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만삭에 혼자 지하철 탔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공모-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조산원 출산을 고집한 까닭

등록|2014.01.21 08:46 수정|2014.01.21 08:46

▲ 2012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산부인과>의 한 장면. ⓒ sbs


"조퇴할 상황이 아니야. 그리고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조산원 가야겠냐? "
"응. 조산원 가서 낳고 싶어."
"그냥 동네 산부인과 가. 남들 다 산부인과 가서 잘 낳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빠 조산원에 함께 못 가겠다고 했다. 결국 나 홀로 성남 친정집을 나섰다. 둘째를 임신한 나는 막달이었다. 게다가 가야 할 조산원은 부천에 있었다. 전화로 길을 물으니 송내역에서 내려 버스로 또 갈아타야 한단다. 2시간은 걸릴 길이다.

13년 전의 일이다. 계절은 8월 한여름으로 한창 더웠다. 출발한 시간은 오후 4시. 교대역에서 신도림행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탔다. 한참을 가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저씨가 자꾸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줄어들자 아저씨는 비틀거리며 문 앞에 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술 취한 사람이 가까이 오니 솔직히 무서웠다.

"지금 어디 가요? 위험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집에 가요. 내 동생도 지금 임신을 했어요. 동생 생각이 나서 그래요. 걱정돼서."

횡설수설 혀 꼬부라진 목소리의 아저씨는 자기 몸도 못 가누면서도 내 걱정이 엄청나게 되었나 보다. 내가 얼마나 딱하게 보였을까? 배는 남산만 한 사람이 복더위에 혼자서 퇴근길 2호선을 탔으니 아마 직장 다녀오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순산하세요" 하고 인사말을 남기고 내렸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이번에는 꼭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다짐했다. 첫째의 산부인과 출산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첫째 임신 때는 예정일이 많이 지났는데 출산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유도분만을 하러 날을 잡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한 날 오전에 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그러나 분만 진행 속도가 다른 산모에 비해 느렸다. 나보다 늦게 분만 대기실에 들어온 산모가 나보다 먼저 아기 낳으러 분만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했다. 분만실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대기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 4시가 돼서야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자궁 문이 충분히 열린 상태는 아니었다.

"올라가" 의사의 한마디에 간호사가 내 배 위로...

"올라가" 하는 의사의 한마디에 옆에 서 있던 묵직한(?) 간호사가 내 배 위에 무릎을 꿇고 올라앉았다. 순간 나는 너무 당황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하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왔다. 비명만 나올 뿐. 내 눈에 똑똑히 보이는 광경이 거짓 같았다. 내 배 위에 왜 올라갔는지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고 사전에 한마디 언질도 없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도 아기가 나올 기색이 없자 간호사가 내 배 위에 올라가 아기를 내리누르고, 의사가 내 회음(음부와 항문 사이)을 절개해서 간신히 아기를 꺼냈다.

그리고 난 기절을 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의사 둘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회음을 꿰매고 있었다.

"어떻게 꿰매는 거라고?"
"이렇게."
"어떻게? 안쪽에서? 내가 한 번 해볼게."

"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냐? 잘하는 놈이 해야지. 왜 못하면서 하겠다는 거야!" 하고 속으로는 수십 번 말했다. 차마 내뱉지 못했지만…. 의사 둘은 대화를 이어갔다.

"마취과 의사 한 명만 영입하면 딱 좋은데."
"그렇지 그럼 우리 산부인과가 완벽하지."

사실 내가 이 병원을 선택한 것은 '제왕절개를 쉽게 하지 않는 병원'이라는 지인의 극찬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왕절개를 안 했던 이유가 마취과 의사가 상근으로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출산 중 피를 많이 흘린 나는 언제 위험해질지 몰라 입원실로 올라가지 못했다. 분만대기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남편도 출산 중에 내 얼굴은 잘 보지도 못하고 '기절했다', '수혈한다' 하는 소식을 분만실 밖에서 들으며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 의사는 나를 보고 "일 년에 한두 명씩 고생시키는 환자 중 한 명이에요"라고 했다. 난산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런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그 뒤로 나는 그 산부인과 앞으로 지나다니지 않고 먼 길을 돌아 다녔다.

