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거리'는 어떻게 뉴욕 명물이 됐나
[한컷도시여행⑥] 고가철도 재활용, 뉴욕 하이라인공원
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 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 기자 말
2012년 12월, 10일 동안 뉴욕에 머물면서 많은 걸 봤다. 미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타임스 스퀘어는 물론 2009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가 나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상점이었던 메이시스 백화점,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브루클린 교 등 뉴욕엔 '가장', '최고'라는 수식어를 단 장소들이 많았다. 물론 "얘네들 오버하네"라고 생각하고 싶은 곳도 있었지만.
숨어있는 거리퍼포먼스를 보면서 맨해튼 시내를 둘러보는 버스투어, 시작한 지 5분 만에 모든 옷을 벗고 공연하는 나체 뮤지컬, 일자리를 달라면서 시내 한복판을 점령한 시위자들도 볼거리였다.
뉴욕 관광안내책자에도 실린 한인타운 파리바게뜨와 눈 돌아갈 정도로 물건이 다양했던 벼룩시장, 여기가 뉴욕이 맞나 헷갈리게 만든 차이나타운 등 뉴욕은 다양한 색깔로 이뤄진 도시였다. 확실히 매력이 많은 도시였지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단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하이라인공원을 말할 것이다.
하이라인공원은 공원에 대한 생각을 바꾼 곳이다. 일정한 장소에 나무와 꽃, 연못, 쉼터 등을 배치한 그런 공원이 아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었으며, 머물러 있는 대신 이동하는 공원이었다. 공원은 '정적'인 곳이고, '휴식하는 곳'이라는 통념을 깨버렸다.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는 공원이 아니라 한 발짝 벗어난 곳에서 도시를 유람하는 공원이었다. 하이라인공원이 이런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된 건 바로 그 자리가 버려진 고가철도였기 때문이다.
19, 20세기를 관통하는 뉴욕 역사, 공원 안에 숨어 있다
하이라인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더듬자면 꽤 긴 이야기가 '술술술' 풀려나온다. 그 풍부한 이야기가 하이라인공원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때는 18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시는 화물운송을 위해 땅 위에 철로를 깐다. 하지만 당시 뉴욕 시내는 말과 마차, 증기차, 사람, 자전거가 뒤엉켜 다니던 혼란스런 곳이었다. 그 가운데 놓인 철로는 혼란을 부채질했다. 열차와 다른 차량이 교차하는 10번가는 워낙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생겨 '죽음의 거리'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였다.
1929년 뉴욕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놀랄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바로 땅에서 높이 떠있는 공중철로를 깔자는 것. 1억5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인 프로젝트였다. 2009년 기준 20억 달러(2조900억 원)짜리 건설공사였다.
1934년 개통한 공중철도는 오로지 화물을 편리하게 옮기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 건물 한가운데를 철로가 통과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즉, 화물열차가 공장이나 창고로 쓰이는 건물 한가운데 멈추면 그 상태로 물건을 철로 밖으로 내리는 구조였다. 시내 쪽 교통 정체를 피하면서 화물운송을 편리하게 만든 기발한 구조였다.
이 놀라운 계획은 그러나 오래갈 운명이 아니었다. 철도교통보다 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더 빠른 운송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1944년 미국 의회는 주와 주를 잇는 고속도로망 건설을 계획한다. 1950년대 여러 주가 고속도로를 깔기 시작하면서 화물트럭운송이 눈에 띄게 발전한다. 반대로 철도운송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1950년대 초와 1970년대 초를 비교해보면 20년 사이 철도이용객은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60년대 철도운송이 줄면서 뉴욕 고가철도 남쪽 절반을 철거한다. 1980년 마지막 운송을 끝내고 운영사인 콘레일(Conrail)은 고가철도를 뉴욕시에 기부한다. 그렇게 약 20여 년 동안 고가철도는 방치된다.
쓰지 않는 집은 폐가가 되고, 다니지 않는 길은 풀로 뒤덮인다. 고가철도가 그랬다. 풀이 수북이 자라고 야생동물이 자리를 잡았다. 시민들은 흉물로 생각했다. 고가철도 주변 땅을 가진 사람들은 철도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철도를 철거하면 음침하던 주변이 환해지고 땅값도 오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1999년 뉴욕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철거 요구를 수용했다. 뉴욕 범죄율을 크게 떨어뜨려 인기가 높았던 줄리아니가 철거 요구를 수용하면서 고가철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1999년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이란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단체는 철로를 보존하면서 공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프로머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가 모델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화물열차 이동로를 새로 꾸며 도시산책로로 만든 공중정원이 바로 프로머나드 플랑테였다.
