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광주에 있는 대안학교 '지혜학교'(www.sophiaschool.or.kr)에는 '묵학'이라는 시간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식사 후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가 바로 묵학 시간이다. 묵학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시간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묵학에는 글자 그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그 시간 동안 과제를 해도 되고 소설책을 읽어도 된다. 그림을 그려도 된다. 지혜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점이 바로 이 묵학 시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그래서 하루에 두 시간씩 학교에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편으로는 두 시간 동안 그렇게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는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벗들과 한참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10대 청소년 아닌가. 지난 18일, 지혜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각 듣고 싶어 이 학교에 다니는 두 학생을 경기도 광명에 있는 카페 '더 스토리 오브 앨리스'(The story of Alice)에서 만나봤다.
"묵학이요? 전혀 답답하지 않아요. 오히려 외부의 소음에서 차단된다는 느낌이 많아요. 그렇게 말없이 조용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씩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혜학교에 재학 중이며 올해 5학년이 되는 송해인 학생의 말이다. 지혜학교 5학년은 일반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한다.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일반 학교에서 나가떨어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보기도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대안학교를 택한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게다. 송해인 학생은 중학교도 대안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올라갈 때 부모님께서 대안학교를 권유하셨어요. 지혜학교 말고 다른 대안학교요. 일방적으로 강요하신 건 아니라서 한 번 방문해봤죠. 그 학교는 농사나 자연, 생태 이런 쪽을 강조하는 학교였어요. 처음 방문했을 때 언니 오빠들이 삽을 들고 농사일하러 가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저렇게 생활하면 나도 행복할 수 있겠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역시 지혜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정승아 학생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다른 것보다도 묵학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일반 학교에서도 책은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요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을 준비한다는 사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시간과 학원시간에 쫓겨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고.
철학을 강조하는 광주의 대안학교
지혜학교는 학교 이름처럼 '철학'을 강조한다. 1학년 때부터 실존주의 등 다양한 철학을 공부하고 수업방식도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선생님께서 강의하는 시간이 있고, 학생들이 발제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어요. 발표가 끝나면 질의응답이 이어지고요. 수업을 마치면 '좋은 수업 만들기'라는 시간이 따로 있어요. 이번 수업에서 좋았던 점, 개선할 점 등을 학생들끼리 토론해서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거죠. 그럼 선생님들이 그걸 가지고 토론해서 다음 수업에 반영해요. 저희가 직접 수업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강해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요새 일반계 고등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혜학교의 수업은 일반계 고등학교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일반계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로 수업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대안학교를 졸업해도 '고졸' 신분이 되지는 못한다.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따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송해인 학생은 졸업 이후에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예를 들어서 흰 도화지가 있으면 거기에다가 똑같이 찍어낸다고 생각해요. 교과서 대로,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일방적으로 따라가게 되죠. 대안학교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학생들 개인의 개성을 살려주시죠. '너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봐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지켜보시는 거죠."
대안학교는 인가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로 나뉜다. 지혜학교는 비인가 학교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도 없고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있다.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권하는 사항들을 잘 따라야 하는데 지혜학교의 방침은 그렇지 않았던 것. 그런 점들이 안좋게 보였을까. 재작년 가을, 광주 국정원에서 지혜학교 교사들의 신상을 모조리 조사해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지혜학교는 지난해 여름 시국선언으로 화답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살아가는 모습
학생들이 외부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에는 네팔에 다녀왔다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일정을 정해서 네팔에서 <강남스타일> 공연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네팔 어린이 돕기 모금활동도 펼쳤다. 정승아 학생은 영화부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3박 4일동안 다녀왔다. 이런 식의 외부 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생들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서 학교에 신청하면 된다.
