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겉그림박태식의 〈예수〉 ⓒ 들녘
이스라엘 사람들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켜야 했고, 죄를 지은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속죄제를 바쳐야 했죠. 말이 좋아 제사지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랴, 하나님께 바칠 비싼 제물을 사랴, 제기들을 준비하랴, 이만저만 까다로운 게 아니었죠. 그들에게 구원은 결국 돈과 시간과 노력의 문제였죠.
하지만 예수의 구원은 달랐죠. 그의 말씀 따라 회개하고, 그 말씀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고 했죠. 그야말로 쉬웠죠. 경제적인 의미로 따지자면 '공짜 구원'인 셈이죠. 그 때문이었을까요? 예수 주변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몰려들었죠.
그 무렵에 돈 많은 부자청년이 예수께 나아왔죠. 군중심리에 이끌린 그의 모습이었을까요? 그는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께 물었죠. 그러자 예수의 답변은 그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죠.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답변 말이죠.
과연 그 말의 의미가 뭘까요? 진짜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뜻일까요? 물론 불의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그렇게 했죠. 그는 토색한 것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다 나눠줬죠. 그런데 돈 많은 부자청년에겐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죠.
"죽으나 사나 건강만 신경 쓰는 오십 대 남성에게는 '건강 걱정 좀 작작하고 고통받는 이웃 좀 도와라'며 꾸짖는 말일 테고,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에 노심초사하는 사십 대 여성에게는 '네 자식만 자식이냐?'며 나무라는 것이며, 사회가 양극화되든 말든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시종일관 이윤 내기에 바쁜 재벌에겐 '관에 돈 넣어 갈 텐가?'라며 퍼붓는 힐난이다. 부자청년은 세 번째 경우다."(<예수> 77쪽)
박태식의 <예수>에 나오는 해석이죠. 성공회 사제요 영화평론가요,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인 '함께 사는 세상'의 지도신부로 있는 그의 뜻풀이는 진짜로 의미심장하죠. 그는 부자 청년에게 한 예수의 말을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으로 풀어쓰기도 하죠. 그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께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죠.
어떤가요? 그가 바라보는 관점이 독특하지 않나요? 그는 이 책에서 현대인이 알아두어야 할 '인간 예수'를 써 내려가고 있죠. 30년 넘게 예수를 공부한 그 모든 내용들을 쉽게 풀어쓰고 있죠. 말하자면 예수를 앞뒤에 놓고 그 중간 중간에 그 분과 신나게 놀고 있는 셈이죠.
그 중에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도 있죠. 그가 성공회 사제이긴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다른 종교까지도 두루두루 아우르는 것 말이죠. 이를테면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동생들이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관계를 통해 태어난 친동생으로 받아들인데 반해 가톨릭에서는 그들이 예수의 사촌동생이라는데, 그는 절묘한 절충선을 잡고 있죠.
또 있죠. 군중을 끌어 모을 줄 아는 예수라면 분명코 매력 넘치는 사나이였을 거라고 하죠. 더욱이 그가 '랍비' 곧 '선생'으로 불렸다면 그 당시에 혼인을 한 사나이였을 거라고 추정도 한다죠. 그래서 다들 예수가 혼인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13세 이상이 되면 모두 결혼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그 부분에 대해서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그는 여태껏 성경을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하죠. 이른바 예수님 스스로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스스로 독신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하죠. 공생애 3년 동안 가정을 내 팽개치고 재야의 인물로 살아가기에는 결코 가정을 둔 아버지로서는 불가능했다는 뜻이죠.
어떤가요? 그가 바라보는 '인간 예수'에 대해 뭔가 끌리는 게 있지 않나요? 예수를 종교나 사회 지도층 인사로 보는 게 아니라 재야 종교인이자 유량 선교사로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 '공짜 구원'의 설법자로 바라보는 시각도 무척이나 독특하지 않나요? 이참에 박태식 사제의 '인간 예수'에 푹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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