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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로는 못 만드는 진짜 중요한 '근육'

[서평] 전경옥이 쓴 <동물의 행복할 권리>... "동물이 행복해야 인간도 행복"

등록|2014.02.04 11:26 수정|2014.02.04 13:35

▲ 산 채로 매장되는 오리들. 한국은 주기적으로 닭, 오리 수백 만 마리를 살처분한다. ⓒ 한국동물보호협회


2003년 528만 5000마리.
2008년 1020만 4000마리.
2010년 647만 7000마리.
2014년 2월 1일 현재 200만 마리.

치킨과 맥주로 피로를 풀고, 닭 가슴살로 다이어트 하며 울퉁불퉁 근육을 키우느라 주변을 살필 틈이 없나부다. 아니면 오리털 점퍼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다보니, 추운 곳을 살피는 연민, 동정심이 무뎌졌거나. 어느새 우리는 주기적으로 닭, 오리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 돼도 특별한 감흥이 없는 존재가 됐다. 

다시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에서 닭, 오리 등이 생매장 되고 있다. 어느새 200만 마리가 넘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리씩 생매장 되는 이 죽음의 행렬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 동물 생매장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는 인간의 감수성이 어디까지 무뎌질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생매장보다 더 무서운 건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

▲ 전경옥이 쓴 <동물의 행복할 권리> ⓒ 네잎클로바

동물보호운동가 전경옥씨는 "생매장 사실보다 잔혹함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무섭다고 했다. 전씨가 최근 발간한 <동물의 행복할 권리>에는 사람의 놀라운 적응력(?)에 관한 짧은 글이 나온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인종청소로 사람을 학살하던 사람들이 처음엔 괴로워하다가 나중엔 학살을 하며 농담을 하고 음악을 듣게 된다는 이야기.

이런 사람이 동물 생매장에 무뎌지는 건 당연한 일일까? 전경옥씨가 쓴 <동물의 행복할 권리>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여러 '당연한 일'을 돌아보게 한다.

정부는 특별한 과학적 근거없이 이번 AI 감염원으로 철새를 지목했다. 물론 정부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20여 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두 달여 뒤에 뜬금없이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게 코미디같지만, 게다가 20만 마리 중 사망률 0.1%도 안 되는 81마리의 죽음을 AI 감염 탓으로 돌리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미 수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구제역, AI로 동물 수천 만 마리를 생매장 하는 진짜 원인은 대규모 공장식 축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공장식 축산 뒤에는 더 많은(혹은 쓸데없이) 고기를 먹으려는 인간의 탐욕과 '사상보다 근육을 울퉁불퉁하게' 하려는 든든한 소비자가 버티고 있다. 이런 우리 인간은 전경옥씨가 책에서 쓴 불편한 진실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쉽게 넘겨 버린다.

"번식용 암퇘지는 생후 210일이면 교배를 시작 3년간 임신과 출산만이 반복되는데 폭 60cm인 스톨(우리)에서 겨우 앉았다 일어서는 정도만이 허용된다. 태어난 새끼들은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꼬리와 송곳니를 잘리는데, 이때 수의학적 마취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A4 한 장 크기의 철망 안에서 여러 마리가 함께 사는 산란계 닭들은…(중략)…지나치게 높은 밀도와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데 농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닭의 부리와 발톱을 잘라내기까지 한다."

인간과 함께 15년 정도 산 <워낭소리> 소의 죽음을 보고 눈물짓던 우리는 위의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자연 수명이 10~15년인 돼지가 생후 160~180일이면 도축장으로 향하고, 길게는 20~30년까지 산다는 닭은 두 달여 만에 프라이드 치킨이 되는 사실도 간단히 무시된다.

1년에 500만 마리... 실험실의 동물을 아십니까

<동물의 행복할 권리>는 산업화된 거대한 축산업의 문제만 다루지 않는다. 인간과 가까운 반려동물, 동물원의 동물과 돌고래쇼, 도시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물론이고 실험용 동물의 비극까지 다룬다. 특히 실험실 동물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아프게 다가온다. 책에 실린 수의학과 졸업생 편지의 한 부분을 보자.

"외과시간. 실습은 무조건 수술입니다. 외과 실험실의 개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실습할 학생은 많죠. (실험용 개 '겨울이'는) 2달 동안 수술을 5번 받았더라고요. 제가 수술하고 1주일 뒤에 또 수술 스케줄이 잡혀 있는 애였습니다. 수술을 하도 해서 몸의 털이 반쯤 없고 여기저기 살이 삐져나와 있던데요. 화장실 갈 때도 너무 아파하는 애였습니다. 수술을 하도 해서 여기저기 칼자국에 실밥까지 있는 애를 누가 입양할 리도 만무하고, 안구 적출술을 받고 평생 어두컴컴하게 사는 개… 일부러 각막을 칼로 긁어 손상시키고 회복 정도를 보는 개… 저는 실험동물들이 단 한 번의 실습만 받고 안락사 되기를 원합니다."

수의학과만의 일이 아니다. 신약, 백신 개발 등에도 동물 실험은 넓게 행해진다. '겨울이'처럼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동물은 한국에서만 연간 약 500만 마리로 추정된다.(검역원 통계는 2012년 기준 180만 마리) 인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전경옥씨는 말한다.

"그렇게 불가피하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면 살아있을 때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 그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눈을 마주치고 함께 호흡하고 있을 동안이라도 그들이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바란다."

전씨가 감정에 호소하고 감정적 대응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동물실험이 정말 불가피하다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제대로된 실험동물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겨울이처럼 여러번 실험하지 말고.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면, '고통을 최소화'하라는 동물보호법 제11조의 내용을 "충분히 기절상태에 이른 후 도살"로 구체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육식, 동물보호, 동물실험을 이야기하면 늘 "어쩔 수 없지 않느냐"란 장벽을 만난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일'은 늘 변했다. 동물원에서 돌고래쇼를 보고 박수치던 사람들은 어느새 돌고래 방류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게 꿈인 시절도 지났다. 많은 전문가들은 육식을 줄여야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동물의 행복할 권리>는 당장 고기를 끊고, 동물실험을 중지하라고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진실을 알아가면서,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자고 제안한다. 약자가 행복한 사회가 안전하고 좋은 사회다. 동물이 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면, 동물이 행복해야 인간도 행복하다는 말에도 쉽게 수긍할 듯하다.

살처분이 끊이지 않는 사회, 근육보다 단단한 공감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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