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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귀여운 여인'

[서평]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1899)

등록|2014.01.15 11:25 수정|2014.01.15 11:25

체호프 단편선체호프 단편선 ⓒ 문예출판사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던 두 남녀가 연애를 시작하면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가령 그레임 심시언의 <로지 프로젝트>에서는 분 단위로 일정을 계획하고 꼬박꼬박 지키면서 살아가던 돈 틸먼과, 이와는 전혀 반대의 즉흥적이고 통통튀는 로지라는 남녀가 만나는 과정 중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 매우 재밌게 그려지고 있죠.

이렇게 사랑을 하다 보면 자신의 가치관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도 사랑의 힘으로 하나하나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면에 영원할 것만 같던 연인이 떠나면 익숙해진 사랑의 빈자리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어느 새 잊었나봐요 그대가 떠났다는 걸
내가 이래요 철없는 바보야
아직도 전화가 오면 그대일 거란 생각에
나의 목소릴 먼저 가다듬고는 하죠
습관이란 무섭죠 생각처럼 안돼요
이별보다 사랑에 더 익숙하니까 - 이수영의 <라라라> 가사 中

늘 함께였던 애인과의 이별. 늘 있었던 사소한 다툼이라 생각했지만 연인의 마음은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멀리 떠나버리고 이제 정말 끝입니다. 내일 연인과 무슨 맛집에 갈까 블로그들을 검색해보다가 멈칫. 잠들기 전에 습관처럼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르다가 멈칫. 믿을 수 없는 이별 그 자체만으로도 슬프지만, 너무나 익숙해진 연인의 부재. 그리고 연인과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사무치는 고통은 연인과의 이별을 더 아프게 합니다.

이렇게 인간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랑'이라는 요소를 짧은 단편에 녹여낸 러시아의 천재 작가가 있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4번이나 소리내 읽은 대표작

우리나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 <사할린섬>을 통해서 젊은 독자들에게도 더 널리 알려진 안톤 체호프입니다. 오늘 소개할 <귀여운 여인>은 그가 르포르타주 <사할린섬>(1895)을 발표한 이후의 원숙기에 쓰여진 작품입니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작품을 읽고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연거푸 4번 이나 소리내어 읽고 "그 작품은 일품이다. 체호프는 정말 훌륭한 작가야!"라고 감탄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죠.

잡지 <세미야(가족)> 1899년 1월호에 실렸던 <귀여운 여인>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귀여운 여인' 올렌카의 이야기 입니다.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귀여운 여인'

퇴직한 팔등관의 딸 올렌카는 건넌방에 세들어 살던 극장 지배인 쿠우킨의 넋두리를 매일 듣다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쿠우킨과 결혼한 이후 올렌카의 삶의 중심에는 '연극'이 들어섭니다. 모든 대화는 연극과 관련되어 있고, 모든 삶은 연극을 통해서 설명됩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쿠우킨을 잃고 올렌카는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맙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어느날 교회에서 돌아오던 올렌카는 목재상 푸스토발로프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곧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맙니다. 그와 결혼하게 된 올렌카의 삶은 이제는 '목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극장은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일 뿐이죠.

하지만 그러던 그가 심한 감기에 걸려 죽어버리자 올렌카는 또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 그녀는 이따금 만나며 친분을 가지고 있던 군수의관 블라디미르를 사랑하게 됩니다. 블라디미르는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아직 아내와 아들이 있는 남자였지만, 다른 이웃들이 그녀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축관리와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금방 눈치를 채고 말지요.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블라디미르가 속한 연대는 먼곳으로 옮겨가게 되고 올렌카는 혼자가 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의 귀여운 외모도 사라졌을 때, 그는 다시 마을에 이제는 다시 사이가 좋아진 가족과 돌아옵니다. 너무 기쁜 올렌카는 집을 구하는 블라디미르 가족을 자신의 집에 살게 합니다.

이제 올렌카는 블라디미르의 아들 사샤에게 모성을 느낍니다. 올렌카의 삶의 중심에 이번에는 중학교 교과과정과 과제물이 자리잡습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올렌카는 한결 젊어지고 웃음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이제 올렌카는 언제 친어머니가 다시 사샤를 데려갈지 모르는 불안과 함께 그래도 사샤가 지금은 자신 곁에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편이 죽고 나면 곧바로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러시아의 문화가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보다야 더 개방적일순 있겠지만,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올렌카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다른 여자였다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겠지만 올렌카의 경우에는 누구도 악의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작품 中에서

그녀의 사랑이 다른 이들의 비난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삶의 전부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통로입니다. 극장지배인과 사귈 때는 '연극'이, 목재상과 만날 때는 '목재'가, 군수의관과 함께할 때는 '가축'이 그녀의 삶, 그 자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잃게 되면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지요.

"그러나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행은 이미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아무런 자기 의견도 내세울 수 없었을뿐더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중략) 그러나 지금 그녀의 머리속과 가슴속은 자기 집 뜰처럼 공허하였다." - 작품 中에서

작품의 마지막에 그녀의 사랑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의 사랑이 주고받는 사랑이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사랑은 우리 어머니들이 베푸는 자식에 대한 거룩한 사랑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이렇게 체호프는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을 통해 인류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묘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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