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정도전은 드라마처럼 의인이었을까?

[드라마리뷰] 정도전의 '고려사' 복기...위인만이 남았다

등록|2014.01.20 08:39 수정|2014.01.20 08:39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18일 방영된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 5회는 전국시청률 13%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종전 기록보다 1.4%P 상승한 수치로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이날 방영된 내용은 원과 다시 손을 잡으려는 이인임(박영규 분), 그의 설득에 넘어간 최영(서인석 분), 그리고 그에 반대해 명과 손을 잡아 원을 저지하려는 정도전(조재현 분)과 사대부 세력이 그려졌다. 이인임은 그런 정도전을 제거하려 했고, 이인임보다 강경하게 정도전을 처형시키려는 최영에 맞서 그의 목숨을 구하려는 정몽주(임호 분) 등의 고군분투가 이어졌다. 덕분에 참형에 처할 뻔하던 정도전은 목숨을 구하고 대신 삭탈관직과 유배령으로 개경을 떠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 KBS 1TV <정도전>의 정도전(조재현 분). ⓒ KBS


"소신 무능해 간신배를 몰아내지 못했나이다. 이 죄 달게 받겠나이다.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이는 유배를 떠나야 하는 정도전의 입에서 나온 대사이다. 대사로만 보면 정도전은 천하의 충신이다. 그리고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정도전 말고는 도무지 고려에 제대로 된 신하라고는 없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의 충신 정몽주가 하는 일이라고는 늘 전전긍긍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사건을 만드는 정도전의 뒷수습을 하느라 쩔쩔 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가 정도전을 구명하지 못해 미안해한다. 일찌기 미쳐 돌아가던 공민왕은 그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제 시작한 지 5회에 불과한 드라마에서 정도전의 목숨이 벌써 몇 번이나 경각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권문세족으로 나오는 이인임에게 호령을 하며 대드는 건 예사요, 고려 최고의 명장 최영을 찾아가 독대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죽은 공민왕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보면, 정도전은 열사요, 의사다. 덕분에, 역사 속에서 간신으로 낙인 찍힌 이인임이야 그렇다 치고, 최영에, 정몽주까지, 모두 가 올바른 정도전 앞에, 어딘가 모자르고 부실한 인물로 보일 뿐이다.

특히, 18일 최영이 정도전의 참형을 주장하는 부분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 바로 전 회에 이인임을 만나 그의 계략에 넘어갔다 해도, 정도전이 직접 찾아가 자신이 생각한 것은 친명이 아니라고 설득을 했음에도, 이인임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처형을 주장할 정도의 개연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의 심중은 그려지지 않는다.

5회에 등장한 고려의 정국은 중국 대륙의 격동기를 겪고 있다. 그 상황에서 이인임, 최영 등의 권문 세족은 아직은 지지 않는 태양 원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이요, 정도전 등의 신진 사대부 세력은 새롭게 등장하는 명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고려의 임금 앞에 충(忠)자를 붙일 정도로 치욕스러웠던 원의 지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배했던 명나라에 대한 사대 정신을 짚어 보건대, 결코 정도전 세력의 친명 사대주의도 만만치 않다. 조선의 광해군처럼 실리주의 외교 정책을 펼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고려말의 세력은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 나라를 선택하고 있는 양상일 뿐이다.

오히려 최영을 설득하려고 하던 이인임이 중국 대륙이 어느 한 나라에 의해 통일이 된다면 고려는 망할 것이라는 균형론이 그의 정치적 선택과 관련없이 설득력이 있다. 명에 사대를 하는 게 치욕적이라면서도, 원 사신을 대접하는 일을 맡긴 업무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제껴버리는 정도전의 선택은 사상의 조국 명을 향한 해바라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선택과 결정들이, 그저 옳고 그름이 입장으로만, 조선을 건국할 위인 정도전의 행보를 빛내기 위한 장치들로만 그려진다. 이미 망한 국가이지만, 그 시절 고려 말의 치열했던 정국 상황은 그저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할 불쏘시개일 뿐이다.

드라마는 그런 변화되는 강국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세력을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대신, 이인임은 나쁜 놈, 그리고 최영은 거기에 넘어간 한심한 놈, 거기에 반대한 정도전은 좋은 놈이라는 식의 초등학교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논리를 재현한다. 마치 일제시대가 끝나고 미군이 들어오자, 미군은 무조건 우리 편이라던 논리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실제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는 역사의 상당 부분은 조선이 건국 되고, 정도전 등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고려사'의 내용이다. 심지어 그가 만든 고려사가 사실과 너무 다르다고 태조, 세종 등 조선의 임금들이 개정을 요할 정도였다고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전 혹은 이후 조선의 입장에서 그려진 고려사를 드라마는 반성없이 고스란히 복기하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갈등하는 고려말 세력의 각축전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이데올로기로써만 그려내고 있으니 역사를 반추함은 없고, 항상 옳았던 위인 정도전만이 남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