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교육감, 이게 학생들에게 할 짓인가요
[릴레이기고②-학부모] 세 아이 학부모가 서울시교육청에 묻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오는 1월 26일로 공포 2년을 맞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글을 받아 싣는다. [편집자말]
▲ 활짝 웃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2012년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춘희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본부 공동대표, 청소년 인권활동가 '수수', 한상희 정책자문위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저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2011년 서울시학생인권조례 발의를 할 때, 저도 서명한 10만 명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아이 반 친구들 부모에게 전화해서 서명하라고 권유도 했습니다. 교문에서 머리가 깎이고 치마가 뜯기는 19세기의 인권유린과 불법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는 교육을 더 이상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람이면 당연히 누릴 권리를 제한받는 억울한 일이 없겠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적어도 우리 아이들 편을 들어줄 법적 근거가 생겼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처음 공포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보고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이건 고백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이라는 몸과 전혀 맞지 않는 옷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기보다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교권, 인간적 모멸, 강압과 지시에 기반을 둔 학칙, 어떤 배움도, 한 치의 성장도 되지 않는 학습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나신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저는 학교, 교육, 학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법이 살아있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둘째, 법에 대한 새로운 배움이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의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조항들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이 노출되어 있는 인권침해에 모두 이름을 명명백백하게 붙임으로써, 반인권의 행태들은 양지로 드러나는 것이 가능해지더군요. 학교의 봉건과 반인권을 용인했던 가장 강력한 무기야말로 '이름을 주지 않기', '뭉뚱그리기', '물 타기', '본질 흐리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낡은 무기들을 폐기한 것이야말로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조례가 발의되고, 공포되었을 때, 아이들과 지인들이 모여 자축 파티도 했지요. 하지만 곧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의 절차적 문제를 들어 법원에 제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육현실의 맨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에 맞춰 학칙을 개정하고, 학생인권조례를 교육해야 할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간단히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교육부가 제소한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에서,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오히려 학생인권위원회의 법적 타당성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저희 학부모들은 다시 한 번 희망의 불씨를 뒤적였습니다. 그렇구나, 법이 살아있구나, 눈시울이 다 뜨거웠었지요.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학교 현장에서 실천해나가는 일만 남았구나, 학부모로서 응원과 다짐을 했더랬지요.
하지만 다시 한 번 학부모들은 좌절합니다. 과거를 반성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선두에서 실천해나갈 줄 알았던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30일 내놓은 개정안을 보고나서입니다. 서울시민 10만명이 뜻을 모으고, 서울시의회에서 수많은 토론을 통해 공포된 조례를 이렇게 무시하고 뒤집는 것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민의가 힘 앞에 어떻게 휴지 조각이 되며, 민주적 절차란 얼마나 허위인지 서울시교육청이 친절하게 가르치고 있네요.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개정안
▲ 이번 개정안은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례에서 규정한 권리를 학칙으로 제한하다니요... ⓒ sxc
특히 개정안을 보고, 학부모로서 제일 놀라웠던 것은, 3조에 신설되는 '③ 이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의 권리는 교원의 교육·연구 활동의 방해, 학내 질서 문란, 타인의 권리 침해, 교육과정에 따른 중요한 교육상 필요의 증진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학교 규칙(이하 "학칙"이라 한다)으로 제한할 수 있다'입니다. 이 부분들을 이유로 학생인권을 침해해온 지난 시절, 반인권적 교육에 대한 반성이 학생인권조례의 출발이 아닌가요?
이번 개정안은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례에서 규정한 권리를 학칙으로 제한하다니요. 헌법에서는 국민들의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제한사항을 법률로써만 즉, 국가안정보장·질서유지 공공복리에 한해서 제한 조건을 두고 있지요. 법적 근거가 없는 학칙으로 권리를 제한하다니요. 이것이야말로 상위법 위반이 아닌가요?
4조에 학생과 학부모의 책무성 제고 부분을 신설한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만 책무성을 제고할 것을 적시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교육행정 당국, 학교, 교사의 책무는 빠진 채, 학생과 학부모의 책무만 있는 것은, 학생 인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과 학부모의 책무성이 약한 데 있다고 판단을 한 건가요?
학교 안 약자인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학생인권조례에 굳이 이런 조항을 넣은 것은 현재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외면하고, 학생인권 침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흐리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또 학생의 두발 등 용모에 관한 사항과 소지품 검사는 학생, 학부모에게 몹시 예민한 부분입니다. 안전과 건강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만 있으면 일상적으로 아이 몸을 뒤져 소지품검사를 할 수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학생인권조례에 학부모들이 찬성했던 건 적어도 우리 아이가 인격적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런 학부모들의 기대와 믿음을 처참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이렇게 쓰다니요
10만 명의 서울시민이 왜 학생인권조례에 서명을 했을까요? 인권의 오지, 봉건의 마지막 보루인 학교라는 비상식적인 공간에 인권의 길을 내고, 근대의 불을 비추려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2년 전, 학생인권조례의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조항들을 보며 저는 커다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학교의 봉건과 반인권을 용인했던 가장 강력한 무기야말로 뭉뚱그리기, 물 타기, 본질 흐리기였다는 것을요. 학생인권조례가 그것들과의 결별을 명확히 선언했기에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그야말로 '뭉뚱그리기 물타기, 본질 흐리기'네요. 이런 것을 개악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번 개악은 학생인권조례를 사문화하고,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교육당국의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반교육적, 반인권적 퇴행입니다.
제가 낸 교육세를 이렇게 쓰다니요. 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이렇게 쓰다니요. 세 아이의 학부모가 간절하게 묻습니다. 10만 명의 서울시민이 묻습니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자랍니다. 문용린 교육감님, 어떻게 책임을 지시려는지요? 과연 책임을 질 수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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