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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원 주면서 '과자 사먹어'... '혹시 전라도냐'는 고객님 황당"

[현장]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징수원이 겪는 감정노동

등록|2014.01.30 10:46 수정|2014.01.30 11:22

'교대할 시간이야'남산터널 혼잡통행료 징수 17년째. 일부 시민들에게는 아직도 부당하게 여겨지는 요금이다.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은 징수원이 그 돈을 빼돌리는 것 아니냐는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 남산 1호터널에서 한 징수원이 교대를 하기 위해 부스 문을 열고 있다. ⓒ 양태훈


#1. 권경수(46) 징수원, 입사 3년차

머리모양은 반듯했고 유니폼은 단정했다. 왼쪽 가슴에 '서울시설관리공단 권경수'라고 적힌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권씨는 미리 적어온 메모지를 보며 부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일 전 일이에요. 고객님이 2천원을 주면서 하는 말이 '과자 사먹어'라는 거예요. 40~50대 남자였어요. 참."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님'들의 반말과 툭툭 내뱉는 말들. 뒤에 점점 밀리는 차들을 보며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했던 일이 가슴에 맺혔다. 권씨는 "그런 말들이 다 상처가 된다"며 "마음에 간직하지 않으려고 동료들끼리 '나도 그런 적 있다'고 공유하면서 푼다"고 말했다.

"여러가지로 시달려요"남산3호 터널 내부 사무실에서 권경수 징수원이 정신노동, 육체노동을 함께 해야하는 고충을 설명하고 있다. ⓒ 양태훈


#2. 송정은(47) 징수원, 입사 5년차

"젊은 고객이 2천원 주면서 슬그머니 손을 잡는 거예요. 빼려고 했는데 안 놓기에, 제가 '아줌마 손 잡으니까 좋으세요?'라고 했더니 얼른 손 놓고 갔어요. 나이나 들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러나 송씨는 "고객들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 의식이 좋아진다는 것. 가끔 '이상한' 고객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표정하게 지나치고, 간혹 수고한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다. 이상한 고객들을 만날 때는 자신이 서비스해야한다는 자세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전국 최초의 혼잡통행료, 국민 불만을 한 몸에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던 봉이 김선달이다."

원성이 자자했다. 1996년 11월, 서울시가 남산 1, 3호 터널을 지나는 2인 이하 차량에 혼잡통행료 2000원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교통 혼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혼잡 유발 원인자에게 직접 부과해 차량 통행을 억제하겠다는 게 도입 취지였다. 하지만 터널을 뚫어 강남과 서울 도심을 연결해놓고 지나려면 돈을 내라니, 납득하기 힘들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전국 최초라는 것도 시민 반발에 한몫했다.

그 후로 17년이 지났다. 출퇴근하는 시민들에게 통행료 2000원은 이제 익숙해졌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에게는 아직도 부당하게 여겨지는 요금이다.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은 징수원이 그 돈을 빼돌리는 것 아니냐는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뱃속의 아이를, 뒷좌석에 탄 강아지를 사람으로 쳐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징수원들은 그 모든 일들을 묵묵히 견뎌왔다. 그러나 그 말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혼잡통행료'를 징수한 차량이 서울 남산 1호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양태훈


남산터널 혼잡통행료란?
서울시는 1996년 11월, 남산 1, 3호터널의 통행료 징수를 개시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2명 이하가 탑승한 10인승 이하 승용·승합차에 2000원을 징수한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무료다.

1000cc미만의 경차와 제3종 저공해자동차, 승용차 요일제 참여 차량 등은 50% 할인된다. 3인 이상 승용차, 택시, 화물차, 11인승 이상 승합차, 경호·군사·작전·외교·보도용 긴급 차량과 장애인차는 면제다. 지난해에만 총 7979만여대, 일일 평균으로 3만2천여대가 통행료를 냈으며 이에 따른 수입금은 149억 원이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회현동2가에 위치한 남산3호터널 혼잡통행료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사무소는 요금소 위에 지붕처럼 얹혀져 있다. H자 형태로 길쭉한 사무실 2개가 통로 하나에 연결돼 있다. 한쪽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CCTV영상을 보면서 미납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영상 화질을 높여 조수석에 사람이 탔는지 살폈다. 미납 적발 시 과태료 1만원이 부과된다.

다른 한쪽은 징수원들의 탈의실 겸 휴게실이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밥을 해먹는다. 징수원 49명이 전부 여성이다. 현재 3호터널에는 24명의 징수원들이 오전·오후 조로 나뉘어 근무한다. 오전반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오후반은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한다. 식사를 위한 1시간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실제 부스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평균 5시간 13분이다. 이 시간 동안 평균 1925대의 차량이 지나가고, 이중 평균 715대의 차량으로부터 통행료를 받는다.

