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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아내에게 매 맞는 남편 있었다니

[서평]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등록|2013.12.30 18:44 수정|2013.12.30 18:44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으로 간주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음양(陰陽)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습니다. 여자는 시집 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시집 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아야 했습니다. 시집 간 여자는 한 남편만을 섬겨야 했고,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르고 좇아야 했습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쫓겨나고, 자식을 낳지 못해도 쫓겨났습니다. 말이 많아도 쫓겨나고, 질투가 심해도 쫓겨 날 수 있던 게 조선시대의 여자였습니다.

그런 조선시대에도 매 맞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삼종지도와 여필종부, 칠거지악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제도들이 서슬 시퍼렇게 여자를 옥죄던 시절에도 남편을 두드려 패며 살던 여자가 있었다니 쉬 믿기지 않습니다.

탐정처럼 추리하고 과학수사 하듯 쓴 책

▲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지은이 전경목┃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2013.12.9┃2만원 ⓒ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지은이 전경목,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에 재직중 전경목 교수가 골방이나 창고 한 구석에서 마냥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고문서들을 찾아내 의미를 해석하고 뜻을 번역해 옮긴 내용입니다.

고문서 중에는 흘려 쓴 글씨도 있고, 자전(字典)에도 나오지 않는 속자가 많으니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미까지 새기는 일은 흡사 작은 실마리조차도 허투루 흘리지 않는 과학수사를 연상하게 합니다.

속자와 간자는 해석하고, 획 하나를 그은 이유와 점 하나를 찍은 의미를 새기는 과정은 탐정이 범인을 추적하는 일 만큼이나 미로 속 유희입니다.  

'내면 들여다보기' '뒤집어 보기' '용어를 통해 보기' '의심해 보기' '양면 또는 다면 보기'로 분류하고 있는 차례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저자가 고문서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방법은 다각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새길 수 있는 게 고문서기에 때로는 뒤집어 보고, 때로는 의심해 보는 방법을 써야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성하창이 도성 안의 친척집으로 도망쳤는데 아내가 곧바로 찾아와 그 집 장독을 모두 깨뜨려버렸다. 성하창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남편을 잡아서 마치 관아에서 죄인을 심문하듯이 볼기 30대를 치고 다락에 가두었다. 이러한 소문이 돌자 친척 중에는 그를 숨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중략) 성하창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 이혼시킬 방법을 강구했으나 국법으로 이를 금지했기 때문에 한숨만 내쉬다 흩어졌다."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63쪽-

남녀가 유별한 시대, 아내로부터 얻어맞으며 살던 남자는 못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성하창은 명문귀족 출신의 진사였고, 또다른 피해자 우창중은 이괄의 난 때 왕을 호위하여 노량진 나루를 건넜으며, 전라수사까지 지낸 장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문서에 담긴 이야기, 결국은 조선 역사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고문서들은 조선시대 사회적 제도가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반영되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상을 서민의 눈높이에서 실감나게 연상해 볼 수 있도록 해석돼 있습니다.

이혼과 재혼, 노름과 도박처럼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 사는데 항상 존재하는 사건들이 그 당시에는 어떻게 취급되고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고문서에 찍힌 점 하나, 흘려 쓴 수기 등을 통해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사헌부에서 처와 첩을 구별하기 위해 제시한 기준은 혼인할 때 '중매쟁이'가 있었느냐와 '혼례'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청혼할 때, 신랑 측이나 신부 측은 직접 상대측에 의사를 타진하지 않고 반드시 중매쟁이를 통하도록 되어 있었다. 중매쟁이를 통해 청혼하는 것은 혹시 상대가 거절할 경우 서로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이것이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어 중매쟁이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 혼인은 사통(私通)으로 간주 되었다. 또 혼인은 소정의 절차를 갖추어 공개적으로 행해야 했다. (중략) 

중매쟁이가 늙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살아 있다고 해도 중매쟁이의 증언을 뒷받침해줄 만한 또 다른 증거나 증언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혼례를 갖추었는지 여부가 처첩을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이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혼서였다. 혼일할 때 보낸 혼서가 남아 있으면 적처로 인정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정받지 모했다. 혼서가 혼인 여부나 처첩 및 적서를 구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254쪽

중매쟁이가 있고 없음, 혼서가 있고 없음에 따라 처와 첩을 구분하였다고 하니 중매쟁이의 역할과 혼서가 갖는 의미는 지금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골방이나 창고 한구석에 꾸깃꾸깃한 뭉치로 처박혀 있던 고문서 한 장이 이렇듯 시대를 복원하는 기록으로 살아나니 고문서를 해독해 내는 일이야말로 옛날 모습을 재현해 내는 섬세한 손놀림이며 복원이라 생각합니다.

고문서에는 담겼지만 흐르는 세월에 덮여 분간할 수 없었던 뜻은 탐정처럼 추리해내고, 분간이 분분했던 뜻들은 과학수사를 하듯이 밝혀내니 고문서에 담긴 뜻들이 조선의 역사로 밝혀집니다. 조선시대에도 타짜가 있었고, 부유란 첩을 얻어 출세하고 승진한 남자들이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남녀관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요지경 속 실상입니다.  
덧붙이는 글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지은이 전경목┃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2013.12.9┃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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