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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바위 딸의 '꽃바람 1호' 공표 후 탄압... 탄압

[강기희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 ⑩] 가자, 먹바위 궁으로! (1)

등록|2014.01.13 09:39 수정|2014.01.14 09:09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자유를달라 ⓒ 이난영


먹바위 딸의 이어지는 탄압... 탄압

피스 숲통령 먹바위 딸이 공표한'꽃바람 1호'의 위력은 대단했다. '꽃바람 1호'가 공표되자 숲은 여름임에도 폭설이 내려앉은 겨울 강처럼 적막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매미는 노래하지 않았고, 새들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울지 못하니 살아가는 게 시들했고, 날지 못하니 살아있는 게 고역이었다. 짧은 여름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밤새 울다가 잡혀간 이들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 저녁이 되면 낮 동안에 잡혀간 이들에 대한 사연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녔다.

울다가 잡혀간 이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아침에 들려온 이야기로는, 길에서 만난 이웃에게 궂긴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가 그 자리에서 우는 바람에 현장에서 잡혀갔다는 사연이 있는가 하면,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울음이라도 터트릴까 싶어 어미가 급히 입을 막았다가 결국 아이를 잃었다는 이야기가 돌더니, 아이를 잃고 통곡하던 그 어미까지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곧이어 후편 격으로 따라 붙었으며, 물이 뒤채면서 내는 소리를 우는 소리라 여겨 출동한 숲얼단이 밤새 물 위로 따발총을 갈겼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와 숲민들을 경악케 했다.

낮 동안 돌던 사연은 저녁이 되면 다른 이야기로 바뀌었다. 발정기에 들어간 몇몇 젊은이가 교미하다가 저도 모르게 나온 신음이 울음인양 오해를 받아 교미 중에 잡혀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지는가 하면, 이소를 준비하던 새홀리기 가족이 신호음을 보내다 한꺼번에 잡혀갔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꽃바람 1호'가 공표된 후 숲엔 숲경찰과 숲얼단 단원이 거미줄 대형을 지어 촘촘하게 깔렸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현장을 급습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하는 일 또한 저항으로 여겨 닥치는 대로 끌고 나왔고 살려 달라며 애원이라도 하면 더 심하게 다루었다. 잡혀가는 가족을 막아서며 항의하는 것도 우는 범주에 들었고 하품을 하다 눈가에 고인 눈물도 운 것으로 간주했다.

먼지 들어간 눈을 비비거나 눈곱을 떼기 위해 눈을 비비는 행위조차 눈물을 감추는 것이라 하여 잡혀갔다. 심지어 죽은 가족의 장례를 지내면서 곡소리를 내는 가족을 또 죽이기도 했다. 두려울 게 없는 자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자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죽이며 죽어갔다. 

먹바위 딸이 자행하고 있는 엄청난 폭압 앞에 숲민은 무기력했다. 먹바위 딸 하야와 숲얼단 해체를 요구하던 목소리는 실종자와 함께 실종되었고, 실종자 가족이 또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는 금기에 해당 되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으니 부정선거를 입에 담는 일은 반역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날이 밝자 숲얼단 소속의 박쥐는 낮 근무자인 까치와 근무 교대를 했다. 숲 하늘을 올려다보던 까치가 박쥐에게 물었다.

"피곤해 보이는구먼."
"음, 여기저기… 많이 바빴지."

박쥐가 고개를 젖히며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이런저런 소문을 내고 있는 자와 먹이를 두고 다투는 자들을 덮친 것이야 정상적인 임무라고 해도 아이를 낳고 있는 임산부를 꽃바람 1호 위반이라고 적발한 것은 박쥐가 생각해도 심한 일이었다.

'허나 모른 척 넘어가도 될 일도 있었지…….'

박쥐는 이어 나오려는 말을 눌러 삼켰다.

"아휴, 날씨 보니 오늘도 무지하게 덥겠구먼!"

까치가 깃털을 고르기 위해 날개를 몇 차례 푸드덕거렸다.  

"저녁에 봄세."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까치의 날갯짓은 힘찼다. 창공을 항해 날지 못하는 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일이기도 했다. 까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쥐는 한숨을 토해내곤 나무 등걸에 머리를 박았다.

안개, 숲을 장악하다

'꽃바람 1호' 공표 이후 며칠째 이어지는 비상근무라 박쥐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간밤엔 급히 날다 탱자나무 가시에 날개 한쪽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길고 지루하고 격한 밤이었다. 박쥐는 눈을 감고 지난 몇 해를 돌이켰다. 박지산 암릉 틈에서 태어난 박쥐가 숲얼단 단원이 된 것은 오 년 전이었다.

