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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짬뽕은 어떻게 해서 유명해졌을까

[한·일 민간단체의 역사문화 교류 2013 ⑪] 아디오스 나가사키

등록|2013.12.30 11:05 수정|2013.12.30 11:05
중화요리 전문점 사해루 가는 길

▲ 일본 최초의 볼링장 개장을 알리는 표지석 ⓒ 이상기


언덕을 내려오면서 나는 오우라 성당 대신 지은 오우라 교회를 바라본다. 그리고 길가에 있는 사설박물관도 그냥 지나친다. 시간이 없어 내부를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버 언덕을 내려오면서 교복을 입은 일본 중학생들을 볼 수 있다. 11월인데도 반바지 차림이다. 여학생들은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 차림이다. 사해루 앞 길가에서 나는 이곳이 일본 볼링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본다. 일본 볼링장협회에서 2003년 세운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일본에 볼링장이 처음 개장한 것이 1861년이다. 그것은 나가사키에서 발행된 영자신문 <나가사키 선적 리스트와 광고: The Nagasaki Shipping List and Advertise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신문 6월 22자 광고에 '국제 볼링장: The international Bowling Salon'의 개장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1864년에 요코하마(橫浜)에, 1869년 고베(新戶)에 볼링장이 생겨났다.

▲ 사해루 ⓒ 이상기


표지석을 지나 사해루로 들어서면 5층짜리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현관 위에 기와지붕을 올려 전통과 옛스러움을 강조했다. 사해루 건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이곳을 지키는 두 개의 동상과 마주친다. 하나는 천리안(千里眼)이고 다른 하나는 순풍이(順風耳)다. 이들은 중국 남부사람들이 섬기는 항해의 신 마조(媽祖)의 호위무사들이다. 천리안은 마조신을 보호하기 위해 천리나 앞서 나가며 재해를 사전에 알리고 안전을 지켜준다.

순풍이는 말 그대로 순풍이 불지 안 불지를 귀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래선지 천리안은 오른손을 눈 위에 얹었고, 순풍이는 왼손을 귀 뒤에 갖다 대고 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간다. 12시를 갓 넘은 시간이어서 사람이 많다. 창문 쪽은 자리가 없어 조금 안에 앉는다. 그리고 짬뽕(ちゃんぽん)을 시킨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한다. 나는 창문 쪽으로 가 사해루에서 보는 나가사키 항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사해루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

▲ 사해루에서 내다 본 나가사키항 ⓒ 이상기


바닥에서 천정까지 통유리로 만들어서 밖이 잘 보인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나가사키 항구는 좀 더 분주하고, 앞으로 보이는 이나사야마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고즈넉하다. 우리는 1시간 가량 살펴본 글로버 가든의 느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짬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가사키 짬뽕은 사해루의 대표음식이다. 1899년 복건성 출신의 중국인 진평순(陳平順)이 나가사키 광마장(廣馬場) 옆에 사해루를 열고 개발했다.

그는 당시 나가사키에 유학온 청나라 유학생들이 돈이 없어 음식을 사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값싸고 양이 많은 음식으로 짬뽕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유학생들의 어려움과 배고픔을 해결해준 고마운 음식이다. 그는 또한 짬뽕의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접시 우동도 개발해, 현재 이 식당의 대표음식으로 만들었다. 사해루가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1973년이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00년이다. 2층에는 짬뽕박물관을 설치해 지난 100년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했다.

▲ 나가사키 짬뽕 ⓒ 이상기


약 20분쯤 지나 짬뽕이 나왔다. 보기에도 양이 많다. 그리고 우리식 짬뽕처럼 빨갛지 않고 국물이 걸쭉한 편이다. 굵은 면 위에 야채, 해산물, 어묵, 달걀 지단을 얹었다. 흰색, 녹색, 분홍색, 노란색, 검은색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이들을 섞어 입에 넣고 맛을 본다. 국물이 약간 느끼한 듯하면서도 부드럽다. 면도 부드럽게 씹힌다. 양이 많은 듯하지만 나는 한 그릇을 금방 먹을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지만, 양적 질적인 면에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음식이다.

사해루를 나오면서 나는 이곳에서 파는 봉지 짬뽕을 볼 수 있었다. 봉지 가운데 크게 초면(炒麵)이라고 썼다. 볶음면 또는 볶음국수라는 뜻이다. 그 오른쪽에 나가사키 짬뽕의 명가 사해루에서 만들었다고 썼다. 그런데 색상이나 디자인이 국내의 라면회사 삼양식품에서 만든 나가사키 짬뽕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국내 라면이 이 초면을 모방한 것이 된다. 나가사키 짬뽕집 사해루는 이제 명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지점까지 내면서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나가사키 천주교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려는 노력

▲ 나가사키역 ⓒ 이상기


점심을 먹고 우리는 나가사키 역의 아뮤 플라자로 가 쇼핑을 한다. 나는 쇼핑보다 이곳 나가사키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으로 간다. 다행히 한쪽 코너에 나가사키 관련 책이 진열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먼저 나가사키의 근대화 과정을 다룬 책을 산다. 그리고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의 천주교 문화유산을 순례할 수 있도록 만든 안내서도 구입한다. 나는 나가사키 천주교 문화를 더 알기 위해 책자를 찾아본다. 다행히 우리말로 번역된 <나가사키로의 천주교 문화 탐방>이라는 책자가 있다.

