 삶 속의 구체적인 행복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더라" …… (본문 중에서)

읽고 나면 결국 '그래서, 이 '전쟁 같은' 삶 속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행복해지라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 해결해 주지 않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복작복작한 일상과의 연결고리 따위 없이 그저 고상한 모양새의 행복 이야기만 조근조근 늘어놓는 책에 대한 불만섞인 의문.

저자들이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행복'을 찾자고 입을 모은 것도, '30일 간의 행복 실험'을 하자고 선언한 계기도 바로 이 지점이다. 휙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도대체 행복이란 놈의 '쌩얼'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직접 만나러 가보겠다'며 씩씩하게 선언한 것이다.

그러잖아도 첫 책을 낸 뒤 다시 함께 책을 쓴다면 어떤 테마가 좋을까 고민하던 터에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행복' 이야기는 모두를 흥분시켰다.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철학자의 행복론은 읽을 때는 좋은데 책을 덮고 나면 뭔가 막막한 느낌이고, 그렇다고 "행복하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자기 계발서의 틀에 얽매이기는 또 싫었다. 행복에 대해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에세이도 일상의 모든 것을 분홍빛으로 미화시켜 한순간 독자들을 마취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여기 발 딛고 선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에 대한 조금은 냉정한 시선'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들'이 아닐까? (본문 중에서)

여섯 아줌마들의 행복 실험 과정은 어떻게 보면 재미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단정한 구석이 있다. 이들은 행복을 몸으로 느끼기 이전에 지금 자신이 행복한지,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며 행복의 단계를 차근히 밟아간다. 셀프 진단+처방만으로 모자라 행복 실험 이후 몸과 마음의 변화, 사후 관리 내역까지 꼼꼼히 기록해놓은 일지에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서론, 본론, 결론의 무게중심이 잘 잡힌 한 편의 단정한 논문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잘 정리된 이 30일 간의 실험 일지는, 환자의 상태를 귀찮다시피 꼼꼼히 확인해 그에 딱 맞는 처방을 내려주는 의사처럼 신뢰감과 성의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정말 구체적이다. 그들이 각자 만지고 느낀 여섯 가지 행복의 질감이 손에 잡힐듯 선연하다.

어떤 멤버는 하루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면서 감사 일기를 쓰고, 어떤 멤버는 어수선한 집안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면서 '행복이 들어찰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또 다른 멤버는 일상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행복 열 장면을 꼽아 일지에 기록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일상 속 행복을 느끼는 '나만의 방식'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 실험 이후에도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만족과 불만족은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되고, 생동감과 무기력 또한 시소처럼 일상을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행복 실험 이전과 비교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내적·외적 요소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이미 꽤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행복? 과연 그게 뭐지?" 했지만, 이제는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이 행복의 바탕 화면을 이루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만나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는 나는 이미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었다. 실상 그 바탕 화면에 있는 무늬 혹은 얼룩은 내가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각의 패턴에서 비롯된 걱정과 근심, 불안감과 불만족, 우울이 스며드는 순간들이었다. 그 얼룩들만 잘 처리하면, 삶은 꽤 만족스럽고 행복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본문 중에서)

그렇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일상은 계속된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내가 발딛고 있는 일상이라는 거대한 틀은 변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주어진 하루치 삶의 약관 아래 덧붙여진 '동의합니다' 항목에 자동으로 체킹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휘모리 장단처럼 정신없이 휘몰아쳐대는 일상의 태풍 속에서 얄팍한 유리 램프 속 행복이라는 촛불은 조금만 정신줄을 놔도 껌벅껌벅 대며 꺼질 채비를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불씨를 꺼트릴 수는 없다. 희미하더라도 어둑한 삶의 길을 밝혀주는 유일한 도구니까. 조심조심, 행복의 불씨를 보듬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환하게 밝히려는 여섯 아줌마들의 살뜰한 노력이 담긴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금 안녕치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안녕을, 껌벅껌벅하는 행복의 안부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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