▲ 남산 3호 터널 내부에 설치된 직원휴게실에서 근무를 마친 징수원들이 쉬고 있다. ⓒ 양태훈


'막말' 항의하려다 밀리는 차들에 연신 '죄송'만

휴식 중인 징수원들을 만났다. 입사한 지 만 2년이 된 권경수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권씨는 모범적인 고객부터 소개했다. 한 고객은 뜨거운 여름에 컵 주변으로 물방울이 송송 맺힌 냉커피를 건넸다. 겨울에 귤을 건네며 '손시렵겠다, 장갑끼시라'고 말하는 고객도 있었다. 그런 고객을 만나면 일할 맛이 난단다. 특히 요금을 두 손으로 주는 분들이 가장 좋다고 웃어보였다. 권씨는 이어서 최악의 손님을 떠올리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가 '2천원입니다'라고 했더니 '눈이 삐었냐'고 고함을 지르는 거예요. 요일제 참여 차량이라는데 요일제 스티커가 안 보였어요. 원래 운전석 왼쪽 하단에 붙여야 하는데 왼쪽 위에다 붙여 놓았더라고요. 그게 이중 선팅이어서 더 안 보였어요."

권씨는 당황했다.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차들 때문에 그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연거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인사했더니, "근무 똑바로 하라"고 고성을 질렀다. 그때 눈물이 '그렁그렁'했단다. 다음 차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0여분 동안 속상한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아 부글부글했다.

송정은(47)씨는 공식 민원도 받았다. 송씨가 고객을 상대로 '야'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항의였다.

"'스톱'이라고 했는데, '야'라고 했다는 거예요. 사과하라고 서울시 누리집에 민원을 넣은 거예요. 제가 어떻게 '야'라고 할 수 있겠어요. 민원 때문에 경위서도 썼어요. 그래도 사과는 안 했어요."

또 하루는 인원 확인이 제대로 안 돼서 뒷좌석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더니, "네 눈은 두고 뭐하냐"는 핀잔이 날아왔다. 창문을 안 내려주고 버티는 바람에 부스를 나와 차 앞까지 갔다. 창문을 내리자 그 뒤로 한 사람이 보였다. 송씨의 뒷통수로 "안 속네"라는 비아냥이 날아왔다.

'작은 부스' 안의 징수원남산 1호터널에서 한 징수원이 부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징수원들은 작은 부스에서 같은 자세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시민들의 '혼잡통행료'에 대한 화풀이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 양태훈


"'너 혹시 전라도냐'고 물어오는데..."

김미선(43)씨는 훈훈한 소식을 전했다. 통행료 2000원을 받았는데, 1만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8000원을 거슬러 줬다. 그 돈은 고스란히 김씨의 지갑에서 보충해야 했다. 다음 날 관리소 컨테이너 박스에 누군가 봉투를 붙여놓고 갔다. 그 속에는 영수증과 8000원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정말 드물지만 이런 분들이 있어서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역시 '진상' 고객을 만난 경험은 있었다.

"3명인지 확인하는데 고객님이 뜬금없이 '너 전라도냐'고 물어봤어요. 부부가 탔는데 부인이 임신했다고 면제해달라는 사람, 뒷좌석에 개 있다고 면제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주민등록증 있냐고.(웃음)"

도로 한복판에서 일을 하는 징수원들에겐 자동차 매연과 낫지 않는 감기가 또 다른 스트레스다. 요금을 낸 뒤 출발하는 차에서 나온 매연이 부스 안은 물론 징수원들의 몸 속까지 스며들어온다. 문제는 고객에게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쓸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한겨울에 한 번 감기에 걸리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루 5시간 이상을 찬바람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는 이들의 감정노동을 고려해 지난해 10월, '힐링 프로그램'을 열었다. 1, 3호터널 징수원들이 모여 응어리진 마음을 풀었다. 김주연 서울시설공단 혼잡통행료 관리소장은 "지난해 감정노동이 이슈화되면서 시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서울 근로자 건강센터를 통해 징수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왼손에 꼭 쥐어진 천원권 3장

▲ 남산 3호 터널에서 한 징수원이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양태훈


▲ 혼잡통행료 처리를 위한 다양한 버튼들. ⓒ 양태훈


계단을 타고 요금소로 내려갔다. 강남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4차선 부스에서 김현옥(50)씨가 근무 중이었다. 부스 안은 3.3제곱미터(1평)가 채 안 됐다. 앉아 있는 김씨 외에 다른 사람은 서 있기에도 비좁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2000원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한 대를 보냈다. 계속해서 차는 지나가고 김씨의 손도 분주했다. 엄지와 검지에 구멍이 뚫린 장갑을 낀 김씨의 왼손에는 항상 1000원권 세장이 쥐어져 있었다. 고객이 내미는 5000원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만원권을 대비해 짬짬이 8000원 묶음을 만들었다.

김씨 앞에 놓인 키보드에는 다양한 종류의 버튼이 있다. '면제', '현금', '경차 카드', '경차 현금', '요일제 카드', '요일제 현금', '미납' 등 버튼 종류만 20여개가 넘었다.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통행 차량 대수, 카드 결제, 현금, 수입 총계 등이 데이터화 돼 있다. 그만큼 통행료는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옆에서 한 시간 지켜본 결과, 다행히 '과격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운전자는 없었다. 김씨는 "고객들이 '수고하십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시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씨는 왼손에는 여전히 1000원권 세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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