줄리아니의 후임으로 마이클 블룸버그가 뽑힌 게 '친구들'에게는 기회였다. 블룸버그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CEO 시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링컨 공연예술센터, 센트럴 공원관리단, 유대인 박물관 이사로 활동한 블룸버그였다. '친구들'은 블룸버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새로운 뉴욕시장은 2004년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드는 데 5000만 달러(522.5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뉴욕을 떠올리는 그림들, 낙서들, 광고판들, 그게 바로 뉴욕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고가철도 구간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먼저 고가철도가 가진 역사성을 지키고자 했다. 고가철도엔 뉴욕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각 구역마다 지역에 맞는 개성을 심을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과거 철로 3분의 1을 남긴 공중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정원, 의자, 보행로 등이 지역에 맞게 만들어지고 배치됐다.
2009년 6월 갠스부르트가(Gansevoort Street)에서 20번가까지 1차 구간 공사가 완공됐다. 2011년 6월엔 20번가에 30번가가 완성됐고, 2014년에 34번가까지 나머지 구간이 완성될 계획이다.
2011년 당시 하이라인을 걸었을 때는 살짝 흐린 날씨였다.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걷고 있었다. 1시간 넘게 걸으면서 한국인은 못 봤다. 대부분 뉴욕 사람들로 보였다. 관광지로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 사람들에겐 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 보였다.
공원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15분. 걸음 빠르기에 따라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될 듯하다. 하이라인공원은 고가철도를 따라 걷기 때문에 뉴욕 시내를 구경하면서 움직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한쪽으로는 허드슨 강까지 보인다.
뉴욕이라면 그래피티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한 그래피티는 벽에 긁어서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그래피티가 세계 정상급 수준인데 홍대 토끼굴, 신도림 지하철역, 부산대 앞 지하철역이 대표 명소다.
하이라인공원을 거닐며 보게 되는 그림 가운데 특히 인기 있는 건 '창문 속 사람'. 실제 사람이 손을 흔드는가 싶어 자세히 보면, 그림이어서 보는 이마다 실소를 짓게 했다. 공원 주변 건물에 내건 광고도 제법 많았다. 지나는 사람이 많아 광고 효과가 꽤 있을 듯 보였다. 공원엔 두 군데 철제 프레임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과거 고가철도 시절 도로 쪽으로 나 있던 광고판을 없애지 않고 살렸다. 철제 프레임을 보면 뉴욕 풍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기분이다.
하이라인공원은 우리나라 청계천공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프로젝트다. 도심재생이라는 측면이나 도심을 관통하는 공간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청계천공원은 땅 밑으로 움푹 꺼진 형태여서 조망 부문에선 하이라인공원과 비교가 안 된다. 아마 청계고가도로를 재활용했다면 하이라인공원과 비슷한 시야를 얻었을 것이다.
운영과 기획주체도 다르다. 하이라인공원은 민간, 청계천공원은 정부가 주체가 됐다. 그런 점에서 하이라인공원은 좀 더 자유분방한 형태가 됐고, 청계천공원은 일사불란한 느낌을 갖게 됐을 것이다.
기간은 차이가 많이 난다. 하이라인공원보다 더 길이가 긴 청계천공원은 만드는 데 2년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시작한 하이라인공원은 2014년이 돼야 끝이 날 정도로 시간이 길다.
청계천공원을 거닐면서 보게 되는 건 깨끗한 물과 잘 가꿔진 보행로, 우뚝 솟은 건물들이다. 성형이 잘된 미인 같은 느낌이다. 하이라인 파크를 따라 뉴욕시를 거닐다 보면 지저분하게 방치된 건물, 뜻을 알 수 없는 낙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고귀함과 누추함이 공존하는 도시, 죄책감과 뻔뻔함이 공존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하이라인공원은 무엇보다 오랫동안 애물단지이자 도시 흉물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애물단지의 재탄생, 흉물의 재발견이라니. 어쩌면 잡초가 잡초가 아니듯, 악동이 악동이 아닐지 모른다. 그 가치를 미처 찾지 못했을 뿐. 그래서 하이라인공원이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에 나머지 부분이 완공된다니, 또 한 번 뉴욕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하이라인공원에 가보고 싶다.
▲ 뉴욕은 명성만큼 볼 것이 많다. 거대함과 화려함, 자유분방함, 다양함이 어우러진 곳이다. 사진은 한 때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불린 메이시스백화점 외벽에 전시한 인형의 공간 시리즈 가운데 하나. ⓒ 김대홍
2012년 12월, 10일 동안 뉴욕에 머물면서 많은 걸 봤다. 미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타임스 스퀘어는 물론 2009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가 나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상점이었던 메이시스 백화점,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브루클린 교 등 뉴욕엔 '가장', '최고'라는 수식어를 단 장소들이 많았다. 물론 "얘네들 오버하네"라고 생각하고 싶은 곳도 있었지만.
