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슬픈 이야기 잊기에 5년은 너무 짧습니다"
[현장] 남일당터에서 용산참사 5주기 추모 예배 열려
▲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터에서 열린 '용산참가 5주기 추모예배'에서 고인들에게 헌화한 국화 뒤로 참가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양태훈
산 자는 자책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살인자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미친 사회'를 막아내지 못했다고 탓했다. 산 자는 하늘을 향해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헌화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쫓아내고 공권력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여 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살육에 가까운 당신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님들 앞에 선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예배 인도를 맡은 조은화 향린교회 목사는 "서로를 짓밟아 공동체가 파괴된 괴물같은 바벨탑에 살고 있다"며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고 말했다. 조 목사 앞에는 국화 십여 송이가 놓였다. 오른쪽에는 나무로 된 십자가가 서 있었다.
참사 5년 남일당 터에서 열린 촛불 예배
▲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터에서 열린 '용산참가 5주기 추모예배'에서 참가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양태훈
'용산참사' 5주기를 4일 앞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남일당 터에서 촛불예배가 열렸다. 그 사이 남일당 건물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2m 높이의 펜스에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고 적힌 벽보가 붙어 있었다. 펜스 사이의 홈에는 누군가 놓고 간 국화가 꽂혀 있었다.
'용산참사'는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과 대치하던 중 발생한 화재로 세입자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 사고에 경찰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고 철거민 20명과 용역업체 직원 7명 등 27명이 기소됐다.
이날 추모예배는 향린교회, 생명평화교회. 새맘교회 등 교회 연합체인 촛불교회가 주관했다. 예배에는 50여 신도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고 이상림씨의 유족인 전재숙씨와 이충연씨, 고 양회성씨의 유족인 김영덕씨, 용산참사로 구속됐던 김재호, 천주석씨가 함께 했다.
예배를 시작하며 유호명(53) 향린교회 집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유 집사는 "여러분 우리 저 하늘을 향해 촛불 흔들어 보자"며 "하늘에 계신 고인들이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구름타고 다가온다"고 말했다. 신도들은 "반갑습니다"하고 환호했다.
추모 예배에 꽹과리·북·장구·징이 울렸다. 향린교회 국악 공연팀 '얼쑤'가 진혼곡을 기독교 형식으로 각색했다. '얼쑤'가 선창하면 신도들이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
"당신 사랑 베푸소서, 할렐루야 아멘, 사자무리 발톱에서, 할렐루야 아멘
나의 목숨 노리는자, 할렐루야 아멘, 도망치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5년 전에 가신분 들, 할렐루야 아멘, 편안하게 영면하소서. 할렐루야 아멘"
얼쑤의 고석배(49)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예수님도 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땅에서 배척됐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날까지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당신들의 삶은 작은 예수가 아니었나"
▲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터에서 열린 '용산참가 5주기 추모예배'에서 유가족 전제숙 씨가 촛불을 들고 있다. ⓒ 양태훈
예배는 이재길 촛불교회 집행위원(가재울 녹색교회 평신도)의 기도로 이어졌다. 그는 준비해온 기도문을 읽었다. 5년이란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19살 소년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갔다 와 어느덧 어엿한 청년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5년은 소년이 청년으로 변모하고, 처녀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며, 백골이 흙으로 다시 녹아 사라질 만큼 긴 세월이지만, 용산의 슬픈이야기를 잊기에 그 세월은 너무나 짧습니다.
잘못된 공권력에 대항해야만 하는 오늘의 사람으로서, 앞서간 당신들을 기억하고 5년이 지나 당신들을 다시 기억합니다. 어떻게 이 삶을 살아 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당신들의 삶이 작은 예수가 아니었나는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이어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전씨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아직 5년 전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1월 20일 차가운 날씨, 물대포를 쏘던 그날 속에 내 마음이 머물러 있다"며 "장사하던 자리는 풀이 무성하다 못해 나무가 자랐다, 이 나라의 공권력이 무엇이 급했고 답답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전씨는 '용산참사' 당시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임기 내에는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했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이 나라에 인재가 없어서 살인 학살을 지시한 김석기를 사장으로 내세웠냐"고 따져 물었다.
한 신도의 분노 "이렇게 둘 거면 왜 죽였냐"
▲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일당터에서 열린 '용산참가 5주기 추모예배'에서 참가자가 기도를 하고 있다. ⓒ 양태훈
출퇴근할 때마다 용산참사 현장을 지났다던 이명희(51)씨는 "(작년과 달리) 올해는 사람도 적고 삭막해졌다"며 "세월이 갈수록 용산참사가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이 땅을 이렇게 둘 거면 왜 그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해 사람을 죽였냐"며 분노했다.
추모예배는 헌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신도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흰 국화를 손에 들었다. 주차장으로 걸어나온 그들은 펜스에 국화를 테이프로 붙였다. 한 여성은 고개 숙여 잠시 기도했다.
한편,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오는 18일 오후 2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추모대회를 열고 서울역광장으로 행진한 뒤 오후 4시부터 투쟁대회를 열 예정이다. 5주기가 되는 20일에는 희생자들이 묻힌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추모제가 진행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