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 '겨울왕국'에 강한 의지를 담다
[영화리뷰]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 새롭게 해석한 공주 영화
▲ 영화 <겨울왕국>의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디즈니 스튜디오는 193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선보인 이래 2012년에 개봉한 <주먹왕 랄프>까지 5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그들의 긴 역사엔 <피노키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 팬>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 등의 우리에게 친숙한 명작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그리고 <겨울왕국>은 디즈니가 야심 차게 내놓은 5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겨울왕국>은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러나 <겨울왕국>은 <눈의 여왕>과 크게 다르다. 얼음궁전으로 가버린 카이를 되찾으러 가는 겔다의 여정을 담았던 <눈의 여왕>에서 몇 가지 설정만 빌린 정도다.
카이와 겔다의 이야기였던 <눈의 여왕>에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언니 엘사와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 안나의 이야기로 새롭게 탈바꿈한 <겨울왕국>은 '눈의 여왕'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그녀에게도 사랑이 있었다면 다른 존재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엘사의 힘 때문에 동생 안나가 다친다. 점차 강해지는 엘사의 힘에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봐 두려웠던 부모는 그녀를 방에 숨긴다.
<겨울왕국>은 변해버린 차가운 마음을 얼음과 날씨로 보여준 <눈의 여왕>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문과 벽의 이미지를 추가한다. 방에 유폐된 엘사에게 안나는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을 노래하며 "안에 있는 거 알아. 들여보내 줘"라고 말을 건넨다. 누군가 다칠까 두려웠던 엘사는 문을 열지 않는다. 두 자매는 벽을 사이에 둔 채 서로 바라볼 뿐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가둔 채 살았던 엘사는 성년에 이르러 여왕 즉위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다. 처음 나가는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로 한껏 표현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엘사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녀를 괴물로 여기고 두려워한다. 엘사는 안나와 왕국을 등지고 자신만의 얼음 궁전으로 자취를 감춘다.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했던 엘사는 얼음 궁전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며 'Let It Go'를 부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자유라고 외치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엘사가 떠나면서 모든 것이 얼어버린 왕국에서 언니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 안나는 산에서 지내던 크리스토프와 순록 스벤, 눈사람 올라프의 도움을 받아 얼음 궁전을 찾아 나선다.
▲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겨울왕국>은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답게 화려한 CG로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엘사가 얼음 궁전을 짓는 장면에서 보여준 CG 기술은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다양한 색감과 구성력으로 만들어진 배경과 인물은 최첨단 CG 기술의 현주소를 확실히 알려준다.
토니상, 그래미상, 에미상 등을 수상한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와 로버트 로페즈 부부가 작곡한 8곡의 노래도 영화와 잘 어우러지며 뮤지컬 영화로서의 매력을 가득 발산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에서 엘피바로 열연했던 이디나 멘젤은 <겨울왕국>에서 엘사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이디나 멘젤이 부른 'Let It Go'는 <겨울왕국>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하다. 얼음 궁전을 만드는 장관을 CG로 구현하고, 배경으로 흐르는 노래에 감정이 충만한 이 순간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대단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그동안 낳은 명곡인 <라이언 킹>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미녀와 야수>의 'Beauty And The Beast',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뮬란>의 'Reflection' 등에 이어 <겨울왕국>의 'Let It Go'도 불후의 명곡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겨울왕국>의 연출을 맡은 제니퍼 리 감독은 "그동안 디즈니 작품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그려왔지만, 그 어떤 조건에서도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이 <눈의 여왕>에서 강조했던 주제인 '이 세상에서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다'를 적극 반영하면서,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남녀의 사랑이 아닌 자매(가족)의 사랑에서 찾는 새로움을 시도한다. 가족 안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시각은 신선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스토리텔링의 발전을 거듭하는 여타 CG 애니메이션들의 행보와 비교하면 <겨울왕국>에서는 과거의 색채가 물씬 풍긴다. 소재와 이야기의 차원을 다른 경지로 끌어올렸던 픽사의 <토이스토리> 시리즈나 <업>, 포스트모더니즘을 훌륭히 보여주었던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 등에 비해 <겨울왕국>은 지나치게 '동화적'인 구성을 의식한다. 선악 구도는 단순하고, 권선징악은 뚜렷하다. 악당 캐릭터에게서 느껴지는 입체감 역시 부족하다.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마무리도 아쉽다.
▲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픽사와의 합병을 통해 새로운 동력원을 얻은 디즈니는 현재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공주와 개구리>에서 셀 애니메이션이 더는 생명력이 없음을 절감한 디즈니는 현재 CG 애니메이션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볼트> <라푼젤> <주먹왕 랄프>는 CG 애니메이션 시대를 맞이한 디즈니의 도전이다. <라푼젤>이 <겨울왕국>처럼 고전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현대적으로 바꾼 결과였다면, <볼트>와 <주먹왕 랄프>는 다른 회사의 작품과 유사성이 짙다.
이런 두 갈래 방향에 대한 디즈니의 고민은 흥미롭게도 <겨울왕국>의 시작 전에 상영한 단편 영화 <말을 잡아라!>에서도 감지된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첫 애니메이션 단편인 '미키마우스' 시리즈에 존경을 표하는 <말을 잡아라!>는 흑백과 컬러, 셀과 CG, 2D와 3D를 자유로이 오가는 구성을 취한다. 그 속에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변신했던 디즈니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담겨 있다.
<말을 잡아라!>가 끝나고 시작하는 <겨울왕국>은 디즈니가 <라푼젤> <주먹왕 랄프>에 이어 CG 애니메이션 시대에서도 셀 애니메이션에서 가졌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동시에 이야기에선 디즈니 스튜디오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고민도 엿보인다. 픽사와 마블, 스타워즈까지 거머쥔 디즈니가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들면서 왕국을 이끌 것인가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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