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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고추 만드는 비법, 방아다리에 있다

[사연이 있는 농사 10] 고추이야기

등록|2014.01.13 16:42 수정|2014.01.13 16:42
농사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작물에는 '고추'가 있다. 2월 중순께 씨앗발아부터 모종으로 키워내는 기간만 석달 가까이 된다. 그야말로 갓난아기 돌보듯이 정성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고추. 이 고추의 고향은 열대지방이다. 그런 탓에 고추들은 추위에 매우 약하고 고온다습한 장마철에는 각종 병원균과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의 각오로 한바탕 전쟁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강원도 횡성에서 20년 넘게 유기농사를 짓고 있는 명호형은 해마다 2000평에 고추농사를 짓는다. 그에게 고추농사의 비법을 물었을 때 씨앗을 발아해 모종을 키워내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저항성을 갖도록 미생물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다음 밭으로 옮겨 심은 뒤, 줄기가 나눠지고 방아다리가 생기는 때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축적해두면 장마철에 병충해를 이길 수 있다는 그의 경험은 지금껏 내가 따르고 있는 고추농사법이기도 하다.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와 곁순은 반드시 제거해야

▲ 역병에 걸려 수확을 못하게 된 고추밭. 방아다리 아래의 잎들이 모두 제거되어 있다. ⓒ 오창균


겨울이 오기전에 근처 산에서 긁어온 부엽토를 고추가 심어질 밭흙과 직접 발효시킨 잘 부숙된 퇴비와 섞어서 만든 상토(모종을 키우는 흙)로 모종을 키우면 유용한 미생물이 증식되어 병원균에 강한 면역력이 생긴다는 경험담을 들었던 때가 5년 전이다.

"어이 동생, 고추농사 좀 도와주러 올 수 있는가. 여럿이 왔으면 좋겠는데…."

지난해 6월 초, 그의 전화를 받고, 주변친구들을 모아서 일손을 도우러 횡성으로 갔다. 급한 집안일 때문에 고추농사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일주일 가량 고향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일을 도와줄만한 사람들은 소나무재선충을 방제하는 일에 한시적으로 고용이 되어서 일손이 더욱 없다는 것이다. 이틀간 우리 일행이 해야 할 일은 고추의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와 곁순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때를 놓치면 고추의 품질과 수확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미룰수가 없다.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와 그 아래 곁순까지 모두 따줘야 고추가 잘 큽니다"
"네, 알아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방아다리 아래쪽의 잎들을 모두 따주면 되는거죠."

후배의 직장동료가 걱정 말라며 아는척 하자, 못 믿어운 듯 명호형이 해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를 딴 후에, 그 아래의 잎들을 손으로 쥔 채로 쭈욱 훓어내렸다. 명호형은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잘못된 정보의) 인터넷이 농사 다 망친다니까. 학교 다닐 때 광합성 안 배웠어요?"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식물에 대한 이해 필요

모든 식물은 초록색 잎에서 탄소동화작용이라고 하는 광합성을 통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 내고 포도당 형태로 뿌리와 줄기에 저장하며 에너지로 사용하여 성장한다. 당연히 잎이 많을수록 광합성으로 많은 양분을 만들어낸다. 장마철을 앞두고 병원균과 한바탕 싸움을 해야 하는 고추에게 광합성은 병원균에 맞서 싸울 탄약과 식량을 비축해둬야 한다.

광합성을 통한 포도당을 저장하지 못하면 긴 장마철을 견디지 못하고 병원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고추잎을 보면 그늘이 생기지 않도록 아래위의 잎이 지그재그로 달린것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광합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 방아다리에 달린 고추(왼쪽)는 초기에 따줘야 한다. 원줄기의 잎 사이에 자라나는 곁순도 제거해준다.(오른쪽 붉은 점) ⓒ 오창균


위로 곧게 자라던 고추가 Y자 형태의 방아다리에서 3~4개 줄기로 분화되는 시기가 몸을 키우는 영양성장과 자손을 보려고 꽃을 피우는 생식성장이 겹치는 때다. 방아다리에 달린 첫 고추는 전체줄기로 공급되어야 할 양분의 통로를 가로막고 양분을 독식하기 때문에 반드시 따줘야만 고추전체의 영양균형이 맞아서 골고루 잘 자란다.

방아다리 아래를 보면 처음 생겨난 원줄기에 붙은 잎들 사이에 새롭게 줄기를 만들어서 자라고 있는 곁순은 후손을 많이 증식하려는 생식본능이다. 방아다리 고추와 마찬가지로 뿌리를 통해서 공급되는 물과 양분을 곁순이 가로채서 전체적인 영양균형과 성장을 방해한다. 때문에 방아다리 아래의 곁순도 제거해줘야 고추가 잘 자란다.

문제는 곁순만 골라서 제거하는 일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귀찮아서 안하거나 본잎까지 한번에 훓어버리는 무지(無知)를 범하는 일들이 실제로 농촌이나 도시텃밭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방아다리 아래에 달린 잎 한 장 한 장이 쓸모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텃밭농사를 알려준다는 책에도 방아다리 아래의 잎들은 무용지물이라거나 병원균의 침투를 막아준다는 명확하지 않고 추측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광합성의 기능을 이해한다면 본 잎을 따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방아다리 아래의 곁순 제거 전(왼쪽)과 제거후의 모습 ⓒ 오창균


고추의 방아다리는 옛날에 소의 힘으로 돌렸던 연자방아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아침부터 해질녁까지 꼬박 이틀에 걸려서 방아다리의 고추와 곁순제거 작업을 마쳤다. 쌀 한가마 분량의 작은 풋고추와 곁순나물은 끼니때 마다 먹어도 좋을만큼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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