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 찾은 중국인 씀씀이 확 줄었다"
[르포] 유명 화장품 매장 집결했지만... 경쟁력엔 물음표
서울 서대문구의 '이대역-이대정문-신촌(기차)역'으로 이어지는 500여 미터에 이르는 'ㄱ'자형 거리. 이 거리를 자주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몇 년 새 이대 상가들의 모습은 크게 변했다. 이대앞 거리는 옷가게와 미용실, 귀금속 상점, 그리고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몇 년 새 화장품 가게가 크게 늘어났다. 두세 집 건너 한집 꼴로 화장품 가게가 들어 서 있다.
직접 세어 봤다. 이대역부터 이대정문을 지나 신촌 기차역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전체 118개 매장 가운데 28개가 화장품 매장으로 전체에서 23.7%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많은 업종은 옷가게였다. 전부 21곳으로 그 비율은 17.7%였다. 친숙한 브랜드부터 처음 보는 브랜드까지 약 스무 개의 브랜드가 있었다. 왜 이렇게 화장품 가게가 많은 것일까?
이대거리에서 20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필성(가명, 57)씨는 "(이대앞 거리의) 옷가게만 하더라도 일본 스타일의 옷이 많아 마니아 층이 자주 찼던 곳이었다. 그 밖에도 유명 브랜드들이 많던 곳이어서 사람들이 주로 옷을 사러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특색 있던 옷가게들이 홍대와 동대문으로 빠졌고, 슬슬 이대 앞 상권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신촌지역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한 이후부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관광특구 지정으로 신촌지역 대학가를 관광 코스로 개발했다․ 연세대 주변은 각종 문화관광, 이화여대 주변은 의류·쇼핑 공간으로 특화 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관광특구 지정 후, 단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가 신촌역 앞 주차장에 세워지기 시작했고, 특히 단체 관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10년 초, 서울시는 서대문구 창천동과 대현동, 마포구 노고산동 일대 약 54만㎡를 관광특구로 지정해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주변 환경 정비와 대학 축제 개최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관광특구 지정은 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광정책과 한기삼 주무관에 따르면, 당시 특구 지정 계획은 있었으나 (이대-신촌 일대가) 특구 지정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광특구 지정에 필요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8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해 온 정수철(가명, 65)씨는 "2000년대 말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대 앞 상권을 상징하던 많은 중·고급 패션 브랜드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후 의류 쇼핑의 메카로써의 입지가 약해져 갔고, 국내 소비자들의 발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국인 방문객이 줄어들자 상권 활성화를 위한 시도로 방문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화장품 매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화장품 매장이 늘어난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인 겨냥한 매장들
이대앞 화장품 매장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들어가는 곳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한 화장품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김소연(28)씨는 중국 교포 출신이다. 그녀에 따르면 여기에서 일하는 5명 모두 중국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또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매니저 이승아(가명, 32)씨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를 '준 외국인 전용 매장'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인만 올 수 있는 곳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진 않지만, 그냥 우리 매장을 그렇게 소개해요. 일반매장과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인을 겨냥해 매장에서 행해지는 프로모션이 달라져요. 제품 진열이나 1+1행사, 2+1행사 비율이 달라지지요."
또 다른 매장 앞에서 판촉행사를 하던 여성 직원들은 한국말로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말하고 연이어 같은 뜻의 말을 중국어로 되풀이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화장품 매장 앞에 놓인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손님을 끄는 멘트가 우리말과 중국어로 번갈아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밖에도 제품에 대한 설명, 매장에서 하고 있는 행사에 대한 홍보 글들을 중국어로 적어 놓은 알림글들이 대부분 매장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명동과 동대문서 자주 보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화장품 매장은 효과를 누리고 있을까?
한 화장품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매출은 10월 이후로 좀 떨어진 추세라고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중국 교포 점원 이기림(가명, 28)씨는 "10월에 중국에 큰 명절(건국절 10월 1일)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년(2013년) 한해를 보면 갈수록 매출이 준 것 같다. 특히 중국 손님들의 씀씀이가 확연히 줄었다. 예전에는 10명 중에 5명 정도가 20원어치씩 구매했다면 지금은 10명 모두 만원 대 손님이다"고 말했다.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 거리. 중국어로 쓰인 안내문과 각종 판촉 행사를 알리는 알림 글이 그득한 이대. 거리를 활보하는 중국인들에게 쇼핑 의사를 물었다.