'이제 와서 산부인과에 가라니...' 오기가 발동했다

▲ 2008년 9월 4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제9회 엄마젖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 ⓒ 연합뉴스

그 뒤, 부인과 검사를 하러 지인이 소개해준 다른 산부인과에 가게 되었다. 첫째 출산 이야기를 들은 의사선생님은 "아기가 나올 때가 안 됐는데 억지로 빼냈네. 임신주기가 사람마다 다 달라요. 다음엔 주기를 길게 잡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둘째를 임신했다. 기절하고 수혈까지 하며 첫째를 출산한 나는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유행했던 <황금빛 똥을 누는 아이>라는 책에 조산원 출산이 소개되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살던 나는 수도권 지역의 조산원을 찾았다.

서울에 딱 하나 남았다는 동대문구의 한 조산원을 찾아갔다. 산전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조산사 선생님이 내 출산 예정일 즈음 지방으로 상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혹시 그때 출산을 하게 되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 했다.

그래서 부천에 있는 다른 조산원에 전화했다. 출산 예정일이 한 달 정도 남은 시기였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곳에 와서 출산 전에 진찰을 받아야만 아기를 받아준다고 했다.

출산 예정일이 얼마 안 남아서 성남 친정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성남에서 부천까지 혼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남편은 회사 일이 많아서 시간이 안 된다면서 그냥 가까운 산부인과에 가라고 했다. 섭섭했다. 순산하고 싶은 마음에 <황금빛 똥을 누는 아이> 책에 나오는 대로 풍욕도 열심히 하고 '합장합척'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이제 와서 산부인과에 가라니…. 오기가 발동했다. 남편 보란듯이 조산원에 혼자 가리라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조산원은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전에 도착해야 했다. 2호선에서 술 취한 아저씨의 응원까지 받으면서 6시 45분에 조산원에 들어갔다. 조산원엔 젖병이 없고 산모들은 모두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 그러면 젖이 부족한 엄마는 어떻게 해요?"
"그런 경우는 없어요. 물리면 다 나와요."

반신반의했다. 첫째 때 젖이 부족해 혼합수유를 했다. 그마저도 4개월 땐 젖이 말랐다. 이번에는 젖이 잘 나올지 걱정스러웠다.

"우리 남편 좀 불러주실래요? 아까부터 안 보여서요"

▲ 셋째가 젖 먹고 잠들어 있는 모습. 젖 먹느라 땀을 흘려서 앞머리가 젖어 있다. ⓒ 강정민


둘째도 출산 예정일을 몇 주 넘기고서야 진통이 왔다. 진통 간격을 시계를 보면서 체크했다. 빨라지고 있었다. 늦게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부천 조산원에 도착했다. 조산원에서는 진통을 하며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할 수 있어 자유로웠다. 남편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호흡을 함께해 줬다.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아기가 나왔다. 아기는 울지 않았다. 남편이 물었다.

"아기가 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안 때렸으니까 울지 않죠."

젖을 물렸다. 아기 머리카락이 새까맸다. 진통을 함께 이겨내고 산도를 통과해 나온 아기가 고맙고 기특했다. 내 힘으로 아기를 낳았다는 게 뿌듯했다. 드디어 훈장 하나를 단 것 같았다. 출산 뒷정리가 되고 아기가 내 옆에 누워 잠들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은 뒤로 남편이 안 보였다. 어디에 있는지 찾으러 다닐 수도 없고 답답했다. 결국 간호사에게 물었다.

"우리 남편 좀 불러주실래요? 아까부터 안 보여서요."
"네, 찾아볼게요."

한참이 지나 나타난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남편분, 교육관에서 주무시고 계시던데요. 피곤하신가 봐요. 깨워드릴까요?"

며칠 동안 거래처 접대로 늦게 들어와서 잠이 부족했던 남편은 아무도 없는 교육관에 들어가서 자고 있었던 거다. 기가 막혔다. 아내가 고생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어디 불편한 곳 없나 살필 생각은 않고 혼자 잠만 퍼질러 자고 있다니….

그렇게 조산원에서 둘째를 낳았고 셋째도 조산원에서 잘 낳았다. 둘째, 셋째 모두 모유수유를 하고 완모(완전 모유수유)도 할 수 있었다. 한여름 복더위에 홀로 조산원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순산이며 완모며 모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