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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 키워드는 '반란'... 하정우가 해낼까?

[영화로 세상 읽기⑫] 2014 충무로와 할리우드의 경향

등록|2014.01.11 15:12 수정|2014.01.11 15:12
2014년 충무로와 할리우드의 공통적인 흥행 경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올해 충무로와 할리우드에서는 유독 시대극이 많이 개봉한다. 왜 충무로와 할리우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일까?

조선으로 돌아가 '반란'을 꿈꾸는 충무로

▲ 여름시즌에 개봉하는 <명랑>는 이순신프리미엄까지 더 해져 흥행돌풍이 예상된다. ⓒ CJ엔터테인먼트

최근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수정역사극(faction)이 인기였다. 매년 한두 편 이상의 시대극이 관객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시대극이 많다. 1월 <조선미녀삼총사>를 시작으로 <역린><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명랑-회오리바다>(이하 명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려) 등의 대형시대극들이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고려 무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협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조선시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든 작품들이 정치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 6·25전쟁부터 현재까지를 그리는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등 현대사극까지 포함하면 2014년은 '시대극의 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올해 개봉하는 시대극 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군도>, 인기TV극 <다모><더 킹 투 하츠>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의 <역린>, 800만 관객의 <최종병기 활>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명랑>, 10여 년 만에 이병헌과 전도연이 호흡을 맞춘 박흥식 감독의 <협녀>가 주목된다.

특히 <군도>와 <명랑>은 2014년 최고 기대작이다. 윤종빈, 김한민 감독의 검증된 연출력에 하정우와 강동원, 최민식과 류승룡의 막강 투톱이 더 해져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모두 높은 점수가 기대된다. 게다가 여름시즌에 개봉하는 <명랑>은 이순신프리미엄(소설, 영화, TV극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화상품은 흥행에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다)까지 더해져 흥행돌풍이 예상된다. <군도>와 <명랑>은 여름 성수기에 맞붙을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도 천만영화가 나온다면 이 작품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개봉하는 사극들의 공통점은 반란이다. <군도>는 부제처럼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는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의적과 관군의 대결을 그린 서사활극이고 <역린>는 정조 암살을 둘러싼 사건을 그린 수정역사극이다. <명랑>은 반란을 직접적으로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이순신도 죽을 때까지 선조의 의심에 시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란의 기운이 흐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협려>도 민란을 주도한 세 검객의 복수극을 그린다. 지난해 충무로의 흥행 열쇠말이 투쟁(정치투쟁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설국열차><관상><변호인>은 모두 '대박'이었다)이었다면 올해의 흥행 열쇠말은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로 돌아가 '영웅'을 찾는 할리우드

▲ 3월에 개봉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올해 개봉하는 할리우드 사극 중 최고 기대작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충무로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도 시대극열풍이 거세다. 할리우드에서도 매년 한두 편 이상 시대극이 제작되지만 올해는 예년에서 비해 시대극의 비중이 현저히 높다.

1월 레니 할린의 <헤라클레스: 더 레전트 비긴스>를 시작으로 2월 폴 W. S 앤더슨의 <폼페이>, 3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 노암 머로의 <300: 제국의 부활>, 8월 브렛 레트너의 <헤라클레스: 트라키안 전쟁>, 12월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등 대형사극들이 연이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올해도 할리우드의 대세는 슈퍼히어로와 SF영화다. <켑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액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등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이 올해도 세계 영화 시장을 융단폭격할 예정이다.