숨어있는 거리퍼포먼스를 보면서 맨해튼 시내를 둘러보는 버스투어, 시작한 지 5분 만에 모든 옷을 벗고 공연하는 나체 뮤지컬, 일자리를 달라면서 시내 한복판을 점령한 시위자들도 볼거리였다.
뉴욕 관광안내책자에도 실린 한인타운 파리바게뜨와 눈 돌아갈 정도로 물건이 다양했던 벼룩시장, 여기가 뉴욕이 맞나 헷갈리게 만든 차이나타운 등 뉴욕은 다양한 색깔로 이뤄진 도시였다. 확실히 매력이 많은 도시였지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단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하이라인공원을 말할 것이다.
하이라인공원은 공원에 대한 생각을 바꾼 곳이다. 일정한 장소에 나무와 꽃, 연못, 쉼터 등을 배치한 그런 공원이 아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었으며, 머물러 있는 대신 이동하는 공원이었다. 공원은 '정적'인 곳이고, '휴식하는 곳'이라는 통념을 깨버렸다.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는 공원이 아니라 한 발짝 벗어난 곳에서 도시를 유람하는 공원이었다. 하이라인공원이 이런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된 건 바로 그 자리가 버려진 고가철도였기 때문이다.
19, 20세기를 관통하는 뉴욕 역사, 공원 안에 숨어 있다
▲ 하이라인공원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 육교가 쭉 이어진 공중공원이라 생각하면 된다. 느낌을 살려서 그렸는데, 제대로 느낌이 전달될지 모르겠다. ⓒ 김대홍
하이라인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더듬자면 꽤 긴 이야기가 '술술술' 풀려나온다. 그 풍부한 이야기가 하이라인공원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때는 18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시는 화물운송을 위해 땅 위에 철로를 깐다. 하지만 당시 뉴욕 시내는 말과 마차, 증기차, 사람, 자전거가 뒤엉켜 다니던 혼란스런 곳이었다. 그 가운데 놓인 철로는 혼란을 부채질했다. 열차와 다른 차량이 교차하는 10번가는 워낙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생겨 '죽음의 거리'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였다.
1929년 뉴욕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놀랄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바로 땅에서 높이 떠있는 공중철로를 깔자는 것. 1억5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인 프로젝트였다. 2009년 기준 20억 달러(2조900억 원)짜리 건설공사였다.
1934년 개통한 공중철도는 오로지 화물을 편리하게 옮기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 건물 한가운데를 철로가 통과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즉, 화물열차가 공장이나 창고로 쓰이는 건물 한가운데 멈추면 그 상태로 물건을 철로 밖으로 내리는 구조였다. 시내 쪽 교통 정체를 피하면서 화물운송을 편리하게 만든 기발한 구조였다.
이 놀라운 계획은 그러나 오래갈 운명이 아니었다. 철도교통보다 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더 빠른 운송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1944년 미국 의회는 주와 주를 잇는 고속도로망 건설을 계획한다. 1950년대 여러 주가 고속도로를 깔기 시작하면서 화물트럭운송이 눈에 띄게 발전한다. 반대로 철도운송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1950년대 초와 1970년대 초를 비교해보면 20년 사이 철도이용객은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1960년대 철도운송이 줄면서 뉴욕 고가철도 남쪽 절반을 철거한다. 1980년 마지막 운송을 끝내고 운영사인 콘레일(Conrail)은 고가철도를 뉴욕시에 기부한다. 그렇게 약 20여 년 동안 고가철도는 방치된다.
▲ 뉴욕시 서쪽을 흐르는 허드슨강. 하이라인공원을 걷다 보면 아주 가까이 허드슨강이 보인다. ⓒ 김대홍
▲ 하이라인공원을 걷다 보면 뉴욕 예술가들이 만든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 아래 창문에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림이다. ⓒ 김대홍
1999년 뉴욕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철거 요구를 수용했다. 뉴욕 범죄율을 크게 떨어뜨려 인기가 높았던 줄리아니가 철거 요구를 수용하면서 고가철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1999년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이란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단체는 철로를 보존하면서 공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프로머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가 모델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화물열차 이동로를 새로 꾸며 도시산책로로 만든 공중정원이 바로 프로머나드 플랑테였다.
