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밥상밥상 시인 오인태가 차려준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과 담론 ⓒ 인사이트북스
매일 시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2009년 '시야 밥 먹고 놀자'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밥상 시인'으로 불린 오인태 시인이 지난 대선 이후 페이스북에서 매일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가 차려낸 밥상은 5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시가 있는 밥상>이라는 시와 산문이 어우러진 단행본으로 간행됐다.
시인은 대선 이후, 흐트러진 자신의 일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편으로 시를 곁들인 밥상을 차려 나누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하루에 일어난 일을 풀어내며 기쁨, 슬픔, 분노, 좌절을 함께 나누며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힘을 얻던 일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시인은 '시가 있는 밥상'을 통해 밥상으로 상징된 '집'과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 저녁이 있는 '일상'을 돌려주고 '시'와 '인문정신'까지 자본주의 시대 현대인이 잃어버린 핵심가치를 되돌려주고 싶어한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 퇴근하는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텃밭에 선 딴 호박을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갈무리해 두었던 생선을 굽고, 호박잎을 찌고, 잘 삭힌 젓갈을 곁들여 정갈한 밥상을 차려내던 어머니처럼 시인은 매일 정갈하고 간소하지만 격식 갖춘 밥상을 시와 곁들여 차려낸다.
집/오인태
손에 든 꽃이 무색해라
일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저기
꽃보다 환한
불빛
- 시집<별을 의심하다>에서
골목길 돌아 환하게 집 안을 밝힌 불빛이 보이면 따뜻한 서리태 밥 지어 아랫목에 묻어 두고 된장찌개는 화롯불 위에 올려 두고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떠올라 밖에서 찢기고 상처 난 일상이 저절로 치유되지 않았던가.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저녁만큼은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 바로 일상 회복의 시작인 것이다.
시인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도하듯 밥상을 차리고 노래하듯 시를 반주로 곁들인다. 시인이 차린 밥상은 진한 간이나 조미료 맛을 최대한 줄이고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린 담백함이 주를 이룬다. 바로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얻고 어머니의 손길과 정성으로 맛을 내던 어머니의 밥상을 닮았다.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도 옷을 벗듯 강요된 모든 것들을 벗겨내고, 가정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과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찢기고 흔들리며 겪은 좌절과 상처, 갈등과 분노, 슬픔을 모두 내려놓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몸과 마음의 치유의 시작점이다.
일상을 되돌려주고 싶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인이 손수 차려 낸 '시가 있는 밥상'이 일상과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거리를 서성이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희망을 싹틔울 수 있는 작은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덧붙이는 글
시가 있는 밥상/ 오인태/인사이트 북스/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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