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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소속이지만 화가 나서 나왔어요"

[12·28 민주노총 총파업] 어느 한국노총 조합원과의 동행

등록|2013.12.29 11:27 수정|2013.12.30 14:45
1. 노조 사무실 가는 길

"아, 춥데이."

손상호 부위원장(44)그는 키도 덩치도 크다. 12월 28일 성신여대 앞 거리에서. ⓒ 이홍찬


12월 28일 오전 11시, 성신여대 정문. 거대한 남자가 기자를 가로 막았다. 올해로 44세, 성신여대 인근에서 자취를 하는 이 남자. 한국노총 전국IT사무서비스노동조합연맹 SK브로드밴드 지부 손상호(44) 부위원장이다. 2011년부터 맡은 노조 전임자 업무 때문에 원래 근무지인 부산을 떠나 본사가 있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다가오는 1월, 노조 부위원장 직책을 떨쳐내면 다시 원 근무지인 부산으로 내려간다.

"밥 묻나?"

기자와는 2011년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함께 한 학기를 공부한 터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다.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거기에 참가하는 한노총 조합원을 동행 취재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노조사무실이 있는 본사 사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자연스레 영화 <변호인> 이야기를 나왔다. 그는 곧 부산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산이 원래는 야도다. 그라이끼네 3당 야합 전에만 하더라도 뭐, 내 기억엔 80퍼센트가 야당 지지했을끼다. 노통도 그래서, 부산에서 초선 된 기고."

그는 부산에서 낳고 자랐다. 대학도 부산에서 나왔고 취직도 그곳에서 했다. 부산 밖에서 몇 년 살아보는 것은 이번 노조 전임자 업무 때가 처음이다. 부산하면 으레 떠오르는 지역적 정치색은 그에게 조금도 묻어 있지 않다. 그에게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가하는 목적을 물었다.

"니도 알겠지만, 화 안 나나? 하, 민주노총 털리는 거 보니, 내 화딱지가 나가."

2. 노조 사무실 - 점심 식사 - 노조 사무실

남산 자락에 있는 SK브로드밴드 사옥, 11층 노조 사무실에는 벌써 세 명의 노조 간부들이 와 있었다. 위원장과 모 지부 대의원들. 약속 시간은 12시, 오늘 민주노총 총파업 참가하기로 한 12명 가운데 11명이 속속들이 모였다. 12시가 조금 너머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러 지역에 흩어진 지부의 대의원들이 모이는 거라 서로 안부를 묻느라 다들 바쁘다. 다들 날씨가 생각보다 안 추운 것 같아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점심 시간에는 회사 이야기가 주로 오간다. 소주도 한잔씩 들고, 매운탕은 조금씩 비워진다. 2시가 조금 넘어 다시 노조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몇은 시사주간지를 보고, 몇몇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주제는 회사의 인사관리에 관한 거였다. 누가 어디로 갔고, 누구는 어디에 있고.

하나된 노동자의 힘!SK브로드밴드 노조 사무실 벽에 걸린 현수막. ⓒ 이홍찬


사무실을 둘러봤다. IT사무노련위원장에게서 수신한 공문이 위원장 사무실 문 옆 게시판에 걸려 있다. 손상호 부위원장이 와서 뭐 궁금한 게 있는지 묻는다. '참석 대상'을 안내하는 문구를 잘 이해 못하겠다. '각 조직 대표자, 수도권 상근 간부 및 참석 가능한 조합원' 이에 곧 설명이 이어진다.

"한노총에서 노총 전체 행사 1년에 한 두 번 될끼야. 원래는 한노총에서 연맹 별로 할당을 쫙 주거든, 그라믄 연맹에서는 단위 노조 별로 또 할당을 쫙. 30명이면 30명, 50명이면 50명."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연대에는 특별한 할당이 없다. 상급 노조에서는 노조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SK브로드밴드지부에서는 일반 노조원을 제외한 '조직 대표자 수도권 상근 간부' 15명 중에 12명이 참가했다. 손상호 부위원장의 말을 빌리면 나쁘지 않은 참석률이다.

