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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똥... 겨울이 좋은 이유입니다

[유기견 입양기12]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

등록|2014.02.02 11:42 수정|2014.02.02 11:42

보호소의 여린 생명들허겁지겁 물을 마시고(위), 새로 깔아준 이불에 옹기종기 모인 개들. ⓒ 평강공주유기견보호소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는 봉사를 적극 권한다. 실내에서 꼼짝하기 싫은 요즘이겠지만 우선 현장에 나와 일을 하다 보면 몸 안에서 건강한 열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냐고? 아니다. 엄살 조금 보태 말하자면 '비지땀 흘려 자가 힐링'이다.

가을이가 있던 유기견 보호소는 큰 견사, 작은 견사, 야외 견사, 치료실, 탈의실, 사택, 묘사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각 견사 및 컨테이너마다 철망 또는 판자로 칸막이를 해두고 두세 마리씩 개들을 분리해 놓았다. 그 견사들 사이사이에 호스가 연결되어 있는데, 12월에 접어들면 이미 얼어 버려 중앙 수도에서 물을 떠다 날라야 한다.

손끝이 깨질 듯이 차갑지만...

손끝이 깨질 듯이 차가운 물이지만 이곳의 가여운 생명들은 허겁지겁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밤이면 기온이 더 내려가 가득 떠준 물이 또 얼어 버리기 때문에 목이 말라도 마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여름은 펄펄 끓는 열기에 목이 타고, 겨울은 겨울대로 조갈증을 겪는 아이들을 보면 찬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급해진다.

영하의 기온 덕을 보는 면도 있다. 대소변이 딱딱하게 굳어 냄새도 덜 나고 치우기도 편해지는 점이다. 유독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도 겨울의 봉사를 권한다. 그래도 영 힘들 것 같다면, 견사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열심히 물만 배달해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얼음을 깨고 물을 채우는 것으로 봉사의 막을 연 다음은 밥이다. 늘 똑같은 사료지만 이나마도 거르지 않고 먹기를 바란다. 때론 사료 창고가 텅 비어 있는 안타까운 날도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면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할지라도 얼마나 뿌듯한지.

다른 봉사자는 한쪽에서 난로를 피우고, 또다른 누군가는 부지런히 바닥을 청소하고, 톱밥을 깐다. 이불의 솜이 다 터져 너덜너덜해지면 더러운 천 조각으로라도 바꿔줘야 한다. 맨 바닥에서 겨울을 나다간 감기 걸리기 십상이고, 한 아이라도 아프면 여럿이 고생하게 되니까.

스카프가 생겼다가을이의 표정을 보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 박혜림


보호소 대문 바깥에도 '길손님'을 위한 물그릇과 사료가 있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꾸준히 있기에. 입양은 드물고 보호소 식구의 수는 결코 줄지 않는다. 작년 한 해, 전국에 등록된 유기견 규모는 약 2만7000여 마리. 언제쯤 이 수치가 뭉텅뭉텅 줄어들까?

죄 없는 아이들을 내칠 수 없어 꾸역꾸역 받자니, 좁은 공간에서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봉사자는 '첫째도 문단속, 둘째도 문단속'의 지침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은 '코코'가 우리를 탈출한 적이 있다. 한 양동이의 물을 단숨에 삼키는 거대한 검둥개를 상상해보자. 봉사자가 대야 가득 사료를 넣어주던 문틈으로 내뺀 것이다.

코코가 서면 그 키가 한국 남성 평균신장과 맞먹는다. 그런 코코가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은 흡사 신명나는 '사자놀이'로 보일 거다. '분명 저 안에 두 명의 장정이 들어있을 것'이라 확신하게 만드는 위압감. 다행히도 코코는 겅중겅중 놀다 제 발로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정이 그리웠다며 끈끈한 침을 온 머리에 발라주고 안아달라며 사료통을 뎅강 엎어 버린다.

'아... 처음부터 다시...'

봉사 초반엔 무시로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지구의 어디쯤인가'하며 멍했지만, 지금은 보호소의 구석구석은 물론, 400여 마리의 이름과 성격까지 파악하게 됐다. 하염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녀석, 잠 잘 곳과 화장실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녀석, 뒤로 돌면 뒤꿈치를 무는 녀석, 두 발로 얼굴을 후려치며 반가움을 표하는 녀석, 어르신 역정 내듯 짖는 녀석, 보호복과 장갑 사이 그리고 마스크와 모자 사이를 기어코 핥아대는 녀석...

여러분께 읍소합니다... "쓰레기는 제발..."

기본적인 보살핌을 해준 다음엔 아이들을 찬찬히 살핀다. 눈병이 심한 아이, 다리를 저는 아이,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아이, 귀가 아픈 아이, 몸을 떠는 아이, 잠만 자는 아이, 우는 아이... 사정이 되면 병원에 데려가고 응급약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목욕, 세탁은 꿈도 못 꾸지만 옷이라도 구해 입히고 깨끗한 물이라도 한 바가지 더 떠 준다. 모두 다 품어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가도 앞발을 내밀며 눈동자를 맞추는 녀석들 덕에 웃을 수 있다.

▲ 퉁퉁한 가을이의 발. 생각보다 약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박혜림


한편, 보호소 생활 10년을 청산하고 도시생활 11개월 차에 접어든 '가을양'은 어떤가. 새해가 밝아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바깥 공기를 마시며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인지 병원에 다녀온 일이 또 있었다. 잘 놀다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가을. 날이 추워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고 집에 안고 들어왔다. 목욕 시킬 때 보니 왼쪽 앞발을 바닥에 딛질 않는다. 만지면 싫어한다. 간이 콩알만 해져 당장 의사 선생님께 데려갔다.

걷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다리를 전다. 하지만 관절을 앞, 뒤, 마디마디 움직여도 아픈 기색은 없다. 워낙 잘 참는 아이라 확실한 환부를 알 수 없어 엑스레이를 찍었다. 앗, 찍는 과정에서 발견한 핏방울! 어디서 피가 났는지 샅샅이 찾아야했다. 발바닥에 아주 작은 빗금이 보였다. 길에서 어떤 날카로운 것에 다친 모양이다. 이제라도 발견했으니 한시름 놓는다만 앞으로는 산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가을이는 한숨 푹 자더니 괜찮아졌나 보다. 또 나가자고 한다. 비닐봉지를 발에 씌우고 고무줄로 고정했다. 낱개 포장한 만두 같다. 밟을 때마다 요상한 소리가 난다고 발을 털어대지만 아물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고 국민 여러분께 읍소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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