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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라 불리는 유명식당, 외관부터 다르구나

[한컷도시여행⑩] 미국 동남부 최고식당, 그림자처럼 숨은 집

등록|2014.03.08 15:11 수정|2014.03.08 15:11
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 기자 말

▲ 대형상가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빽빽한 간판숲. 2014년 1월 경기도 안산에서 찍은 풍경이다. ⓒ 김대홍


▲ 우리나라 대도시 중심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간판들이다. 간판들은 내전회의에서 왕 앞에 선 신하들처럼 서 있지만, 다소곳하기보다는 현란하다. 2010년 서울 명동에서 찍은 풍경이다. ⓒ 김대홍

얼마 전 서울 시내를 거닐다 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판 앞에서 머리가 아팠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돋보이게' 경쟁하는 광고판들은 우리 가게를 찾아 달라 악다구니를 하는 듯 보였다. 난립하는 간판이 보기 좋지 않아 한때 간판정비 사업이 유행이었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했다.

이렇게 간판 경쟁을 하면 누구도 돋보이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 그렇다고 나 홀로 작고 소박한 간판을 달기도 꺼림칙하다.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야 한다. 우리나라 가게 간판 전쟁이 딱 그 모양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2년 전 그 겨울이 떠올랐다. 미국 중동부 도시 루이빌(Louisville)에 가서  두 달간 머물렀을 때다. 대도시도 아니고, 관광지도 아닌 낯선 도시에 처음 떨어졌을 땐 참 막막했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동서남북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50, 60년대 시골에서 보따리 하나 싸들고 서울역에 도착한 사람 심정이 그랬으리라. 그래도 일주일쯤 지나니 제법 여유가 생겼다. 미국 다른 도시도 그렇다곤 하지만, 이 루이빌이란 도시는 방향을 찾기가 아주 쉬웠다. 길이 바둑판 모양으로 생겼고, 바둑판 모양 길을 따라 집이 붙어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전국체전이나 국가 규모 행사를 할 때 시민과 학생들이 길에 줄지어 선 것처럼 집 배치가 질서정연했다.

이젠 주소만 알면 어디든지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였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루이빌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영어로 된 관광안내책자와 인터넷을 '끙끙'거리며 해독하긴 했지만. 그러다 문득 한 대목에 눈길이 갔다. 'korea'와 'Edward Lee'라는 부분에서였다.

루이빌 여행에 도가 트인 나, 유명식당 찾기에 나서다

▲ 루이빌은 바둑판 모양 도시다. 길이나 집을 찾기가 정말 쉽다. ⓒ 김대홍


루이빌에도 한국인 식당이 있구나 생각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루이빌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식당이란 문구에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홈페이지를 찾아서 들어가 봤다. 일주일 가운데 3일(목, 금, 토)만 문을 열었다. 그것도 밤에만. 식단은 매주 바뀌었다. 즉 한 주 전에 먹은 음식을 이후엔 먹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식단은 55달러와 65달러짜리, 단 2개뿐이었다. (2013년 11월 이후 60, 70달러로 가격이 올랐다.)

운영방식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기사검색을 하니 미국에서 꽤 인기 있는 요리대결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Iron Chef)에서 2010년 우승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잘은 몰라도 꽤 대단한 프로그램이라는 게 느껴졌다. ('미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비어드재단상(James Beard Foundation Awards)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남동부 지역 최우수 요리사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요리사였다는 내용도 발견했다.

가격이 만만찮아 요리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알다시피 서비스료는 별도다.) 단지 뉴욕 출신 요리사가 루이빌에 만든 식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루이빌에 온지 10일 째 되는 날을 D-day로 잡았다. 식당을 찾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미로처럼 복잡한 서울 골목을 10년 넘게 누비지 않았던가. 게다가 루이빌이란 도시는 바둑판처럼 단순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610 마그놀리아'라는 식당 이름이 자신감에 불을 붙였다. 식당 이름은 바로 거리 지명이었다. 즉 'west magnolia ave'에 가서 610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뜻이었다.

