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길을 잃은 그대에게

등록|2014.01.07 14:23 수정|2014.01.07 14:23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보고 실망한 국민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대선패배에 버금가는 절망감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에게도 쓰지 말라고 했던 '대박'이라는 단어를 대통령이 써서 부끄러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기자의 불통 논란 질문에 대해 "현장을 방문하고 청와대에 들어오는 민원을 챙긴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놓는 대통령을 보며 "자랑스러운 불통"을 힘주어 말했던 청와대 홍보수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래서 말의 해를 빗대 "마이동풍"이라고 지적한 노회찬 전 의원의 재치에도 우리는 편하게 웃을 수 없다. 아직 4년이 더 남았다.

하지만 기자는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더이상 '멘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절망감이 정치 허무주의나 냉소주의, 더나아가 정치 무관심주의로까지 흘러간다면 4년 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비슷한 대통령을 뽑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불통국면은 그리하여 어쩌면 집권당이 진정으로 원하는 현재의 정치 지형도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권교체의 기회가 4년 남은 이 시점에서 차근차근 대선 패인의 원인부터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이다. 
지난 대선에 패배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관이 개입한 '부정선거'에 있다는 것이 진보진영의 공통된 판단이다. 그런데 체감 불통온도가 100퍼센트에 가까운 대통령이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아직 40퍼센트 넘는 견고한 지지를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새누리당의 지지율과 같거나 간신히 상회하는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위에는 없지만 비율로는 오히려 다수의 국민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이유가 로마의 도로 네트워크 때문이듯 현재의 모든 오프라인 방송 뉴스가 청와대로 통하고 있으니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뉴스의 시시비비는 집권여당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이 쿠오바디스를 외칠 때 마키아벨리는 재빨리 자기 편을 모으고 괴벨스의 전략, 즉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반복하면 결국 믿는다."라는 전략을 적극적인 실천으로 옮겨서 결국은 정쟁에서 승리한다. 그동안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해온 기본 전략과 같다.

다시 말해 문제는 팩트나 담론의 정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팩트나 담론의 흐름과 네트워크이다. 집권여당은 오랜 선거 경험으로 이 둘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그들은 종편을 만들어 보수신문의 글자를 자극적인 이미지와 선동적인 워딩으로 바꾸어 반복해서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팩트나 담론의 옳고 그름은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일반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북한'이라는 부정적인 기호를 사용해 모든 이미지를 그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극실재 생산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확산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진보진영이 종편의 터무니없이 낮은 시청률을 비웃고 자신이 언급한 팩트나 담론의 정당성을 담보하려고 노력할 때 집권층은 그 낮은 시청률도 여러개의 종편 채널에서 반복한다면, 지상파의 독점 네트워크를 타고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부동층에게 도달하는 자신들의 거짓말이, 종북논란이, NLL논란이 결국 부동층의 표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갈파하고 있었다. 티비토론에서 야권단일 후보인 문재인 후보가 아무리 논리적인 승리를 하여도 "심정은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고 호불호는 이성보다 감정에 따르는 것(파스칼)"이다.

SNS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집권여당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SNS에서 그른 정보들을 봇을 통하여 대량으로 리트윗하여 양산하고 있을 때 진보진영은 수공업으로 한땀한땀 만든 담론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집권여당의 목적은 애당초 SNS에서 담론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진실의 전파가 아니라 철저한 부동층 공략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목표한대로 SNS에서 참패하지 않고 부동층의 의심과 회의와 혼란을 증폭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조작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과 인권유린 사건으로 바꿔치기 하여 그들의 거짓말에 대한 부동층의 애초의 부정을 의심으로 그리고 결국 믿음으로 바꾸어놓았다.

막판에 진보진영이 골든 크로스를 외치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집권여당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윤리는 기득권에게 지배도구에 불구한 것이다. 명분은 진보진영이 품었으나 승리는 MB의 계승자들이 갖게 되었고 그 승리는 명분의 힘을 "우리안의 자랑스러움"으로 가두어놓고 절망의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우리는 불통의 대통령이 읽어내려가는 하나마나한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보게 되었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건 왠지 그들이 떡밥으로 던져준 것 같은 "대박"을 SNS에서 조롱하는 것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멘붕'에 빠지면 안되는 이유를 발견한다. 옛속담처럼 지금부터라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 4년 후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팩트와 담론을 전달할 네트워크의 정비와 새로운 개설이 그 답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로가 없다면 또는 도로가 남의 것이라면 팔릴리가 만무하다. 그리스의 훌륭한 철학들이 자신의 좁은 폴리스에 갇혔던 사실과도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우선 정치권은 현집권세력을 만들어준 기존 네트워크를 정비해야 한다. 방통위가 방송계를 더욱 정권 친화적으로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는건 우연이 아니다. 자신들의 승리를 영구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점에 민주당과 정의당, 안철수 신당 등 제도권 정당과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방통위와 공중파, 종편을 넋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참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다.

예를 들어 종편이기는 하지만 손석희 보도본부 사장 취임 이후 신뢰도가 급격히 높아진 손석희의 JTBC 뉴스를 방통위에서 재빨리 중징계한 이유도 전술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이때 야당측의 방통위 위원들은 TV조선이나 채널 A 등의 보도를 같이 문제삼고 항의하기는 커녕 항의표시로 퇴장해버렸다. 이런 대응은 너무도 소극적이고 무책임하며 근시안적이다. 야권은 각종 제도개선과 관련 법규 개정을 통해 구조적으로 방송환경의 편파성을 균형적으로 돌려놓는 일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야권의 정치주체들은 이를 첫번째 정책연대 과제로 삼아야 한다. 기자는 야권에 이 시급한 문제를 다룰 공동위원회를 제안하고 싶다. 향후 4년이 아니라 9년이 될 수도 있을 불통정부를 피하고자 한다면 조금 늦었지만 오히려 지금이 적기이다.

진보진영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대응도 중요하다. 일단 한겨레 신문이나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중도 또는 진보신문을 구독하는 일이 일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러나 최우선의 실천 방식이다. 일반 국민들이 종편이나 공중파 등 방송정책에 관여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적극적으로 국민 TV나 팟케스트 등에 후원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선거의 케스팅보드를 쥐고있는 부동층에게 바른 정보가 전달될 수 있도록 우선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 일은 나비의 날개짓처럼 작아보이지만 그것이 불러올 파장으로 보자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물량공세에 맞서는 길은 중도성향의 신문이나 진보신문을 우리같은 일반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구독하여 이 사회에 만연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신문들처럼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가 거리에서, 전철에서, 식당에서 점점 더 사람들 눈에 보이고 자연스럽게 읽히게 된다면 비로서 우리는 4년 뒤를, 3년 뒤를, 2년 뒤를, 1년 뒤를 점점 더 자신감있게 바라보고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정보 네트워크의 균형성을 위해 진보 신문들을 구독하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는 작은 한걸음이겠지만 길게 본다면 소통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큰 걸음이 될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조심스레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이 시작이었다면 이제 안녕하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서로의 대안을 생각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가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연설 덕분에 그동안 잊고 있던 헌법 1조를 다시 꺼내든다.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안녕하게 살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