현재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의 천주교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학술대회도 열고 책자도 발간하고, 박물관도 체계적으로 만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여행의 나가사키학', '나가사키 놀며 배우기' 총서 중에 천주교 관련 책자가 아주 많은 편이다. 이번에 나가사키 지역과 관련해서는 천주교 유산 외에 근대 문화유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들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나가사키현 문화진흥과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일본 천주교 문화유산의 상징 오우라 천주당 ⓒ 이상기


이번 답사의 주목적은 아마쿠사의 천주교 문화유산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관련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가사키의 문화유산 탐방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지만, 사실 나가사키 주변에 천주교 문화유산이 훨씬 더 많다.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히라도(平戶), 사이카이(西海), 나가사키, 오무라(大村), 시마바라가 있고, 서쪽에 섬들로 연결된 고토열도(五島列島)가 있다. 이곳에 있는 성당과 교회만 해도 100군데는 된다. 그리고 천주교 관련 유산도 100군데가 넘는다.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봐야겠다. 나는 이번 글을 쓰면서 나가사키에서 구입한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마쿠사는 상대적으로 시골이어서 책을 제대로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후 2시가 되어 역 밖으로 나온다. 나가사키 역은 기차, 전차, 버스, 사람으로 붐비는 편이다. 니이 다카오 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육교를 건너 호텔로 간다. 이제 짐을 찾아 다시 역 앞 고속버스 터미널로 갈 것이다. 오후 2시 30분에 후쿠오카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를 떠나며

▲ 일본적인 너무도 일본적인 ⓒ 이상기


고속버스 터미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또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다. 아마 버스 수송분담률이 우리나라보다 낮기 때문일 것이다. 니이 선생의 도움으로 차표를 구입하고 승차장 앞에 줄을 선다. 우리가 타고갈 버스는 구주호(九州号)다. 나가사키에서 후쿠오카까지 운행하며 중간 중간 중요 도시를 들르게 된다. 그러나 도심까지 들어가는 건 아니고 고속도로를 벗어난 지점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그곳에서 승객을 태우는 방식이다.

우리는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공항에서 내릴 예정이다. 계획에는 오후 4시 53분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시 30분 터미널을 나온 버스는 시내를 지나면서 두어군데 정류장에서 손님을 더 태운다. 그리고 얼마 후 나가사키 자동차 도로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상대적으로 속도를 낸다. 얼마 후 이사하야(諫早) 인터체인지를 지난다. 이사하야는 서쪽의 오무라만(大村灣)과 동쪽의 아리아케해(有明海)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나가사키와 사가 그리고 시마바라 세 방향으로 나눠지는 목으로, 그 중요성이 대단한 도시다.

▲ 구주호 고속버스 ⓒ 이상기


고속버스는 이사하야 북서쪽 바닷가에 있는 도시 오무라에 잠깐 들른다. 이곳 오무라 지역은 1560년대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1562년 포르투갈 상선을 받아들여 교역을 했고, 세례를 받아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러므로 그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영주다. 그는 선교사를 우대했고 선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시아키(喜前) 대에 이르러 천주교를 버리고 불교인 일련종으로 다시 개종하면서 이 지역의 천주교는 다시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가현의 다꾸에서 마지막 가을을...

▲ 사가현의 가을 ⓒ 이상기


버스는 다케오(武雄)를 지나 다쿠(多久)의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 다쿠는 이마리(伊萬里)와 가라츠(唐津) 같은 항구도시로 나가는 교통의 요지다. 가라츠는 중국의 문화가 들어온 항구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대마도를 거쳐 조선으로 들어가는 항구역할도 했다. 이마리는 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나간 항구로 유명하다. 아리타(有田)에서 만든 도자기가 이 항구를 거쳐 나갔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그 도자기를 이마리 도자기라 불렀던 것이다. 다쿠 휴게소에는 아직도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나는 금년의 마지막 단풍을 즐기며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한다. 오고리(小郡)에서 큐슈 자동차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이내 북쪽으로 달린다. 다자이후(太宰府)를 지나고 곧 이어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동차도로를 빠져나와 공항을 향해 간다. 오후 4시 45분쯤 되었다. 그런데 차가 조금씩 밀린다. 5시가 다 되어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다. 우리는 표지판을 따라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서울에서 함께 출발한 도쿠나가 교수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 차창에 비치는 큐슈의 고속도로와 자연 ⓒ 이상기


그는 우리와 함께 이틀간 아마쿠사 일정에 참여했고, 이틀간은 다른 일정이 있어 헤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수속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륙이 오후 7시 10분이고, 보딩 타임은 6시 30분이어서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그러고 보니 나흘 일정이 금방 지나갔다. 일본의 천주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한 공부도 하고 답사도 한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이제 일본을 떠난다. 아디오스 나가사키, 아디오스 아마쿠사! (완결)
덧붙이는 글 11회에 걸쳐 아마쿠사와 나가사키 천주교 문화유산 탐방 여행기를 썼다. 조만간 나가사키현을 다시 방문해 천주교 문화유산과 근대 문화유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다. "나가사키로 들어온 서양문화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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