펑리(여, 직장인, 31)씨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이화여대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가면 시집을 잘 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아마 다들 이렇게 오는 것 같다"면서도 "화장품 쇼핑에 대한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리장(여, 직장인, 26)씨는 친구 세 명과 함께 휴가를 내어 한국 여행을 왔다. 한국 화장품을 많이 쓰느냐는 질문에 "평소에 한국 화장품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몇 개 쓰는 게 있는데, 그거 아니면 한국 화장품을 사지 않는다"라고 했다. 리장씨 일행 4명 가운데 이대에서 화장품 쇼핑 의향이 있는 사람은 2명이었다. 리장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서울에 관광하러 다니는 거리마다 화장품 가게가 너무 많다. 명동이나 동대문에서도 화장품이든 뭐든 충분히 쇼핑 할 수 있다. 또 면세점에서도 원하는 건 뭐든 다 살 수 있다. 굳이 이대에서 살 것 같지는 않다."
리장 씨 외에도 중국인 관광객 8팀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굳이 이대 거리에서 화장품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 그 가운데 그나마 강력하게 구매 의사를 밝혔던, 5일째 한국을 여행 중이라는 엘씨(25)씨. 그녀는 몇 년 전에 겨울 레포츠를 즐기러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 저가 화장품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3번째 방문인 이번 여행에서는 화장품을 구매할 계획이다.
"마스크처럼 저렴한 제품은 10개 단위로 대량 구매할 의사가 있지만, 만원이 넘는 크림은 한 두 개 정도만 살 것이다. 미처 사지 못해서 오늘 이대거리에서 화장품을 살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화장품을 사는 비율은 별로 되지 않는다. 한 화장품 본사 홍보팀 정이선(가명)씨는 "이대에 중국인이 많이 오긴 하지만, 명동과 동대문에 비하면 '중국인 영향력'이 적은 곳이다. 명동과 동대문 매장 같은 경우는 매출의 85%가 중국인들이 채운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매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면 이대의 경우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 매출에서 절반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인 향한 이대거리, 한국인들은 향하고 있을까?
공인중개사 정수철씨는 "이대에 중국인이 많이 오니까 화장품가게들은 어떻게든 자기 간판을 여기에 걸어야 한다. 화장품가게 있는 곳들이 대체적으로 다 임대료가 비싼 곳이다. 특히 A업체가 있는 곳, 그런 데는 정말 비싼 데다. 중국인들이 이대에서 화장품을 많이 사든 사지 않든 화장품 업체에서는 매장 간판을 달아야 한다. 여기서 광고가 되는 거랑 안 되는 거랑 차이가 있을 것"라며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유를 제시했다.
인천공항면세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사는 품목은 화장품이었다.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지출한 총 비용 가운데 35%가 화장품을 사는 데 쓰였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화장품 마케팅은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다지 둘러보지 않는 안쪽 골목에는 빈 가게가 늘고 있었다. 큰길가가 아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예전에는 옷가게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건물 1층의 상가 여러 군데가 비어 있었다.
공인중개사 김필성씨는 "상권 자체가 중국인 대상으로 바뀌어 가니까, 골목에 있던 가게들은 점점 비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이들은 중국인 말고도 10대 여성이었다. 여대 앞이라서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20~30대 여성은 의외로 적었다.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있던 박유진(16)씨에게 왜 이대에 놀러 오는지 물었다.
"10대들 유행에 잘 맞는 옷들이 많은 것 같다. 근데 무엇보다 싸다. 쇼핑몰도 있고, 먹을 데도 많고 그래서 오는 것 같다."
'중국인은 많은데, 20~30대 여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되물음에 "여기서 파는 옷이 내 생각엔 20대나 30대 용은 아닌 것 같다. 20~30대는 동대문 같은 곳을 갈 것 같다"고 답했다.
한때 이대 거리를 자주 찾았다는 최지련(29) 씨는 "이대에는 색깔 있는 매장이 많았다. 저는 외국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데, 이대에선 주로 태국 스타일과 인도 스타일 옷을 샀다. 이대 옷가게 거리가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면서는 이대에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심성은(26)씨는 "학교가 유명해지고, 관광 산업이 발전하는 걸 생각하면,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교 건물 안에 들어오거나, 도서관 열람실 들어와서 사진 찍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단 학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교 차원에서 투어 프로그램 같은 거 하면 좋을 텐데, 지금은 너무 질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앞 거리가 최근 몇 년 새에 변했는데 불편은 없는지 묻자, 심성은씨는 "화장품 매장이 많아지고 다른 가게들은 사라졌다. 다행이 학교 앞에서 자주 애용하는 곳 가운데 사라진 곳은 아직 없어서 큰 불편은 없다"고 말했다.
