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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의 문화공감] 거침없이 기이한 나라의 무용언어

등록|2014.01.22 09:10 수정|2014.01.22 09:10

▲ 직접 폭탄주를 제조해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무용수들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고 있자면 그 제조과정마저 예술(?)로 보인다. ⓒ 두산아트센터


그들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캐주얼하다 못해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감정의 면면들은 발산되듯 억눌리고 폭발하듯 숨을 죽인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그것이 '생활'이라고 감히 말하는 그들은 삼삼오오 담배를 태우거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그간 봉인돼왔던 '살아 숨 쉬며 달리는 생활의 몸'을 해제하거나 해체시킨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일상 속 현실을 몸의 언어로까지 들여다봐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일반인에게 무용은 현실의 언어라기보다 꿈의 언어다. 중력에 저항하며 가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도약하는 열정이자 현실을 잊고자 몸부림치는 신명이다. 허나 이들의 언어는 불편하리만큼 현실을 향해있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잡아끌어다 굳이 무대에 세워놓고는 애초 불친절하기로 작심한 듯 즐거운 척 놀아제낀다.

▲ 담배연기를 제조하던 무용수들 사이로 솔로가 이어진다. 아득히 멀어져가는 담배연기처럼 그의 춤은 아스라히 저물어간다. ⓒ 두산아트센터


하지만 그 불친절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언어와의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우리가 미래 그 자체였던 한때의 꿈이,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피워댔던 한 갑의 담배가, 누군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벌였던 수많은 경쟁들이, 지난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술잔을 기울였던 순간들이 그들의 춤 사이에 자리해있던 까닭이다.

과연 어떤 이들이 얼마만큼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언어를 지켜보는 동안 진심으로 즐겁고 유쾌했지만, '날것'만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 한편으론 그들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이번 무대를 비로소 또 다른 언어로 발현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 아트랩인만큼 새로운 전복의 언어를 들고 갑작스레 찾아와주길 바란다.

덧붙임; 무용수가 섞는 폭탄주는 선(?)부터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제모의 아픔을 겪어야했던 무용수의 노고를 격려하며 축배의 잔을 함께 올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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