이들에게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처음에 이들이 대안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그 친구들이 굉장히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왜 네가 거길 가? 우리랑 같은 데 가야지"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지금은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고, 또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대안학교의 모습을 알리고 다니기 때문에 자신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루에 4~5시간씩 자면서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시간에 쫓기는 생활과, 읽고 싶은 책 많이 읽으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생활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학에 가려면 이후에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고, 외부의 선입견과도 맞서야 한다.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이들의 학교생활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 시간 동안 과제를 해도 되고 소설책을 읽어도 된다. 그림을 그려도 된다. 지혜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점이 바로 이 묵학 시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그래서 하루에 두 시간씩 학교에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편으로는 두 시간 동안 그렇게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는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벗들과 한참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10대 청소년 아닌가. 지난 18일, 지혜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각 듣고 싶어 이 학교에 다니는 두 학생을 경기도 광명에 있는 카페 '더 스토리 오브 앨리스'(The story of Alice)에서 만나봤다.
"묵학이요? 전혀 답답하지 않아요. 오히려 외부의 소음에서 차단된다는 느낌이 많아요. 그렇게 말없이 조용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씩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혜학교에 재학 중이며 올해 5학년이 되는 송해인 학생의 말이다. 지혜학교 5학년은 일반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한다.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일반 학교에서 나가떨어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보기도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대안학교를 택한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게다. 송해인 학생은 중학교도 대안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올라갈 때 부모님께서 대안학교를 권유하셨어요. 지혜학교 말고 다른 대안학교요. 일방적으로 강요하신 건 아니라서 한 번 방문해봤죠. 그 학교는 농사나 자연, 생태 이런 쪽을 강조하는 학교였어요. 처음 방문했을 때 언니 오빠들이 삽을 들고 농사일하러 가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어요. '저렇게 생활하면 나도 행복할 수 있겠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역시 지혜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정승아 학생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다른 것보다도 묵학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일반 학교에서도 책은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요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을 준비한다는 사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시간과 학원시간에 쫓겨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고.
철학을 강조하는 광주의 대안학교
▲ 지혜학교에 재학 중인 송해인(왼쪽), 정승아 학생 ⓒ 김준희
지혜학교는 학교 이름처럼 '철학'을 강조한다. 1학년 때부터 실존주의 등 다양한 철학을 공부하고 수업방식도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선생님께서 강의하는 시간이 있고, 학생들이 발제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어요. 발표가 끝나면 질의응답이 이어지고요. 수업을 마치면 '좋은 수업 만들기'라는 시간이 따로 있어요. 이번 수업에서 좋았던 점, 개선할 점 등을 학생들끼리 토론해서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거죠. 그럼 선생님들이 그걸 가지고 토론해서 다음 수업에 반영해요. 저희가 직접 수업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강해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요새 일반계 고등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혜학교의 수업은 일반계 고등학교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일반계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로 수업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대안학교를 졸업해도 '고졸' 신분이 되지는 못한다.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따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송해인 학생은 졸업 이후에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예를 들어서 흰 도화지가 있으면 거기에다가 똑같이 찍어낸다고 생각해요. 교과서 대로,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일방적으로 따라가게 되죠. 대안학교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학생들 개인의 개성을 살려주시죠. '너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봐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지켜보시는 거죠."
대안학교는 인가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로 나뉜다. 지혜학교는 비인가 학교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도 없고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있다.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권하는 사항들을 잘 따라야 하는데 지혜학교의 방침은 그렇지 않았던 것. 그런 점들이 안좋게 보였을까. 재작년 가을, 광주 국정원에서 지혜학교 교사들의 신상을 모조리 조사해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지혜학교는 지난해 여름 시국선언으로 화답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살아가는 모습
학생들이 외부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에는 네팔에 다녀왔다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일정을 정해서 네팔에서 <강남스타일> 공연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네팔 어린이 돕기 모금활동도 펼쳤다. 정승아 학생은 영화부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3박 4일동안 다녀왔다. 이런 식의 외부 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생들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서 학교에 신청하면 된다.
이들에게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처음에 이들이 대안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그 친구들이 굉장히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왜 네가 거길 가? 우리랑 같은 데 가야지"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지금은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고, 또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대안학교의 모습을 알리고 다니기 때문에 자신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루에 4~5시간씩 자면서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시간에 쫓기는 생활과, 읽고 싶은 책 많이 읽으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생활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학에 가려면 이후에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고, 외부의 선입견과도 맞서야 한다.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이들의 학교생활이 너무도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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