가족들은 출세했다며 잔치까지 벌였지만, 그간 자신이 한 일이라곤 주변을 염탐하거나 사건을 조작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잡혀간 이들만 해도 수십이나 되었다. 조직과 피스의 안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 하지만 더러는 해서는 안 될 일도 있었다.

화창하던 하늘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때아닌 안개가 밀려왔다. 안개는 낮게 깔리며 천천히 소리 없이 숲 전체로 퍼져나갔나. 아름드리 나무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숲경찰과 숲얼단의 모습이 차례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안개를 구경나온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숲감옥이 사라지고 광장과 먹바위 궁까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숲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두려웠고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으니 자유로웠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아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숲이 안개에 휩싸이자 놀란 먹바위 딸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 했다. 밖으로 나갔던 비서가 돌아와서는 멀리 태풍이 지나가면서 안개가 밀려온 것 같다고 보고했다.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한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크게 다쳤는지 울음소리가 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숲을 흔들며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안개보다 빠른 속도로 퍼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숲민들은 저 아이도 곧 잡혀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는소리가 끊어지는 순간이 아이가 잡혀가는 순간 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숲민들은 오랜만에 듣는 울음소리가 시원하고 반가웠고 혹은 두려웠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숲민들은 문득 아이의 입이 언제 틀어 막힐지 궁금했다. 그것은 숲얼단이나 숲경찰이 달려오는 속도와 같을 것이니 후일을 위해서라도 기록해둘만 했다.

숲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 둘 세엣 네엣 하며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숫자가 열을 넘기고 스물이 넘어가도 아이의 울음소리는 멈춰지지 않았다. 숲민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어, 이상하네. 숲경찰과 숲얼단이 어디로 갔나?" 하거나 "허, 이거 울어도 되는 건가?" 하며 의아해 했다.

숫자 서른이 넘어가자 숲민들은 자신들도 작은 소리로 울어보았다. 숲경찰이 가까이에 있을 것인데도 달려오지 않았다. 숲민들은 용기를 내어 조금 더 큰 소리로 울어보았다. 이번에도 숲경찰은 달려오지 않았다.

안개가 있는 한 우리는 자유입니다!

숲경찰도 숲얼단도 안개 속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숲민들이 하나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숲이 술렁거리자 울음을 참지 못한 수컷매미가 안개 속으로 비상하며 소리쳤다.

"안개가 있는 한 우리는 먹바위 딸의 독재와 압제로부터 자유입니다!"

수컷매미가 숲을 향해 소리 내어 울었다.

"맴맴 맴맴…… 맴!"

매미의 울음소리는 숨죽인 숲을 흔들며 지나갔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숲민들을 깨우는 강하고 힘찬 소리였다. 암컷매미들이 본능에 따라 수컷매미를 향해 날았다. 몰려드는 암컷을 바라보며 수컷매미는 더욱 우렁차게 울었다.

꽃바람 1호가 공표되면서 수컷매미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가 싶었다. 남은 생이 사흘 남짓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며칠간은 분하고 억울하여 잠도 오지 않았다. 수컷매미는 애벌레로 땅속에서 보낸 세월만 십 년이었다. 애벌레 시절 수컷매미는 반드시 성충이 되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했다.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는 과정은 길고도 긴 고난의 과정이었다. 험난한 시간을 통과하여 이윽고 오랜 꿈이 이루어졌을 때 매미는 숲이 떠나갈 정도로 힘차고 아름답게 울었다. '꽃바람 1호'가 공표되기 전이었고, 날수로는 엿새 전의 일이었다.

수컷매미가 울음을 터트리자 주변의 매미들이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엔 숲에 서식하고 있던 모든 매미가 일제히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매미 울음소리가 숲 전체로 퍼지자 새들이 날개를 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숲을 울리자 숲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꽃들은 안개 속에서 꽃잎을 열었고 나비와 벌은 기다렸다는 듯 꽃을 향해 날았다. 수컷들은 짝을 부르기 위해 목청을 높였고 암컷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소리를 따라가 몸을 열었다.

수컷매미도 짝을 만나 뜨겁고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신부는 어여쁘고 아름다웠으며 몸가짐이 발랐다. 수컷매미를 받아들일 때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깊은숨을 토해냈다. 수컷매미가 암컷매미와 완전한 결합을 이루었을 때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생애 단 한번뿐인 매미의 사랑은 그렇게 깊어 갔고 숲은 출렁거렸다. 시간이 흘러 절정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수컷매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하늘이시여, 안개를 보내주시어 감사합니다!"

사랑을 완성한 수컷매미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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