▲ 이대거리의 화장품 가게들 이대역부터 이대정문을 지나 신촌 기차역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전체 118곳의 가게 가운데 28개가 화장품 매장이다 ⓒ 김미현
직접 세어 봤다. 이대역부터 이대정문을 지나 신촌 기차역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전체 118개 매장 가운데 28개가 화장품 매장으로 전체에서 23.7%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많은 업종은 옷가게였다. 전부 21곳으로 그 비율은 17.7%였다. 친숙한 브랜드부터 처음 보는 브랜드까지 약 스무 개의 브랜드가 있었다. 왜 이렇게 화장품 가게가 많은 것일까?
이대거리에서 20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필성(가명, 57)씨는 "(이대앞 거리의) 옷가게만 하더라도 일본 스타일의 옷이 많아 마니아 층이 자주 찼던 곳이었다. 그 밖에도 유명 브랜드들이 많던 곳이어서 사람들이 주로 옷을 사러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특색 있던 옷가게들이 홍대와 동대문으로 빠졌고, 슬슬 이대 앞 상권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신촌지역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한 이후부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관광특구 지정으로 신촌지역 대학가를 관광 코스로 개발했다․ 연세대 주변은 각종 문화관광, 이화여대 주변은 의류·쇼핑 공간으로 특화 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관광특구 지정 후, 단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가 신촌역 앞 주차장에 세워지기 시작했고, 특히 단체 관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10년 초, 서울시는 서대문구 창천동과 대현동, 마포구 노고산동 일대 약 54만㎡를 관광특구로 지정해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주변 환경 정비와 대학 축제 개최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관광특구 지정은 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광정책과 한기삼 주무관에 따르면, 당시 특구 지정 계획은 있었으나 (이대-신촌 일대가) 특구 지정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광특구 지정에 필요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8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해 온 정수철(가명, 65)씨는 "2000년대 말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대 앞 상권을 상징하던 많은 중·고급 패션 브랜드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후 의류 쇼핑의 메카로써의 입지가 약해져 갔고, 국내 소비자들의 발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내국인 방문객이 줄어들자 상권 활성화를 위한 시도로 방문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화장품 매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화장품 매장이 늘어난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인 겨냥한 매장들
이대앞 화장품 매장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들어가는 곳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한 화장품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김소연(28)씨는 중국 교포 출신이다. 그녀에 따르면 여기에서 일하는 5명 모두 중국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또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매니저 이승아(가명, 32)씨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를 '준 외국인 전용 매장'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인만 올 수 있는 곳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진 않지만, 그냥 우리 매장을 그렇게 소개해요. 일반매장과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인을 겨냥해 매장에서 행해지는 프로모션이 달라져요. 제품 진열이나 1+1행사, 2+1행사 비율이 달라지지요."
▲ 이대거리의 중국어들이대 앞에서 중국어 소리와 중국어 글자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 이홍찬
또 다른 매장 앞에서 판촉행사를 하던 여성 직원들은 한국말로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말하고 연이어 같은 뜻의 말을 중국어로 되풀이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화장품 매장 앞에 놓인 카세트 플레이어에서는 손님을 끄는 멘트가 우리말과 중국어로 번갈아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밖에도 제품에 대한 설명, 매장에서 하고 있는 행사에 대한 홍보 글들을 중국어로 적어 놓은 알림글들이 대부분 매장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명동과 동대문서 자주 보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화장품 매장은 효과를 누리고 있을까?
한 화장품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매출은 10월 이후로 좀 떨어진 추세라고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중국 교포 점원 이기림(가명, 28)씨는 "10월에 중국에 큰 명절(건국절 10월 1일)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년(2013년) 한해를 보면 갈수록 매출이 준 것 같다. 특히 중국 손님들의 씀씀이가 확연히 줄었다. 예전에는 10명 중에 5명 정도가 20원어치씩 구매했다면 지금은 10명 모두 만원 대 손님이다"고 말했다.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 거리. 중국어로 쓰인 안내문과 각종 판촉 행사를 알리는 알림 글이 그득한 이대. 거리를 활보하는 중국인들에게 쇼핑 의사를 물었다.
