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실에서 돌상 받은 양소민...'천상 뮤지컬 배우'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아가사'의 양소민 인터뷰
▲ <아가사>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기하는 양소민 ⓒ 박정환
뮤지컬 <아가사>는 추리 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가 11일 동안 실종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실종된 11일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체 11일 동안 아가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가사의 잃어버린 11일의 행적을 추적하는 뮤지컬 <아가사>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기하는 양소민을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만났다.
- 아가사는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뮤지컬에서는 '여자라서 안 돼' 같은 편견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편견을 당한 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어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입방아에 많이 오르내린다. 하나 더, 추리소설은 남자 소설가에게 더욱 어울릴 법하다. 그래서 편견에 시달린 게 아닐까 본다.
이십 대에는 다른 배우들이 부러워하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이십 대의 역할을 계속 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지금 제 연령대의 여배우가 맡을 역할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십 대 초반부터 활동해서 귀여운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이제는 귀엽지 않을 수 있음에도 귀여운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 게 제 이미지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이 아니었나 싶다."
▲ <아가사>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기하는 양소민 ⓒ 박정환
- 아가사는 자신의 내면과 투쟁한다. 이 점에서는 뮤지컬 <모차르트!>와 닮은 점이 보인다.
"실제로 아가사는 11일 동안 실종된다. 실종 후 돌아와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11일 동안 실종되었을 때 자신과의 싸움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뮤지컬의 장점은 아가사의 내면의 투쟁을 노래와 연극적인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극 중 아가사는 집필을 해야 하지만 글이 써지지 않아 무척이나 고민한다. 양소민 씨도 연기가 나와야 하지만 연기가 나오지 않은 적이 있는가.
"저와 더블 배역인 배해선 언니가 저와 똑같은 동선과 대사를 해도 언니만의 느낌이 묻어나는 것처럼 배우마다 다른 색깔이 있다. 연기 생활 초반에는 다른 배우와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도 다른 배우와는 확실히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점에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일 아가사를 이십 대에 맡았다면 양소민이라는 개인을 버리려고 부단히 애썼을 거다. 그러면 양소민도 아니고 아가사도 아닌 어정쩡한 아가사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작품이든 간에 양소민을 잘 녹여서 캐릭터를 살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 요즘은 뮤지컬 배우가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 출연하는 오만석 씨처럼 다른 영역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뮤지컬 배우를 배우라고 부르지 뮤지컬 가수나 댄서라고 부르지 않는다. 뮤지컬 배우는 연기를 하는 이들이다. 연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노래로 하는 배우가 뮤지컬 배우다. 뮤지컬 배우의 주 무기는 연기여야 한다.
▲ <아가사>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기하는 양소민 ⓒ 박정환
노래와 박자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 할 수 있는 시간은 뮤지컬 배우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와 영화 연기를 하면 얻는 게 분명히 있다. 요즘 뮤지컬의 연기 경향이 자연스러운 연기다. 기화가 되면 다른 영역에서 연기하는 게 도움이 클 것이다."
- 예전에 드라마에 출연할 때에는 어떤 마음으로 출연했나.
"요즘에는 아이돌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연습생 시절부터 연기를 배우는 것처럼 소속사에서 활동하던 당시 앨범을 내면서 드라마를 찍었다. 노래를 떠나서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만 원 없이 해보고 싶었다."
- 2009년에서 2012년까지 3년 동안 작품 공백이 있었다.
"결혼할 때 많은 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평소에 연락을 잘 하지 않던 분들에게도 연락하는 게 결혼식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평소에 연락이 소원한 분들에게 결혼한다고 연락하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결혼식 연락을 받지 못한 분들이 섭섭하다고들 하셨다. '결혼했어?' 하고 주위에서 물어보면 '비밀이에요, 결혼 안 한 이미지로 쭉 가고 싶네요'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아기를 낳고 <완득이>에 출연했다. 만일 결혼하지 않았으면 '왜 애 엄마 역할을 맡아야 해?'하는 반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이로는 애 엄마를 연기해도 될 나이지만 애 엄마는 연기하기 싫은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을 것 같다."
- 연기 인생에서 아버지 양재성씨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을 거 같다.
"아버지의 연기는 항상 정도를 걷는 연기였다. 아버지의 진득한 연기를 어려서부터 보아왔다. 아버지는 악역이나 웃기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지만, 외모가 점잖아서 점잖은 캐릭터로 쭉 가는 연기를 해오셨다. 장면은 계속 바뀌는데 점잖은 캐릭터는 흔들리면 안 되는 고민을 옆에서 많이 보았다.
어릴 적부터 배우 분장실이라는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저의 돌잔치도 분장실에서 했다. 중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한 <레미제라블>의 배우들이 우리 집 거실에서 술에 취해 잠든 모습을 보며 배우가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았다.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만들어준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에게 온 <말괄량이 길들이기><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초대권을 들고 초등학생 때부터 혜화동에서 연극을 보러 다녔다."
- 만일 딸이 연기하겠다고 한다면 아버지와 양소민 씨에 이어 삼대째 연기를 이어간다.
"삼 대에는 천재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만일 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듣지 못할 거 같으면 하지 말라고 하겠다.(웃음) 그럼에도 배우를 하겠다고 하면 '쫄 거 없다'고 가르쳐주고 싶다. 딸이 배우가 된다면 담대한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 <아가사>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기하는 양소민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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