사거리에서 1분만 둘러보면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미국 동남부(조지아, 켄터키, 사우스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최고 요리사가 있는 식당이니 근사한 간판과 함께 그럴듯한 플래카드가 맞이하리라 판단했다.

어차피 찾을 것, 좀 느긋하게 찾자 싶어 다른 동네를 이리저리 누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west magnolia ave'를 찾았다. 사거리에 도착했으나 플래카드도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이리저리 둘러보려 했으나 동네가 어두웠다. 사람도 없었다. 일단 오늘은 철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간판이 고작... 문화충격을 받다

▲ '610 매그놀리아' 홈페이지.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확인하곤 쉽게 찾을 줄 알았다.(홈페이지 캡처) ⓒ 김대홍


어두워서 거리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에 이튿날 대낮에 'west magnolia ave'를 찾았다. 분명 하루 전 찾은 곳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가게가 없었다. 일반주택밖에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가게가 있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황당했다. 가게 이름과 주소가 같다는 내용을 잘못 해독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당장 집으로 돌아와 다시 홈페이지를 뒤졌다. 잘못 찾은 건 아니었다. 분명 사거리 어딘가에 식당 '610 마그놀리아'가 있어야 했다. 홀린 기분이었다.

이틀을 쉬고 14일 다시 길을 나섰다. 그 날도 실패. 15일 길을 나섰지만 그 날도 실패였다. '혹시 이사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루이빌이란 도시가 혹시 다른 데 또 있는 건 아닐까''이동식 식당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 식당 '610 매그놀리아'. 주변 집들도 모두 이렇게 생겼다. ⓒ 김대홍


▲ 식당 '610 매그놀리아' 근처에 바짝 붙은 뒤, 몸을 낮춰서 보면 흰 페인트 흔적이 보인다. 그게 바로 간판이자 주소다. ⓒ 김대홍

그 식당을 찾은 건 탐방 5일째가 돼서였다. 식당을 찾은 뒤에도 정말 맞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직 저녁 때가 아니어서 식당 문을 열기 전이었다. 주소, 실내 분위기를 살피다 창문 안으로 조리도구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한 뒤에야 확신했다.

그 식당을 쉽게 못 찾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주변 분위기가 그렇다. 가게들이 모인 곳이 아니었다. 주택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앉아 있었다. 겉모습 또한 주변 주택과 똑같았다. 겉모습으로는 가게인지 주택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는 뜻. 무엇보다 플래카드는커녕 간판조차 없었다. 집 가까이 가서 쪼그려 앉아 봤을 때 벽에 페인트로 희미하게 칠한 상호를 봤다. '610 Magnolia'.

충격이었다. 이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여유라니. 이런 자신감이라니. 가게 겉모습 따위, 간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610 Magnolia' 주인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두 달 동안 루이빌에 머물면서 '610 Magnolia'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간판들이 왜 그렇게 작고 보잘것없는지. 가까이 가지 않으면 100년 된 식당이나 병원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 큰 간판이 '쑥' 나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큰 간판과 경쟁하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큰 간판은 경쟁이라기보단 자기 멋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시골 중소도시나 읍에서도 '시치미 뚝 뗀' 간판구역을 보진 못했다. 맛집으로 유명한 지역 식당에서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어쩌면 그게 우리 문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생명력과 추진력, 절대 뒤처지면 안된다는 조급함과 같은 것들이 요란스런 간판문화를 만들었을 테고, 짧은 시간 내에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런 에너지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는 것을 깎아내릴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제 거기에 여유라는 걸 덧붙이면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행복지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루이빌에 있는 내내 편안했던 건 빠름과 드셈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테고, 그 분위기를 도심 간판들은 제대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610 Magnolia'였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주택가 한가운데 시치미 뚝 떼고 숨바꼭질 하듯이 숨은 유명 가게를 보게 될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틀림없이 대한민국 행복지수가 지금보다는 더 올라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 루이빌 도심에서도 간판 경쟁은 보기 힘들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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