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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가 본 '착각' 때문에 울고 웃는 인생사

[서평] 안톤 체호프의 <굽은 거울>과 <어느 관리의 죽음> (1883)

등록|2014.01.29 11:11 수정|2014.01.29 11:11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수록된 17편의 단편소설 중 '굽은 거울'과 '어느 관리의 죽음'은 각각 1번째와 2번째로 실렸습니다. 열린책들 출판사의 러시아어 된소리 표기법에 따라 작중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은 책과 동일하게 표기하였습니다.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열린책들, 2009


아침에 샤워하면서 수증기로 뿌옇게 변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어찌나 잘생기고 아름다운지... 왜곡된 그 모습에 흠뻑 취해 평소보다 과하게 힘을 준 의상을 입고 머리에 왁스까지 바르고 출근하다가 가게 유리창에 비친 우스꽝스런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란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여자친구가 짜증 내는 이유를 어젯밤에 전화를 먼저 끊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어설프게 사과하다가 오히려 화를 돋게 했거나 겨우 알게 된 그녀가 화 낸 이유가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서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은 또 어떻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착각' 때문에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상대방의 화를 돋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하루에 '착각'이라는 상큼한 양념을 뿌리면서 색다른 경험을 한 셈이지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어 보던 체호프는 '착각'에 대해서는 어떤 작품들을 남겼을까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체호프의 '체혼테' 시절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따간로그에서 태어난 체호프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되고 가족은 모스끄바의 빈민굴로 이주했음에도 혼자 따간로그에 남아 스스로 학비를 해결하며 중등학교를 졸업한 뒤 모스끄바 대학 의학부에 들어가 의사가 됩니다.

의사가 되기 전에 체호프는 생계를 위해서 <체혼테>, <지라가 없는 사나이> 등의 필명으로 유머가 가득한 단편들을 기고하곤 했는데 <굽은 거울>과 <어느 관리의 죽음>은 그 당시에 쓰인 대표작들입니다.

체혼테 시절, 글쓰기란 여유로운 취미 생활이 아닌 삶 그 자체였습니다. 1880년부터 1887년 사이에 그가 기고한 작품들이 무려 500여 편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의 궁핍한 삶이 숫자로 기록된 듯 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힘든 시기 덕분에 체호프라는 거장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박한 삶의 모습들을 오롯이 담은 그의 많은 단편들 중에서 오늘 살필 두 작품은 사람들이 흔히 벌이는 '착각'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굽은 거울'이나 '어느 관리의 죽음' 모두 단행본 기준으로 서너 페이지에 불과한 아주 짧은 단편입니다. 하지만 소설이 남기는 인상은 장편소설 못지 않게 강렬합니다. '굽은 거울'은 굽어져서 사람들의 모습이 괴상하게 보이는 한 거울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증조할머니가 귀신 씌인 거울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거울을 들여다 본 주인공의 아내. 못생긴 아내가 거울 앞에 서자 우연의 일치로 아내의 얼굴이 왜곡되어 거울 속에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있었던 것. 작품 초반에 배치되어 있던 증조할머니의 이야기와 똑같이 진행되는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그래, 이건 나야 모두가 거짓말을 해도 이 거울은 그렇지 않아!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고, 남편도 거짓을 말하지! 오, 내가 만일 나를 더 일찍 봤더라면, 내가 정말 어떤지 알았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결혼하지도 않았을 텐데!" - <굽은 거울> 中 아내의 대사

'어느 관리의 죽음'은 체호프라는 작가는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단편입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재채기를 해버린 체르뱌꼬프. 그의 침은 바로 앞줄 특석에 있던 장관에게 튀고 말았습니다. 결례를 범했다는 생각에 공연 중에 용서를 구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다 싶어 공연 사이 쉬는 시간에 또 용서를 구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마음을 먹고 장관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또 사과를 하지만, 장관은 이런 체르뱌꼬프를 어의없어하며 돌려보냅니다. 체르뱌꼬프는 또 다시 장관의 사무실로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장관이 격노하고 만다. 그리고 체호프스러운(?) 충격적인 결말로  짧은 단편이 끝납니다.

체르뱌꼬프의 뱃속에서 뭔가 끊어졌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는 뒷걸음쳐 거리로 나와 간신히 걸었다... ... . 기계적으로 집에 도착해 제복도 벗지 않고 그는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 < 어느 관리의 죽음>의 결말

'착각' 때문에 울고 웃는 인생사

증조할머니가 빠졌던 거울의 저주가 아내에게 다시 걸렸고, 사소한 재채기 사건을 너무 큰 일이라고 착각한 관리는 큰 충격에 죽어버렸습니다. 소설이라는 매체 안에서 '착각'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소재를 택했기에 황당하다는 느낌마저 들지만 정작 소설을 직접 읽을 때에는 체호프의 문장이 주는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상대가 생각하는 점을 정확히 알아낼 수 없기에 우리는 늘 넘겨짚게 되고 이렇게 생긴 오해가 큰 갈등으로 번지기도 하죠. 반면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착각'이라는 핑계로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안정을 찾기도 합니다. 때문에 적당한 수준이라면 이와 같은 '긍정적 착각'은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죠.

이런 '착각'을 피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집을 고수하기 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남이 겪고 있는 상황을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과 소통을 통해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착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체호프는 이 단편들을 통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 자신만의 거울을 가지고 이를 통해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 자신만의 '굽은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 거울에서 뒤돌아 똑바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오종우 역 / 열린책들 출판 / 출간일 2009-11-30.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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