펑리(여, 직장인, 31)씨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이화여대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가면 시집을 잘 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아마 다들 이렇게 오는 것 같다"면서도 "화장품 쇼핑에 대한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리장(여, 직장인, 26)씨는 친구 세 명과 함께 휴가를 내어 한국 여행을 왔다. 한국 화장품을 많이 쓰느냐는 질문에 "평소에 한국 화장품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몇 개 쓰는 게 있는데, 그거 아니면 한국 화장품을 사지 않는다"라고 했다. 리장씨 일행 4명 가운데 이대에서 화장품 쇼핑 의향이 있는 사람은 2명이었다. 리장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서울에 관광하러 다니는 거리마다 화장품 가게가 너무 많다. 명동이나 동대문에서도 화장품이든 뭐든 충분히 쇼핑 할 수 있다. 또 면세점에서도 원하는 건 뭐든 다 살 수 있다. 굳이 이대에서 살 것 같지는 않다."
리장 씨 외에도 중국인 관광객 8팀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굳이 이대 거리에서 화장품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 그 가운데 그나마 강력하게 구매 의사를 밝혔던, 5일째 한국을 여행 중이라는 엘씨(25)씨. 그녀는 몇 년 전에 겨울 레포츠를 즐기러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 저가 화장품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3번째 방문인 이번 여행에서는 화장품을 구매할 계획이다.
"마스크처럼 저렴한 제품은 10개 단위로 대량 구매할 의사가 있지만, 만원이 넘는 크림은 한 두 개 정도만 살 것이다. 미처 사지 못해서 오늘 이대거리에서 화장품을 살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화장품을 사는 비율은 별로 되지 않는다. 한 화장품 본사 홍보팀 정이선(가명)씨는 "이대에 중국인이 많이 오긴 하지만, 명동과 동대문에 비하면 '중국인 영향력'이 적은 곳이다. 명동과 동대문 매장 같은 경우는 매출의 85%가 중국인들이 채운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매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면 이대의 경우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 매출에서 절반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인 향한 이대거리, 한국인들은 향하고 있을까?
공인중개사 정수철씨는 "이대에 중국인이 많이 오니까 화장품가게들은 어떻게든 자기 간판을 여기에 걸어야 한다. 화장품가게 있는 곳들이 대체적으로 다 임대료가 비싼 곳이다. 특히 A업체가 있는 곳, 그런 데는 정말 비싼 데다. 중국인들이 이대에서 화장품을 많이 사든 사지 않든 화장품 업체에서는 매장 간판을 달아야 한다. 여기서 광고가 되는 거랑 안 되는 거랑 차이가 있을 것"라며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유를 제시했다.
인천공항면세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사는 품목은 화장품이었다.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지출한 총 비용 가운데 35%가 화장품을 사는 데 쓰였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화장품 마케팅은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다지 둘러보지 않는 안쪽 골목에는 빈 가게가 늘고 있었다. 큰길가가 아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예전에는 옷가게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건물 1층의 상가 여러 군데가 비어 있었다.
▲ 주인 잃은 상점들이대 거리 안쪽 골목에 있던 상가들은 주인들을 잃고 있다. 과거에는 옷가게였던 곳이 많다. ⓒ 김민화
공인중개사 김필성씨는 "상권 자체가 중국인 대상으로 바뀌어 가니까, 골목에 있던 가게들은 점점 비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이들은 중국인 말고도 10대 여성이었다. 여대 앞이라서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20~30대 여성은 의외로 적었다.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있던 박유진(16)씨에게 왜 이대에 놀러 오는지 물었다.
"10대들 유행에 잘 맞는 옷들이 많은 것 같다. 근데 무엇보다 싸다. 쇼핑몰도 있고, 먹을 데도 많고 그래서 오는 것 같다."
'중국인은 많은데, 20~30대 여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되물음에 "여기서 파는 옷이 내 생각엔 20대나 30대 용은 아닌 것 같다. 20~30대는 동대문 같은 곳을 갈 것 같다"고 답했다.
한때 이대 거리를 자주 찾았다는 최지련(29) 씨는 "이대에는 색깔 있는 매장이 많았다. 저는 외국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데, 이대에선 주로 태국 스타일과 인도 스타일 옷을 샀다. 이대 옷가게 거리가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면서는 이대에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심성은(26)씨는 "학교가 유명해지고, 관광 산업이 발전하는 걸 생각하면,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학교 건물 안에 들어오거나, 도서관 열람실 들어와서 사진 찍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단 학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교 차원에서 투어 프로그램 같은 거 하면 좋을 텐데, 지금은 너무 질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앞 거리가 최근 몇 년 새에 변했는데 불편은 없는지 묻자, 심성은씨는 "화장품 매장이 많아지고 다른 가게들은 사라졌다. 다행이 학교 앞에서 자주 애용하는 곳 가운데 사라진 곳은 아직 없어서 큰 불편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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