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김치 맛이 변했는데... 김치냉장고 탓일까?

[사연이 있는 농사 12] 배추이야기

등록|2014.01.23 14:30 수정|2014.01.23 14:30

▲ 적은 거름으로 작게 키운 배추는 저장성이 높고 맛이 좋다 ⓒ 오창균


"배추가 너무 작아요. 선생님이 농사를 지을줄 모르는 것 같아."

몇년 전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생태텃밭수업을 하는 강사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김장을 하러 온 학부모들의 장난스런 불평에 젊은 원장님은 "유기농 이라서 그래요"라며 멋쩍어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서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봄이 되면 작은배추의 진면목을 알게 될 거라며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 그 해 김치는 아이들이 직접 키운 작은배추와 양이 부족할 것 같다며 학부모들이 사온 큰 절임배추로 김장을 해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키 크고 싱거운 배추는 맛이 변한다

다음해 봄, 다시 아이들과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어느날 어린이집 행사 때 여러 음식들과 김장김치가 식탁 위에 차려졌고, 김장을 도왔던 학부모 몇 명도 다시 만났다.

"같은 양념인데 애들이 키운 배추가 더 맛있네. 이것(절임배추)은 맛이 별로네요."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을 여러번 들었다. 큰 배추와 작은 배추의 어떤 점이 맛에서 차이를 만드는 걸까? 결론을 먼저 말하면 큰 배추는 잎이 두껍고 수분이 많아서 부드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에 많은 탓에 물러지고 맛이 떨어진다.

작은 배추는 잎이 얇고 수분이 적어서 거친맛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처음의 맛이 그대로 유지되고, 깊은 맛이 더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큰 배추와 작은 배추가 만들어질까?

당연한 말이지만 거름을 많이 주면 배추는 커지고, 적게 주면 작은 배추가 된다. 특히 작물을 크게 하는 질소성분이 많은 화학비료를 주면 '폭풍성장'으로 아주 큰 배추를 만들 수 있다. 질소를 많이 흡수한 배추의 세포는 팽창하고 늘어나면서 크게 자란다. 세포 안은 많은 수분으로 채워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저장성이 떨어져 물러져 맛도 떨어진다.

여러 비교 실험에서도 화학비료로 키운 작물보다 발효퇴비를 넣은 유기농으로 키운 작물의 저장성이 높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맛에서도 유기농 작물이 더 뛰어나고 영양성분도 더 많다. 화학비료에는 작물성장에 필요한 몇가지 원소만 있는 반면, 발효퇴비에는 다량의 원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 배추는 모종에서 수확까지 70~80일 정도 걸린다.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1.배추모종 옮겨심기 2. 열흘된 배추 3.한달된 배추 4. 두달 된 배추 ⓒ 오창균


퇴비는 충분히 줬는데 배추가 안 큰다고?

"내 배추는 결구(배추속이 만들어지는 것)가 안 되고 파란 잎만 생겨요."

텃밭농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퇴비를 넉넉히 줬는데도 배추가 안 자란다며 원인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양분이 부족하지 않다면, 배추가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 흙의 산도(ph)에서 산성이 높으면 양분 흡수력이 떨어진다. 둘째, 배추는 칼슘(Ca)이 부족하면 생육장애가 생긴다. 흙의 산성과 칼슘부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석회(石灰, 석회석을 고열로 가열하여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남은 산화칼슘)비료다. 석회는 소독용과 농사용이 있으며 농자재판매상에서 농사용 석회를 구입할 수 있다.

석회는 작물(배추)를 심기전에 미리 뿌리고 흙을 뒤집어준 후, 최소 15일이 지난 후에 퇴비를 흙에 넣고 밭을 만든다. 퇴비를 넣고 나면 10일 정도 지나서 배추 모종을 심어주는 것이 안정적이다. 혹시 발효가 덜 된 미숙퇴비일 경우 가스장해로 인한 작물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미생물에 의해 안정적으로 완숙 발효퇴비가 되는 시간의 여유를 갖는 것이 작물에게도 좋다.

석회와 퇴비를 함께 넣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알칼리성의 석회는 퇴비의 질소성분을 공기중으로 날려버리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되면 질소의 손실이 생기므로 석회는 반드시 퇴비보다 먼저 밭에 뿌려주고 흙을 뒤집어서 안정화 시킨 후에 퇴비를 넣어준다. 요즘에는 화학적으로 가공한 석회가 아닌 천연패화석(굴,조개껍질을 가루로 낸 천연칼슘)을 사용하기도 한다.

▲ 작은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있다. ⓒ 오창균


겨울을 앞둔 김장배추는 제 때에 심어야 잘 커

김장배추는 품종도 다양하고 지역에 따라 심는 시기가 다르다. 남쪽 지역은 추석명절(9월중순)을 전후로 모종을 심고, 중부 지역은 절기상 처서(處暑, 8월 23)을 지나면서 심는다.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강원, 경기북부지역은 입추(立秋, 8월 7일)을 지나면서 심는다. 김장배추는 심는 시기가 늦으면 속이 꽉 찬 배추를 수확하기 어렵다. 겨울이 오는 추운 날씨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찍 심어도 안 된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가을배추는 기온이 높으면 자라지 않고 병해충의 피해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찬바람이 불면 냉해를 막기 위해 배추를 묶어줬지만, 요즘의 배추는 종자가 개량되어서 영하 2~3도에도 괜찮다. 수고스럽게 일일이 묶어주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겉잎이 살짝 얼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김치맛을 더 좋게 하는 것 같다. 키 크고 싱거운 배추보다는 맛과 영양이 가득한 작은 배추를 키워보자.

▲ 배추는 영하 2~3도에도 견딘다. 수확을 앞두고 찬서리를 맞은 배추 ⓒ 오창균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