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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어머니의 얄팍한 꼼수, 귀엽네요

도배 하는데 꼼수 부린 어머니, 소녀처럼 느껴졌습니다

등록|2014.01.03 10:43 수정|2014.01.06 11:27

한 밤중에 짐 정리올해 일흔 셋 되신 어머니의 꼼수에 말려 한 밤중에 한 트럭 분량의 책들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 이철재


"내일 도배 들어온다. 짐 빼라."

2일, 올해 들어 첫 세미나 겸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경기도 포천에 살고 있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뭔 얘기인가 들어보니, 어머니가 집에 습기가 많이 찬다고 도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도 성화라서 내일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전에 집에서 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제게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제가 빌붙어 살고 있는 어머니 집은 지난해 11월 말 대대적인 창문 보수 공사를 했습니다. 낡은 창 대신에 방한 기능을 갖춘 2중창으로 바꿔 달았던 것이죠.

그때부터 어머니는 춥지 않아서 좋지만, 바람이 들지 않아서 벽에 곰팡이가 핀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습니다. 겨울에 도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지난달에는 도배 기술자를 불러서 견적을 뽑으셨더군요. 어머니는 한 번 하시겠다고 하면 앞뒤 안보고 밀어붙이는 성격이 있으시거든요.

도배 기술자분과 이런 저런 얘기하다 지금 당장 도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창문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도배를 새로 해도 다시 습기가 찰 수 있다는 것이었죠. 어찌 됐든 어머니의 강행에 제동이 걸린 셈입니다.

도배는 봄 되면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필요하면 키 큰 작은형을 불러서 천장 도배까지 말끔하게 하겠다고 그때까지 참으시라고 다짐도 받아 뒀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저를 빼고 누나에게 투덜거리셨나 봅니다.

쌓인 책들도배 끝나면 또 다시 방으로 들여 놓을 일이 걱정입니다. ⓒ 이철재


"내가 도배 하자고 안 했어, 그랬으면 내가 니 딸이다"

누나는 매형과 철물 도매상을 하고 있어서, 도배 등 관련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작년 봄 우리 집 옥상 텃밭, 일명 '엄니네 텃밭'을 앵글로 받침대를 만드는 작업 할 때도 그 많은 앵글은 누나가 제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없을 때만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나 봅니다.

"니 누나가 내일 도배할 사람 보낸다더라. 걔는 왜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는지 몰라."

오늘 약속 다 마치고 오후 9시 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짐짓 누나에게 화가 나신 듯 약간의 짜증도 보이시더군요.

"뭐야 누나는 엄니가 하두 징징대서 사람 보내는 거라고 하던데?"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오히려 화를 내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 울 어머니도 아들에게 꼼수를 쓰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제 방에 책이 한 트럭이 있습니다. 창문 공사할 때도 그 책 빼느라, 더욱이 4대강 자전거 조사하다 부러진 팔 때문에 한 손으로 그 많은 책 옮기느라 죽을 뻔 했습니다.

창문 공사 후 다시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뭐 어머니 집에 빌붙어 살고 있는 저로서는 어쩌겠습니까? 또 다시 방안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은 'SBS 물은 생명이다'팀들과 아침 일찍부터 인천부근 이작도 촬영이 있습니다. 때문에 늦게라도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보통 9시 넘으면 주무시는 분인데, 미안하셨나 봅니다. "내가 도배 하자고 안 했어. 니 누나에게 전화해봐? 내가 그랬으면 내가 니 딸이다"라면서 또 뻔 한 수를 쓰시네요. 어머니의 꼼수가 살짝 얄밉기도 했지만, 올해 일흔 셋 되신 어머니의 소녀 같은 모습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지더군요.

훵한 방안짐 정리가 끝나니 새벽 두시, 5시에 나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꼬박 밤을 세게 됐습니다. ⓒ 이철재


그렇게 어머니랑 티격태격 하면서 정리를 하고나니 새벽 2시가 다 됐습니다. 내일 들어갈 섬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5시 쯤 나가야 하니, 오늘 꼬박 밤을 세야 할 판입니다. 삶이, 아니 어머니가 그대로 속일지라도, 어머니는 귀엽습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러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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