줄리아니의 후임으로 마이클 블룸버그가 뽑힌 게 '친구들'에게는 기회였다. 블룸버그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CEO 시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링컨 공연예술센터, 센트럴 공원관리단, 유대인 박물관 이사로 활동한 블룸버그였다. '친구들'은 블룸버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새로운 뉴욕시장은 2004년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드는 데 5000만 달러(522.5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뉴욕을 떠올리는 그림들, 낙서들, 광고판들, 그게 바로 뉴욕
▲ 하이라인공원은 민간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 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친구들'은 방치된 철도를 보존하면서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따. 사진 가운데 있는 철제프레임은 과거 공중철도 시절 광고판을 달던 곳이었다. ⓒ 김대홍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고가철도 구간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먼저 고가철도가 가진 역사성을 지키고자 했다. 고가철도엔 뉴욕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각 구역마다 지역에 맞는 개성을 심을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과거 철로 3분의 1을 남긴 공중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정원, 의자, 보행로 등이 지역에 맞게 만들어지고 배치됐다.
2009년 6월 갠스부르트가(Gansevoort Street)에서 20번가까지 1차 구간 공사가 완공됐다. 2011년 6월엔 20번가에 30번가가 완성됐고, 2014년에 34번가까지 나머지 구간이 완성될 계획이다.
2011년 당시 하이라인을 걸었을 때는 살짝 흐린 날씨였다.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걷고 있었다. 1시간 넘게 걸으면서 한국인은 못 봤다. 대부분 뉴욕 사람들로 보였다. 관광지로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 사람들에겐 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 보였다.
공원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15분. 걸음 빠르기에 따라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될 듯하다. 하이라인공원은 고가철도를 따라 걷기 때문에 뉴욕 시내를 구경하면서 움직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한쪽으로는 허드슨 강까지 보인다.
▲ 하이라인공원은 길게 이어진 공중산책로다. 공원을 거닐면서 자연스럽게 뉴욕의 다양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은 퓰리처상을 받아 유명해진 사진작품 'VJ day Kiss'를 그림으로 만들었다. ⓒ 김대홍
뉴욕이라면 그래피티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한 그래피티는 벽에 긁어서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그래피티가 세계 정상급 수준인데 홍대 토끼굴, 신도림 지하철역, 부산대 앞 지하철역이 대표 명소다.
하이라인공원을 거닐며 보게 되는 그림 가운데 특히 인기 있는 건 '창문 속 사람'. 실제 사람이 손을 흔드는가 싶어 자세히 보면, 그림이어서 보는 이마다 실소를 짓게 했다. 공원 주변 건물에 내건 광고도 제법 많았다. 지나는 사람이 많아 광고 효과가 꽤 있을 듯 보였다. 공원엔 두 군데 철제 프레임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과거 고가철도 시절 도로 쪽으로 나 있던 광고판을 없애지 않고 살렸다. 철제 프레임을 보면 뉴욕 풍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기분이다.
▲ 2006년 착공한 하이라인공원 공사는 올해 끝난다. 지금도 북쪽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 김대홍
하이라인공원은 우리나라 청계천공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프로젝트다. 도심재생이라는 측면이나 도심을 관통하는 공간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청계천공원은 땅 밑으로 움푹 꺼진 형태여서 조망 부문에선 하이라인공원과 비교가 안 된다. 아마 청계고가도로를 재활용했다면 하이라인공원과 비슷한 시야를 얻었을 것이다.
운영과 기획주체도 다르다. 하이라인공원은 민간, 청계천공원은 정부가 주체가 됐다. 그런 점에서 하이라인공원은 좀 더 자유분방한 형태가 됐고, 청계천공원은 일사불란한 느낌을 갖게 됐을 것이다.
기간은 차이가 많이 난다. 하이라인공원보다 더 길이가 긴 청계천공원은 만드는 데 2년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시작한 하이라인공원은 2014년이 돼야 끝이 날 정도로 시간이 길다.
청계천공원을 거닐면서 보게 되는 건 깨끗한 물과 잘 가꿔진 보행로, 우뚝 솟은 건물들이다. 성형이 잘된 미인 같은 느낌이다. 하이라인 파크를 따라 뉴욕시를 거닐다 보면 지저분하게 방치된 건물, 뜻을 알 수 없는 낙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고귀함과 누추함이 공존하는 도시, 죄책감과 뻔뻔함이 공존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하이라인공원은 무엇보다 오랫동안 애물단지이자 도시 흉물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애물단지의 재탄생, 흉물의 재발견이라니. 어쩌면 잡초가 잡초가 아니듯, 악동이 악동이 아닐지 모른다. 그 가치를 미처 찾지 못했을 뿐. 그래서 하이라인공원이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에 나머지 부분이 완공된다니, 또 한 번 뉴욕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하이라인공원에 가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www.thehighline.org, 위키피디아(하이라인파크) 편 참조, 논문 '미국철도산업의 철도경쟁을 위한 체계연구-탈규제를 중심으로'(2012, 채일권), 다음 백과사전 '고속도로'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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