"어차피 할당을 줘도 대부분 못 채운다. 요번엔 할당이 없었고, 동원성도 없었다. 이번 사건이 사건인 만큼, 다들 관심이 있는 기재. 그라고 뭐, 우리가 다 파악하진 못했지만, 우리 노조원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기야. 근데 연말이라 연차 쓰는 사람이 많아서 또 모르겠네."

그럼 한국노총의 어떤 하달이 없었어도 오늘 총파업에 나갔을 거냐고 묻자,

"야, 내 말 안했나? 내 화딱지 나 죽는지 알았데이. 내 벌써 올 겨울에만 두 번 시청 안 갔나. 내는 뭐, (한국 노총) 지도부가 뭐 어떻게 의사를 표명했건 오늘은 무조건 나가는 거였데이."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박철우(49) 본사2지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는 한국노총 소속이라서, 한국노총의 공식 행사니까 따라가는 거죠. 공문 내려온 행사니까. 만약에 한국노총 행사가 아니었다면 갔을까요? 물론 이번에는 공권력이 좀 심하긴 했지만, 모르겠어요."

박철우 지부장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배문승(48) 본사2지부 대의원의 생각은 또 조금 달랐다.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같은 행사는 뭐 어쨌거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행사라서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개인 입장에서는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더 큰 것 같아요. 노동 문제를 떠나 이것은 사회적 문제니까요."    

3. 시청 광장 가는 길

2시가 조금 넘어 노조사무실에 있던 간부들은 사무실을 나섰다. SK 브로드밴드 사옥에서부터 10여분을 걸었다. 경찰버스가 늘어선 인도를 지나 멀리 시청 광장의 무수한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손상호 부위원장과 배춘문 대의원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집회의 흥분된 기운이 칼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밀려 왔다. 짧고 강하게 '귀족 노조' 프레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시청 광장으로SK브로드밴드 노조 간부들이 시청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경찰버스가, 중간에는 폴리스라인이 보인다. ⓒ 이홍찬


"귀족 노조, 솔직히 비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절대 연대하지 않는 철밥통들 안 있나? 그런 노조는 나는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노조, 비정규직, 그런 데에 아무런 연대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데이. 근데 솔직히 돈 많이 받으면서 노동권 주장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단순히 '연봉'만 들이대는 거. 니도 알잖아 조중동 이런 데서, 맨날 그 이야기만 안 카나. 그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돈 잘 버는 노동자 아니가. 그 사람들 파업이라도 해봐라, 걔네야 말로 귀족노조라고 욕 함 먹어 봐야지."

손상호 부위원장의 말을 배춘문 대의원이 이어받았다.

 "우리나라가 노동자 하면 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 그런 이미지가 사람들한테 각인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배고픈 사람만 노동권을 이야기하라 이거지. 그런데, 이제 국민소득이 2만불, 3만불 하는데, 평균적으로 노동자 임금이 올라가고, 근데 그걸 임금만 갖고 귀족 노조라고 하면. 참."

4. 시청 광장

무대 위에 오른 사회자는 부지런히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얼어 붙은 광장에는 수십 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그 아래로 각 지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SK브로드밴드 노조원들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손상호 부위원장은 무대 앞에서 서 있던 민주노총 양성윤 부위원장과 인사를 나눴다. 둘은 2011년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만났다.

잘 지내세요?손상호 부위원장이 무대 앞에서 서 있던 민주노총 양성윤 부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둘은 2011년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만나 서로 아는 사이다. ⓒ 이홍찬


깃발을 올리자.SK브로드밴드 노동조합 간부들이 깃대에 노조기를 묶고 있다. ⓒ 이홍찬


SK브로드밴드 노조 간부들도 깃발에 기를 부착했고, 높이 들었다. 무대 위의 사회자는 여전히 대열을 정비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집회는 예정된 시각인 3시를 조금 넘겨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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