SF영화도 변함 없이 강세다. <트랜센던스><고질라><엣지 오브 투모로우><트랜스포머4><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주피터 어센딩><인터스텔라><헝거 게임: 모킹 제이 1부> 등 대형SF영화들도 호시탐탐 전 세계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슈퍼히어로와 SF영화가 주도하는 큰 틀의 할리우드 흥행 경향은 바뀌지 않았지만 시대극이 대폭 늘어난 것은 예년과는 다른 특이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공히 과거로 돌아간다. 다만 충무로는 중세(고려 후기와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반면 할리우드는 고대로 돌아간다. 올해 개봉하는 할리우드의 사극들은 헤라클레스, 노아, 모세 등 대부분 고대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영화들이다.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과거로 간 까닭은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과거로 가는 까닭은 단순하다. 그곳에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흥행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 인식과 현실 탈피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적인 경향이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서 사실적 체험과 '이국적 정취'(exoticism)를 동시에 얻으려고 한다. 때문에 상업영화는 사실적인 이야기와 이국적인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해야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시대극은 이 두 가지 요소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역사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는 없고 과거의 풍경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국적 정취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탄탄한 이야기와 화려한 이국적 정취를 동시 보장할 수 있는 시대극이 상업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올해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과거로 가는 배경은 다소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 <광해><관상> 등의 수정역사극이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흥행 경향을 영리한 충무로의 제작자들이 놓칠 리 없다. 두 작품의 영향 때문인지 올해 개봉하는 시대극들은 <조선미녀삼총사>를 제외하고 제목까지 모두 두 자다. 충무로에는 아직도 흥행과 관련된 미신들이 횡행한다. 아무튼 충무로가 올해 시대극에 주목하는 것은 이미 흥행 가능성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반면 할리우드가 '신화의 시대', 즉 고대로 돌아간 이유는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기술이 발전하면서 할리우드에서는 <반지의 제왕><해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판타지소설들이 우후죽순 영화화 됐지만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장르의 과잉소비로 창작적 자원이 고갈되면서 할리우드의 게걸스러운 식욕은 동화의 세계로 확장됐다.

▲ 브라이언 싱어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역대급 망작으로 기록됐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백설공주><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헨델과 그레텔><잭 더 자이언트 킬러><오즈> 등 동화를 성인 취향으로 재해석한 대형상업영화들이 잇달아 제작됐다. 하지만 몇 작품을 제외하고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다. 특히 지난해 개봉한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제작사에 무려 1억4천만 달러의 역대급 손실만 안겨줬다.

동화로 별 재미를 못 본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이제 고대로 향하고 있다. 신화는 인류 최초의 판타지소설(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성경도 마찬가지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문학의 교차점에 신화가 있다. 점점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할리우드가 신화의 세계를 놓칠 리 없다. 신화는 판타지장르의 마지막 보고이다. 할리우드가 고대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화자본의 탐욕스러운 식욕에 의한 자원의 황폐화, 즉 소재의 고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영웅'과 '반란'을 원한다?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데는 사회적 배경도 있다. 올해 충무로는 조선으로 돌아가 반란을 꿈꾸고 할리우드는 고대로 돌아가 영웅을 찾는다. 헤라클레스, 노아, 모세는 인류 최초의 슈퍼히어로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의 대세는 슈퍼히어로영화다. 정치, 경제적 상황이 불안해지면 대중은 영웅주의에 빠져든다.(필자의 과거 기사 ' 슈퍼히어로의 정치경제학, <토르: 다크 월드>ⓛ, '를 참고하시라) 할리우드가 고대의 영웅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소재고갈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대중의 불안심리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처럼 할리우드가 영웅에 집착(슈퍼히어로까지 포함하면 올해 할리우드는 영웅들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는 이유는 대중이 영웅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충무로가 반란을 꿈꾸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반란보다 강렬한 사회적 욕망은 없다. 만일 우연이 아니라 충무로의 제작자들이 대중의 의식 흐름을 읽고 반란을 올해 흥행의 열쇠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은 놀라운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 5~6일 사회동향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응답은 무려 40.1%(사퇴 18.2%, 재신임 21.9%)였다.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도 20.8%였다.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청구와 관련해서도 '정치적 탄압'이라는 응답이 55.4%로 절반이 넘었다.

국민의 40% 이상이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거나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교체, 즉 반란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불온한(?) 심리를 고려하면 반란영화의 잠재적 시장은 1500만 명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 올해 최고 흥행작은 민중의 반란, 즉 민란을 직접적으로 다룬 <군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런 면에서 올해 최고 흥행작은 민중의 반란, 즉 민란을 직접적으로 다룬 <군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최고 흥행작은 정치투쟁을 직접적으로 그린 <변호인>이었다. 물론 최소한의 영화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적 불안과 체제의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사회적 욕망이 충무로와 할리우드를 과거로 이끌고 있다. 대중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결핍된 사회적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 영화 시장에서 충무로의 우세가 예상된다. 고대보다는 중세가 현재에 좀 더 가깝고 충무로의 반란(변혁)주의는 할리우드의 영웅주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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