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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를 가다

케이프코스트 성과 엘미나 성 방문기 1

등록|2013.12.29 15:36 수정|2013.12.29 20:58
[기사 수정 : 29일 오후 8시 58분]

지중해 빛 바다가 창문을 가득 채우고 있다. 파도는 하얀 성벽에 부딪히며 포말을 일으킨다. 성주의 방에 서 있는 잠깐 동안, 나는 마치 서유럽의 남부 해안 어디쯤 있는 휴양지 리조트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러니까 이곳은 호텔로 치자면 스위트룸 쯤 될 것 같다.

성주의 방에서 본 바다케이프코스트 성, 성주의 방에서 본 바다 ⓒ 차승만


성주의 방케이프코스트 성, 성주의 방은 사방이 창문으로 통해 있다. ⓒ 차승만


밑어서 올려다 본 성주의 방저 위층이 성주가 살던 방이다. ⓒ 차승만


케잎코스트성 교회오른쪽에 보이는 3층이 성주의 방, 2층은 교회 그리고 1층에 보이는 우측 문이 지하감옥 입구이다. ⓒ 차승만


성주의 방에서 내부로 나있는 돌계단을 따라 하나 둘 아래로 내려왔다. 바로 한 층 밑에는 교회가 있다. 그리고 교회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바로 지하감옥이 나타났다. 지하감옥, 마치 게임에서나 들어봤던 영어 이름인 '던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지하 감옥 입구남자 노예를 가두던 지하감옥 입구입니다. "던전"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 차승만


그러니까 지하에는 노예를 가두던 감옥이 있고 그 위로 교회가, 다시 그 위로 성주의 침실이 있는 것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아프리카에서 팔려간 주민들이 어림잡아 1200만 명에서 2000만 명. 바로 그 악명 높은 노예무역상인들이 가장 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팔아 넘긴 곳, 그곳이 바로 여기, 케이프코스트 성이다.

케이프코스트 성가장 많은 아프리카 주민들을 "사냥"하여 "노예"로 만들어 판, 악명높은 성 ⓒ 차승만


"사냥"된 "노예"들이 잡혀오는 모습영문도 모른 채 백인들에게 "사냥"이 된 주민들, 아니 "노예"들은 이렇게 해안가까지 수백~수천 km를 끌려왔다. 그리고 이곳 지하감옥에 갇혔다. (사진: 케이프코스트 박물관, 허가받은 사진촬영입니다.) ⓒ 차승만


케이프코스트는 19세기 후반까지 식민지 수도로, 백인들이 금광과 노예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던 곳이었다. 백인들은 이곳 해안가인 케이프코스트에서 멀리 떨어진 가나 북부, 심지어는 말리에서부터 현지 주민들인 흑인들을 '사냥'하여 이 성의 지하 감옥으로 몰아넣었다. 노예 상선이 들어올 때까지 백인들은 '사냥한 노예'들을 이 지하감옥에 가두어 '보관'하다, 상선이 들어오면 건강한 노예를 골라 작은 카누에 태워 상선까지 보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 대신 작은 비탈로 만들어져 있다. 한발 두발 내려갈수록 차가운 냉기와 눅눅한 습기가 두 팔을 타고 흘러 오싹하게 뒷골을 파고들었다. 생선 썩은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한 무리의 여행객들을 몰고 온 여행가이드는 마침 지하 감옥의 이 정체 모를 냄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지하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은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오며 병이 들고 지쳐있었어요. 노예상인들은 이 숨막힐 듯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사냥한 노예들을 무조건 몰아넣었죠. 그들은 그냥 가나 여기 저기서 흩어져 살던 우리 부모, 우리 조상들이었어요. 감옥에서 그들 중 일부가 병들고 아파서 하나 둘 죽어갔어요. 그렇지만 노예상인들은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어요. 그 시체들도 꺼내주질 않았던거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모두 지하 감옥에 그냥 내버려둔거죠."

노예상인들은 죽은 시체를 처리하지 않아 지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노예선이 올 때까지 시체들과 같이 지내야 했다. 이렇게 지하 감옥 한 켠에는 시체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무려 몇 백 년 동안! 그렇게 감옥에는 시체더미가 점점 많아 지며 바닥에서 무릎높이가 되는 위치까지 쌓여 갔다.

감옥을 탈출하는 천재적인 탈옥수들의 이야기는 단지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하 감옥 벽 사방을 따라 사람들의 손톱자국이 가득하다. 절규를 하며 벽을 긁어대던 사람들, 그들의 비명이 썩어가는 시체더미와 함께 이 작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역겨움과 공포가 밀려온다.

지하감옥의 바닥은 사람들이 대소변을 받고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있다. 사람들이 죽고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썩어가면서 만들었을 자국이 벽을 따라 선명하게 물들어있다.

지하 감옥에선 햇볕을 일체 볼 수 없었다. 지금은 관람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천장 입구 일부를 뚫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온 햇빛이 수백 년 간 쌓여온 지하 감옥 벽의 선홍색 피자국과 손톱자국을 비추며 이곳에 갇힌 채 죽어간 흑인들의 노여움을 자극하는 듯했다.  

지하감옥 내부불빛이 들어오는 공간은 이후에 만들었고, 당시에 이곳은 칠흙같은 어둠만 가득했다 합니다. ⓒ 차승만


손톱자국감옥에 갇힌 노예들이 긁은 손톱자국들 ⓒ 차승만


짐승들을 잡아 가둔다 해도 이런 곳에 넣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지하 감옥에 갇힌 흑인들은 운이 좋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제 상선을 타고 미대륙이나 유럽, 남미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갔던 것이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을 누비던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난생 처음 본 하얀피부의 정체 불명의 괴생명체에 노획되어 서너 평 되는 비좁은 지하 감옥에서 갇혔다. 그리고 죽거나, 팔려갔다.

상선을 타고 가는 동안 병이 들면, 식량을 축낸다는 이유로 바다에 산 채로 내던졌다. 대서양을 횡단하던 노예선의 모습은 스필버그의 영화 <아미스타드>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었다. 노예선은 좁은 공간에 가장 많은 '물건'(노예)을 싣기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다. 좁은 공간을 더 많은 층으로 구분하여 짐짝을 실 듯, 최대한의 노예를 실었다. 그렇게 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수장된 사람을 포함해서 절반 이상이 죽었다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백인들이 무조건 수탈을 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백인들이 수천만명에 달하는 흑인들을 '사냥'하여 노예로 만들어 미대륙과, 남미, 유럽에 팔아 넘기는 대신 아프리카 대륙에 남긴 것이 있으니, 그것은 '총'과 '술'과 '담배'였다.
덧붙이는 글 2009년 봄 ~2011년 여름까지 가나에 머무르는 동안 케이프코스트 성과, 엘미나 성을 수시로 방문하며 취재한 내용입니다. 몇 회에 걸처 나누어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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