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밀양 할매들은 만세 삼창을 외쳤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1번 초소'에서 보낸 1박 2일
▲ "제발"1일 밀양 할매들이 새해 첫날 아침 손수 만든 음식으로 산신제를 준비하고 제사를 올렸다. 할매들은 새해소망으로 송전탑이 건설이 중단되기를 빌었다. ⓒ 정대희
경남 밀양 화악산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세워진 움막 앞. 산등선 너머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이곳 움막지킴이 덕촌 할매(78)와 현풍댁(67)이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절대로 이곳에 송전탑이 들어서지 않게 해주이소."
몇 차례 해가 뜨는 방향으로 머리를 조아리던 현풍댁은 "새해엔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며 갑작스레 두 손을 들어 만세 삼창을 외쳤다. 곁에 있던 덕촌 할매도 따라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할매들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돼 산 전체에 울려 퍼진다.
또 한 번, 밀양 756kV 송전탑 건설 반대에 나선 할매들이 움막에서 신년을 맞았다. 벌써 세 번째다. 아직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새벽녘, 할매들은 손수 만든 음식으로 움막 안에 작은 제사상을 차렸다. 새해 소망을 빌기 위한 산신제다.
신문지 위에 밥과 떡, 나물, 과일, 탕, 마른 생선 등을 올려놓고 종이컵에 쌀을 넣어 양초와 향 받침대를 만들어 불도 붙였다. 단출하지만 영락없는 제사상이다.
제사상 뒤로는 '보상은 필요 없다. 이대로 살고 싶다' '한전! 죽고 싶거든 들어온나'라고 적힌 피켓이 걸려 있다. 피켓을 앞에 두고 할매들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절을 한다. 이따금 "영험한 산신령님 송전탑은 안됩니도"라고 읊조리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새해 아침을 맞은 1번 초소의 모습이다.
"절대로 이곳에 송전탑이 들어서지 않게 해주이소"
2013년의 마지막 날 밤, 환한 불빛이 밝히는 도시를 벗어나 캄캄한 산 속을 향해 달리는 차에 몸을 실었다. 밀양지역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에 나선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산기슭에 다다르자 밤하늘을 뒤덮은 별들이 촘촘하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세찬 자동차 엔진소리가 산의 정막을 깬다. 이윽고 도착한 화악산 중턱 해발 500m 즈음. 이곳을 주민들은 '1번 초소'로, 한국전력공사는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라고 불렀다.
십여 개의 움막 가운데 덕촌 할매와 현풍댁이 기거하고 있는 움막은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주민과 한전이 갈등을 겪고 있는 최전선이다. 낯선 밤손님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 할매들과 함께 움막을 지키는 '동동이'이란 이름의 개가 한참을 울부짖는다.
비닐 문을 열어젖히고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울산에서 왔다"는 너덧 명의 시민들이 할매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움막 안 곳곳의 살림살이는 기나긴 싸움을 알려주듯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
할매들과 "말벗이 되기 위해 왔다"는 이들의 대화는 때론 한바탕 웃음으로 이어지고 때론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숙연했다.
현풍댁은 소리에 민감했다. 펄럭이는 태극기 소리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구분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 소리에 흠칫 놀라는 이에게는 "깃발소리"라며 웃어젖혔고, 이야기 소리에 묻힌 자동차 소리에는 "누가 오네"라며 가장 먼저 반응했다. 순간, 외롭고 힘들게 이어온 긴 싸움 끝에 얻어진 예민함일 것이라는 생각에 마냥 신기해할 수만은 없었다.
2013년의 마지막 날 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상징적 존재로 인식된 1번 초소 움막 안. 할매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 일화가 밤 늦도록까지 이어졌다.
▲ 새해 아침을 보며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는 밀양 1번 초소의 덕촌 할매와 현풍댁.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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