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범 잡은 이 경찰... 왜 식은땀 흘리나
[찜! e 시민기자] 고위 경찰 출신 박종수 시민기자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박종수 시민기자의 글을 읽은 첫 느낌입니다. '고위 경찰(공무원)은 글을 잘 쓰지 못할 거야'라는 편견이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박 기자는 30년 넘게 경찰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퇴직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칩니다. 충북 영동경찰서장, 경기도 고양경찰서장, 일산경찰서장, 성남중원경찰서장, 서울 중랑경찰서장을 거쳤습니다. 일명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으로 유명한 청부살인범도 체포한 경력이 있습니다.
박 기자는 지난 12월 18일 시민기자로 가입해 지금까지 딱 세 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모두 오름에 올랐습니다. 전직 경찰로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준엄하게 꾸짖고, 민주노총에 난입한 후배 경찰들에게도 충고를 던졌습니다. 순식간에 범인을 체포하듯, 강렬하게 <오마이뉴스>에 등장했습니다.
☞ 박종수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 가기
아래는 박종수 시민기자와 이메일 서면 인터뷰로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 이전 기사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습니다.
"김용판 전 청장은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정치경찰'이란 수식어를 혐오하는 본인을 정치경찰로 몰아붙였다고 되레 하소연합니다. 그 과정에서 검·경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느낌도 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여망입니다. 검경의 갈등을 자신의 방어논리로 이용하는 게 볼썽사납습니다. 수사권 독립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먼저 사과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저의 지난 고언은 그런 의미입니다.(관련 기사 보기) 죄는 반드시 밝혀집니다. 그건 범죄와 싸우는 경찰들의 진리입니다."
- 퇴임했지만, 전직 경찰로서 현 정권과 경찰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합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경찰 생활은 제 삶의 전부이자 제 영원한 고향입니다. 퇴직했지만 경찰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후배 경찰들에게 고언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인이 된 선배의 고언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각성의 계기가 돼 경찰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저의 '고언'은 계속 될 겁니다.
앞선 선배들처럼 경찰에는 훌륭한 후배들 또한 많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맞섰던 표창원 교수가 그렇고 지금도 경찰에서 열심히 직분에 충실하며 정의를 사수하기 위해 애쓰는 권은희 경정이 그렇습니다. 두 분 못지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더 나은 치안서비스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힘이 돼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배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 전직 경찰 박종수 시민기자. ⓒ 박종수
- 최근 철도노조 집행부 연행을 위해 경찰이 무리하게 민주노총에 진입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참담했을 것 같은데요.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이 정권을 지키지 못했고, 거꾸로 정권의 종말을 앞당겼다는 건 이미 역사가 증명합니다. 저는 현 정권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누구보다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정권의 소통 상대는 국민입니다.
철도 노조원도 국민이고 경찰도 국민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통을 통해 합의된 내용은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정권이 소통을 게을리한다면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는 국민을 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하고, 대화의 상대이자 국가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겁줄 수 있어도, 진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소통의 문을 열어 국민과 경찰이 대립하는 일을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 어떻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요.
"경찰에 몸담고 있을 때는 개인보다 조직원으로서의 역할이 우선이었기에 대외적인 발언은 애써 삼갔습니다. 퇴직한 이후 작지만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들을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중랑구 신내동에 삽니다. 2008년 중랑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인연을 맺은 곳입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행정과 치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제가 가진 치안에 대한 생각, 사회적 이슈에 대해 특히 내부인이 아니면 짐작하기 어려운 경찰조직의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고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제 열정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고위 공무원을 오래 했는데도, 글을 깔끔하게 잘 쓰십니다.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하셨는지요.
"부끄럽지만 어릴 적부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찰에 투신해서도 여가시간을 활용해 악기를 연주하고 가족을 소재로 시도 종종 썼습니다.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이며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아 본 적은 없습니다. 졸고를 언론사에 기고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졸필을 흉보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보니, 이제야 제 글이 다수 독자들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실감나 등골에 식은 땀이 납니다. 경찰시절 저는 각종 행사 인사말이나 훈시 등을 직접 썼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도 강의안을 만들고 석박사 논문을 썼던 것 또한 글쓰기를 위한 훈련이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졸고를 <오마이뉴스> 편집진이 좋게 봐주셔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글이 나간 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기고를 하고나서 사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습니다. 쑥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저 몇 분의 독자라도 읽어주시길 바라며 기고했는데 후배인 표창원 교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표 교수는 제 글을 읽고 본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제 글을 퍼 날랐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달라고 당부를 하더군요. 고마웠습니다.
표 교수 외에도 경찰 선후배들로부터 격려의 문자와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가족들과 지역의 지인들 또한 제 글을 읽고 응원해 주시니 제가 복 받은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것은 저의 역할이 그만큼 커져간다는 뜻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기대가 헛되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 앞으로 계속 쓰고 싶은 주제는 있는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저는 치안과 행정이 조화로울 때 시민의 삶이 편하고 윤택해진다고 믿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숙될 토양도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과 치안의 조화로운 융합에 관한 제 생각을 많은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습니다. 정의는 발전의 근간이지 방해요소가 아닙니다. 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그 신념은 아직 변치 않았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정의로워 질 것이라 믿습니다."
- 그동안 <오마이뉴스>는 경찰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경찰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오마이뉴스>에 당부할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압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부모의 훈계가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려면 자식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애정을 가진 고언을 받아들일 마음은 경찰 내부에도 준비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되 사실관계를 보다 깊숙이 봐주시고, 때론 수고하는 경찰들에게 위로와 응원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현직에 계실 때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고, 여러 외압을 겪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과 원칙을 수호하라'는 것입니다. 법대로 하고 원칙을 따른다면 세상에 안 풀릴 일은 없습니다. 이 사실은 법을 집행하는 모든 경찰이 아는 상식입니다. 상관의 명령보다 중요한 것은 법과 원칙입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명예는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입니다. 박봉에 시달리고, 때론 위험한 상황에 몸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 바로 경찰입니다. 경찰에 몸을 던졌던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의 명예를 소중히 여겨 당당한 경찰로 서줄 것을 당부 드립니다."
- 현실에 계실 때 많은 범인을 잡았을 텐데,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최근 장미란씨의 서명으로 파문이 커진 '영남제분 사모님'사건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기사도 기고했습니다. 당시 청부살인범을 잡기위해 수사팀을 베트남에 보내 어렵사리 검거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성립하는 기초입니다. 하지만 수사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압력과 만나기도 합니다.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악용하여 엄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일도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보도 비평을 하신다면.
"무엇보다 기사생산에 독자(시민)가 참여하는 독보적인 시스템을 안착 시켰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오마이뉴스>에는 시민들의 다양한 식견과 소재가 넘쳐납니다.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넘치면 독선이나 편견은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마이뉴스>는 가장 민주적인 언론입니다.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줬으면 합니다. 간혹 날선 헤드라인을 보면 비판보다 감정이 앞선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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