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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다 알면서... 우리 학교가 부끄럽습니다"

교학사 선택한 고교, 학생-학부모-졸업생 성토 직면... 일부 학교 '철회'

등록|2014.01.02 20:56 수정|2014.01.02 20:56

교학사 교과서 채택, 안녕 못합니다2일 오전 교학사 교과서를 역사교과서로 채택한 고교의 학생들이 직접 '안녕하지 못하다'며 채택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해당 대자보는 10분만에 철거됐다. ⓒ 해당학생 제공


친일을 미화하고 군사독재를 찬양했다는 논란을 빚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점점 발붙일 곳을 잃고 있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사회적 비판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학부모, 졸업생 등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에 몇몇 학교는 교과서 채택 철회 등을 놓고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학교가 교과서 채택을 마감한 지난해 12월 31일. 경기도 수원 동우여고와 동원고, 여주 제일고, 성남 영덕여고, 파주 운정고, 울산 현대고, 대구 포산고, 경북 성주고, 전주 상산고 등 9개 학교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뒤이어 학교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이 폭주했다. SNS에는 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쏟아졌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비판글이 올라왔다.

학생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 이유 묻고 싶다"... 교사 "외압 있었다"

이런 비판 여론은 이제 온라인을 넘어 학교 현장에서도 빗발치고 있다. 2일 수원 동우여고에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성토하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다. 이 대자보를 붙인 동우여고 재학생은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를 가진 이 교과서를 채택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교과서 집필진들에게 건네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고 안중근 의사를 교과서 색인 목록에서 제외한 점, 교과서 249쪽에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을 따라다닌 경우가 많았다"고 기술한 부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5.16쿠데타 사료를 선별적으로 편집, 역사적 오류가 다수 발견 된 점, 출처 불명확 내용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자보는 학교 측에 의해 10여분 만에 철거 됐으나 사진이 트위터를 통해 확산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런 학생의 비판에 동우여고 교사도 응답했다. 공기택 동우여고 국사 담당 교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우여고 국사교과서 교학사 채택 철회를 요청합니다"라며 공식적으로 교과서 채택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 교학사 교과서를 역사 교과서로 채택한 것에 반대하는 '안녕 대자보'를 철거해 논란을 빚은 경기 수원 동우여고에서, 2일 오후 다른 학생들이 계속 '소자보'를 붙이며 항의하고 있다. 해당 내용은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다. ⓒ 트위터 사용자(@shs00*****)


그는 "일단 동우여고 국사교과서 교학사 선택은 교사들의 뜻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선생들에 대한 미움과 오해는 없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라고 글을 게시한 이유를 밝혔다.

"동우여고 교학사 교과서 선택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더 큰 누군가의 외압을 받고 있는 학교장으로부터 몇 차례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사립학교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구대로 교학사를 올리긴 했으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하도록 3순위로 해서 학교운영위원회에 추천했습니다. 학운위에서라도 막아주길 바랐던거죠. 결과는 학운위에서마저 3순위로 올린 교학사를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공 교사는 "끝까지 막지 못하고 타협 아닌 타협을 하게 된 국사 선생님들 네 분은 지금 아이들에게 무척 부끄러운 마음"이라며 "제발 우리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 누군가의 고집이 꺾이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공 교사는 "교과서 선택 하나 하기 위해 누군가의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이런 식민지같은 현실을 온 국민이 나서서 막아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학부모, 졸업생까지 나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이런 반발은 동구여고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 영덕여고의 한 재학생은 지난 1일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학교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나 학교 측에 의해 글이 삭제됐다.

이 학생은 <오마이뉴스>에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 내용을 제보하며 "왜곡된 역사는 절대로 배우고 싶지 않아 이렇게 올렸습니다. 학교의 반응은 '삭제'였습니다. 의견을 말 할 자유마저 탄압하는 이곳이 어떻게 교육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개탄했다.

이 학생이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워왔기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역사 왜곡 교과서의 내용을 정말 다 알고 계셨다면 이렇게 채택할 리는 절대 없을 테니, 모르는 것 같아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유신헌법 미화 등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영덕여고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영덕여고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한 학부모는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의 학부모라는 게 정말 부끄럽다"며 "장래 어머니가 될 인재들을 키우는 여학교에서 왜곡된 교육을 하다니, 학생들이 모를 것 같은가"라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비판했다. 또다른 학부모는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해 달라"고 남겼다.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도 나섰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북학부모회'는 2일 성명을 내고 전주 상산고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 취소를 촉구했다.

이들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왜곡, 과장, 편파해석, 사실오류, 이승만 미화, 식민지 근대화론 확산, 독립운동사와 민주화운동 폄하 등으로 불량 교과서로 외면 받고 있다"며 "도내에서 유일하게 불량 역사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것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울산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선택한 현대고 홈페이지에는 졸업생들의 비판글을 올라왔다.

자신을 2회 졸업생이라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게시판에 "일제강점기와 친일을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찬양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온갖 오류 투성이의 교과서로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반대한다"고 남겼다.

6회 졸업생 이아무개씨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역사교과서를 교학사 제품으로 선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교학사 역교과서서 선택 고교가 전국에 1%밖에 안 되는데 거기에 이름을 올리느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학교 비판 여론에 채택 철회 하기도

사회적 비판여론을 넘어 학교 구성원 당사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철회하거나 철회를 검토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경기도 파주 운정고교는 2일 사회과 교사 등 5명으로 구성된 교과협의회를 열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을 철회하고 다시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운정고는 지난달 27일 교과선정위원회와 30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경기도 내 공립고등학교로는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운정고교 역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 여론에 밀려 철회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했다.

경북 성주고에서는 교과협의회에서 채택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거부됨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 재선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경기 성남 영덕여고는 이날 오후 교과협의회를 열고 한국사 교과서 채택 관련 협의를 다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확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집계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1일 현재 전국 2350여 개 고교 중 9곳 정도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학교운영위원회 등에서 통과되지 못하거나 재선정 절차를 거치는 곳이 있어 정확한 집계 결과는 오는 6일쯤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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